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3 | 4 | 5 |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
- 김유풍#한광덕#공종학#김현관
- #휴양지의 음악 #코파카바나 #배리 매닐로우
- #수창이#농업방송인터뷰색다르고남다른사진디자인강의#사진디자인 #백구진주 #송월동동화마을#화안카페#파리바게트
- 하얀닭곰탕칼국수
- 김활란개인공원"망우리
- 무릉계곡#김금복#미천골#김석민#김현관
- 꾸지뽕삼계탕
- 선후배정모#전가복#MBC#우연이#큰애#석민#튤립5송이#
- 학교 #참교육이란 무엇일까 #졸업
- 수창이#한영대#우성훈#성용원#조봉환#카페쟌피#마루카페
- 추석#한가위#인사말
- 황윤기의 세계음악 여행dj
- 하얀뚝닭곰탕
- 부천중동 황소갈비#설빙#이자카야 생마차#두열이 부부#윤석이부부#허석이 부부#형과니부부
- 광진이#윤석이
- 동석형기일#6월26일
- #이상준#석선녀#용유출장소#재무계#건축과#신설동#선녀바위#꽃게#용유#최현미
- 개항장야행
- 꼬챙이#꼬기배
- 황철현#꾸지뽕삼계탕#카페포조#우현갤러리#빈티지뮤직카페#찬송교회#이영경#스피커메이커#우현로90번길19-11#01038150679#동인천
- 닭곰탱이신포점#맛있는꿈#이정숙
- 용자회#광진이부부#두열이부부#석이부부#윤석이부부#현관이부부
- 황윤기
- 벽제승화원#기수형#파주광탄#서현공원#인천승화원#인천가족공원#별빛당#어머니#39호#수창이#6호 #만월당#기경이#60호
- 추억의반추#나이듦#어머니#아버지#유동석#이기경#장정석#조광진#그리고 그 이름들..
- 모처럼 수봉산에 올랐다.
- 이병철#고진옥#김용호#오일근#???
- 초계모밀소바
- 유태식과종성이
- 당화혈색소6.7#녹내장주의#아마릴정1일투여량1알줄임#자월보신탕24년3월폐업
- Today
- Total
형과니의 삶
이문세 <3집-난 아직 모르잖아요>(1985) 본문
이문세 <3집-난 아직 모르잖아요>(1985)
이문세 리메이크 열풍이 거세다. 그의 재평가에 대한 중론이 대두될 만큼 이수영, 성시경, 서영은, 리즈, 김범수, JK 김동욱, 조성모등등 이름만 대도 알만한 후배가수들이 줄줄이 '이영훈(작사 작곡) 이문세(노래)'에 도전하고 있다. 가요계의 리메이크 난립이 일목요연하게 이문세 음악으로 정리되는 상황.
현재 가요판도를 쥐고 활발히 움직이고 있는 70년대 태생 가수들이 처음 음악을 듣게 될 시점에, 이문세가 그들 가까이에 있었고 음악정서 결정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얘기가 된다. 그렇지 않고는 이문세의 80년대 명곡에 집중적으로 몰려드는 기이한 형국이 일기 어렵다. 이문세는 그들 내부에 깊이 저장된 노래들을 불러온 셈이다.
비단 70년대 생들뿐만 아니라, 이문세의 < 3집 >은 80년대 중 · 후반 당시의 젊은 여성들의 정서도 붙들고 있었다. 한 50대 남성의 증언을 듣는다. “이문세가 뜨기 시작할 때, 회사 후배 여성들이 열광적으로 좋아했지. (내가) 기혼이었기에 망정이지, 미혼이었다면 몹시 분개했을 것 같다.”
중년에 접어든 지금의 이문세가 라이브 무대에서 노래하는 3집의 옛 레퍼토리들은 주름진 인생과 묵은 경험들이 녹아들어 여성 팬들에게만 한정되지 않지만, 그때 그 시절의 이문세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유독 여성적인 감수성을 획득하고 있었다.
이문세는 이영훈과의 첫 합작품이자 첫 성공작인 이 기념비적 앨범부터 방송디스크자키 외에 가수로서의 명성을 덤으로 얻게 된다. 클래식을 기반으로 한 이영훈의 음악은 당시로선 보기 드문 구조적 아름다움을 띠고 있었으며, 가요보다 세련된 팝을 선호하던 여성청중들에게 막대한 음악적 파장을 일으켰다. 이영훈도 이를 계기로 유명작곡가로서 대접받기 시작한다. 그들 스스로도 그 때의 갑작스런 큰 인기에 대해 “겁이 났다”고 묘사할 정도다.
최근에 리즈가 리메이크한 '난 아직 모르잖아요'의 빅 히트는 연쇄적으로 다른 곡들에게도 이어진다. 이별의 심정을 휘파람에 투영한 '휘파람', 사랑고백이 쉽지 않아 가슴앓이를 한다는 내용의 '할말을 하지 못했죠', 2004년에 성시경이 다시 부른 '소녀' 등이 연쇄적으로 인기몰이를 하게 된다.
1986년에는 조용필의 인기를 넘어섰다는 기사가 나올 정도로 '난 아직 모르잖아요'에 대한 호응은 대단했다. 1980년대 중후반 가요역사를 규정하기 위해서 이문세란 이름 세 글자가 없이는 곤란하다. 일본 활동으로 인해 조용필이 잠시 국내에 부재한 탓도 있었겠지만 당시 이문세의 인기 상승, 아니 급상승은 가공할 수준이었다.
이문세 노래의 생명력이 지금까지 이어지는 것은 '절제' 때문이다. 메이저풍의 발라드 곡이지만 무척이나 슬펐던 멜로디를 그는 슬픔에 매몰되는 것이 아니라 억제하고 통제된 감성으로 소화했던 것이다. 이영훈의 고급스런 멜로디와 이문세의 해석력의 결합은 오히려 보컬 과잉이 만연한 지금에 상대적으로 더 빛을 내고 있다.
이문세의 해석은 노래 방식에서도 색다르게 나타난다. 오케스트라 편곡을 덮여놓으면 클래식이나 다름없었던 이영훈의 멜로디를 대중적으로 풀어내기 위해 이문세는 유연한 연음방식을 버리고 대신 끊어서 부르게 된다. (신승훈이 모창을 할 때면 이런 특징을 더 부각시키곤 한다.)
다른 인기곡들에 비해 약간 소외된 듯 했지만 연인들의 노래방 레퍼토리로 꾸준히 불려지고 있는 유재하 작품 '그대와 영원히'는 이영훈 음악과 유사하다 할 수 있겠지만, 이정선이 만든 '야생마'와 '혼자 있는 밤, 비는 내리고'의 포크적 감성은 일관성이 약간 결여된 감이 있다. 하지만 가요 품질의 일대 진전을 견인한 업적이 돋보이는 앨범이란 위상은 조금도 변함이 없다.
이문세는 5집의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을 최고의 곡으로 선정했지만 앨범으로는 “오늘의 나를 만든 상업적 성공작이자, 음악적으로도 맑고 순수한, 그래서 미친 듯이 만들었다”며 3집을 최고로 꼽는다. 당연한 일이다. 이 앨범을 이문세를 떠올리는 동시에 '발라드'란 장르도 배태했다. 그가 나온 뒤 변진섭 김민우 신승훈 등 무수한 가수들이 출현해 발라드라는 연애편지를 쓰는 게 열병처럼 번져나갔다.
-수록곡-
[앞면]
1. 할 말을 하지 못 했죠 (작사 : 이영훈 / 작곡 : 이영훈)
2. 난 아직 모르잖아요 (이영훈 / 이영훈)
3. 야생마 (이정선 / 이정선)
4. 빗속에서 (이영훈 / 이영훈)
5. 혼자 있는 밤, 비는 내리고 (이정선 / 이정선)
[뒷면]
6. 휘파람 (이영훈 / 이영훈)
7. 소녀 (이영훈 / 이영훈)
8. 하얀 느낌 (이영훈 / 이영훈)
9. 그대와 영원히 (유재하 / 유재하)
10. 어허야 둥기둥기 (건전가요)
- 엄재덕(ledbest@hanmail.net)
<출처: http://www.izm.co.kr/>
'음악이야기 > 한국음악' 카테고리의 다른 글
넥스트(N.EX.T) - Home (1992) (0) | 2023.06.01 |
---|---|
신승훈 - 보이지 않는 사랑 (1991) (0) | 2023.06.01 |
봄여름가을겨울 <2집-나의 아름다운 노래가 당신의 마음을 깨끗하게 할 수 있다면>(1989년) (0) | 2023.06.01 |
김현식 <3집>(1986) (0) | 2023.06.01 |
한국의 대중가요사 (0) | 2023.06.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