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
- lost in love "잃어버린 사랑" - 에어서플라이 (air supply)#신포동#ai가사
- 1mm 치과
- 양파즙#도리지배즙#배도라지청#의약용파스#완정역#호경형
- blues&jazz
- male base vocal
- 티스토리챌린지
- 동인천역 가새표#남수#보코#친구들
- 석민이#경민이#도화동시절
- y.c.s.정모
- 60bpm
- 오블완
- 감정의 깊이가 다른 말
- fork. male vocal. 75 bpm.piano. cello. lyrical. lively.
- 익숙해질 때
- 누가바#상윤네집#진열이#금복
- 70-80bpm
- new trot. male vocal. 60bpm. piano. cello. orchestra. lyrical. languid.
- uptempo
- piano
- 당화혈색소6.7#녹내장주의#아마릴정1일투여량1알줄임#자월보신탕24년3월폐업
- 인천시민과함께하는시화전
- 경로석#한국근대문학관#윤아트갤러리
- 碑巖寺
- 인천대공원#포레#파반느#단풍
- 추억의도시
- 인천 중구를 사랑하는 사람들
- male vocal
- Saxophone
- jzzz&blues
- 인학사무실#참우럭#놀래미#도미#금문고량주#두열#제물포#마장동고깃집#마장동
- Today
- Total
형과니의 삶
신승훈 - 보이지 않는 사랑 (1991) 본문
신승훈 - 보이지 않는 사랑 (1991)
1990년대는 서태지를 비롯한 음악 작가들의 시대였던 동시에 몇몇 특출 난 프로듀서들이 출사표를 던지기 시작했던 시기였다. 그 중에서도 김창환은 밀리언셀러 제조기로서, 스타 메이커로서 1990년대 초 중반을 호령했던 발군의 프로듀서이자 마이더스의 손이었다.
그는 김건모, 클론, 박미경, 노이즈 등 수많은 왕별들을 막후에서 지원 사격하면서 막강한 김창환사단을 구축했다. 박진영과 이수만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범접불허의 독무대를 과시했다.
김창환과 손을 잡았던 가수들 가운데, 신승훈은 인기의 측면에서 단연 독보적 존재였다.1990년에 소개되었던 데뷔작 <미소 속에 비친 그대>로 음악계에 도전장을 내밀었던 이 싱어송라이터는 '신승훈표 발라드'라는 자신만의 음악 공식을 만들어내며 단숨에 수면 위의 부표로 떠올랐다.
'말없는 다수'의 안정희구 심리에 기대는 발라드의 특성상, 90년대 초반 여전한 정치적 격랑속에서도 '불온한(?) 사고'와는 절대 연을 맺지 않았던 것도 그를 정상으로 견인했던 부수적 동인이었다. 이것이 그가 10대를 뛰어넘어 전 세대의 공감을 창출할 수 있었던 이유였을 것이다.
여러모로 그는 '세대의 공격성'을 담보한 서태지와 참 달랐다. 거칠게 분류하자면 신승훈은 보수진영의 대변자로 위치지어야 할 것이다. 말없는 다수에 호소한 그의 음악적 정점은 1991년 겨울에 나온 소포모어 음반 <보이지 않는 사랑>이었다. 이 앨범은 (지금은 꿈의 숫자로 변해버린) 100만장 판매고를 가뿐히 쾌척, 처녀작에 이어 연속 밀리언셀러의 대박을 기록했다. 이와 함께 신승훈의 장기집권체제가 공고해졌음을 선언했다.
이후에 발표된 4장을 포함, 6장의 판매고 합계가 자그마치 1000만장을 돌파했다는 점이 웅변한다. 차후의 인기 곡선을 수직 상승시켜준 결정적 발판이 바로 이 앨범이었던 것이다. 신승훈 자신도 “이 앨범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다”고 동의한다.
김창환과의 콤비 플레이가 절정의 기량을 뽐냈던 본 LP의 결과는 그 자체로 예약된 성공을 의미했다. 김광석, 손진태, 배수연, 함춘호, 신대철, 이정식 등 화려한 세션의 면면들 역시 가히 '드림 팀'이라고 할 만큼 발군의 반주를 들려주고 있다.
무엇보다 음반의 프론트 싱글이자 신승훈 스스로도 '내 인생의 곡'으로 꼽는 곡 '보이지 않는 사랑'의 활약상은 눈부셨다. 이 곡은 영화 '보디가드'에 삽입된 휘트니 휴스턴의 'I will always love you'와 함께 92년 신년벽두를 강타하면서 음악 팬들의 뇌리에 강한 인상을 남겼다. 또한 당시 3주 자동소멸 제도가 없었던 시절, 각종 순위 프로그램에서 10주간 1위를 고수하며 위풍당당 위용을 음악천하에 떨쳤다.
여기서 신승훈은 '슬프나 울지 않는다'는 그의 애이불비(哀而不悲) 철학에 기초,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음(音)과 살아 꿈틀대는 감정 표현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특히 베토벤의 Ich liebe dich'를 도입부에 삽입한 파격적인 구성은 극적 비장미를 자아내면서 극적 비장미를 자아내며 대중들의 연약한 감수성을 파고들었다.
그 밖에 '날 울리지마', '우연히' 그리고 '가을빛 추억' 등의 후속곡들도 쉴 새 없이 방송 전파를 유린하며 1992년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이 곡들도 그의 골든 레퍼토리에 빠질 수 없는 넘버들. 미드 템포 사랑노래와 그 속에서 지루함을 막아주는 가벼운 댄스 풍 곡들로 대박을 창출했던 것이다. 이로써 그는 이후의 댄스 아이돌 열풍 속에서도 자신만의 '음악 친목계'를 굳힐 수 있게 됐다.
상기한 곡들 외에도 전곡이 팬들의 고른 표심을 획득하며 신승훈과 서태지라는 양강(兩强) 체제를 확고히 구축했다. 어찌 됐건 신승훈은 그의 디스코그래피 중 국내 대중 음악사의 명반 대열에 낄만한 1집과 본 2집으로 이문세 변진섭 김민우에 의해 주도되어 왔던 발라드 시장을 그의 이름 아래로 새롭게 이동시켰다.
비록 최근엔 다소 주춤한 모습이지만 그를 논하지 않고 1990년대 가요역사를 정리하는 것은 요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만큼 그는 막강했고 발라드분야에서는 이후에도 겨룰 자가 없는 무적의 존재였다. 신승훈 이후 발라드 가수는 얼마든지 있었지만 그들의 어떠한 앨범도 가창력과 작곡에 있어서 이 음반의 질(質)을 능가하지는 못했다.
또한 이 앨범의 대박 바로 직후에 등장한 서태지와 아이들에 의해 음악계는 댄스세상으로 바뀌었지만 오히려 어지러운 춤판에 대비되어 갈수록 앨범의 가치는 상승했다. 발라드가 과연 어떠한가를 말해준 '한국적 연가(戀歌)'의 결정판! '발라드의 황제' 그리고 '국민가수'의 찬란한 영광을 안겨준 기념비가 여기 있다.
-수록곡-
1. 보이지 않는 사랑
2. 영원히 사랑할 꺼야
3. 가을빛 추억
4. 우연히
5. 거울 속의 나
6. 오늘만은
7. 쉬운 이별
8. 햇살 속으로
9. 오늘 밤이 지나면
10. 우연히
11. 날 울리지마
12. 미소 속에 비친 그대
글/ 배순탁(greattak@izm.co.kr)
'음악이야기 > 한국음악'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공일오비 - The Third Wave (1992) (0) | 2023.06.01 |
---|---|
넥스트(N.EX.T) - Home (1992) (0) | 2023.06.01 |
이문세 <3집-난 아직 모르잖아요>(1985) (0) | 2023.06.01 |
봄여름가을겨울 <2집-나의 아름다운 노래가 당신의 마음을 깨끗하게 할 수 있다면>(1989년) (0) | 2023.06.01 |
김현식 <3집>(1986) (0) | 2023.06.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