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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식 <3집>(1986) 본문
김현식 <3집>(1986)
1986년, TV를 등지고 밤무대에서 활동하던 김현식은 1, 2집을 발표한 후 유망한 젊은 피들을 불러 모았다. 막 대학을 졸업한 전태관, 갓 제대한 김종진 그 둘과 장기호, 유재하와 함께 만든 밴드의 이름은 '봄여름가을겨울'이었다. 그들은 보컬에 준하는 배역으로, 김현식의 도우미를 넘어 주도적으로 음반을 완성했다.
김현식과 봄여름가을겨울! 가을 명지고 밴드부가 유명하다는 소문으로 막연히 입학한, 그러나 이후에 자퇴하고 마는 17세 김현식의 꿈이 실현되는 극적인 순간이 여기 담겨 있다. 그게 바로 김현식의 3집이다.
앨범을 발표하기 전부터 김현식은 밤무대 활동 가수로 유명했다. 지금처럼 수상한 의미가 아니라 당대의 밤무대는 통기타 가수들의 뜨거운 경합의 장이었다고 한다. 진짜배기 가수들이 노래하는 산실을 거쳐 꾸준히 노래하고 자작곡 음반 두 장을 발표했지만 발라드와 트로트만 부르기에 김현식이 구상하는 사운드스케이프는 장대했다.
록을 구현할 밴드의 포맷이 절실했다. 꿈은 이루어졌다. 이후 스타로 발돋움하게 될 젊은 친구들을 포섭하는 데에 성공했고, 원하는 사운드를 주조하는 데에 성공했고, 그리고 30만여 장의 세일즈를 기록하며 판매에도 성공했다. 조용필과 들국화와는 다른 차원의 스타가 탄생했다.
최고의 성공을 거둔 1986년의 3집은 초기작에 비해 많이 정교해졌다. 곡의 스타일이 풍성, 다양해지고 출중한 연주력을 동반하고 있다. 후기작들에 비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죽음에 임박할 때까지 그늘져 있었던 특유의 외로운 감수성, 명멸을 예감하며 미친 듯 타오르는 예술 혼이 가장 찬란하게 빛을 발한다. 한 가수의 드라마틱한 인생과 피해갈 수 없었던 운명을 점지한 비극의 클라이맥스라고나 할까. 김현식에게 드리워진 검은 그림자가 가장 진한, 불길하고도 슬픈 역작이다.
오늘날 우리가 또렷하게 기억하는 '비처럼 음악처럼'이 바로 3집의 수록곡이다. 박성식이 작곡한 이 노래는 올해로 어김없이 20년째, 비 오는 날마다 라디오에서 만나게 된다. 박성식은 훗날 장기호와 '빛과 소금'을 결성하게 되니, 결국 이 작품은 김종진 전태관의 봄여름가을겨울과 함께 빛과 소금이라는 가지를 치는 본목(本木)인 셈이기도 하다.
또한 앨범은 밴드 일원이 되어 습작한 다섯 곡을 선보였으나 결국 유일한 생존곡이 되고 만 '가리워진 길'은 유재하라는 위대한 싱어송 라이터의 등장을 예고했다. 김현식과 음악적 지향이 달라(전태관의 술회에 따르면 섭섭한 마음으로) 도중하차하게 되었지만, 이 곡이 수록된 3집은 유재하에게나 김현식에게나 잊지 못할 원 나잇 스탠드에 다름 아니다. 아울러 김종진이 만든 '쓸쓸한 오후'도 밴드와 보컬의 공생을 일러주는 중요한 곡이다.
작곡의 배분도 인상적이었지만 가장 두드러진 건 물론 연주였다. 김현식만 스타가 된 것이 아니라 함께 하던 후배들도 이후 덩달아 주목받고 성공하게 된다. 후대를 이어 갈 이 '슈퍼 세션'들은 진득한 블루스 풍의 '비 오는 어느 저녁'을 연주하며 기량을 뽐냈다. 기타와 베이스의 연주가 도드라지는 이 곡은 김현식 특유의 어두운 정열을 확인할 수 있다. 어쿠스틱한 느낌의 '슬퍼하지 말아요', '우리 이제'는 절제에 초점을 둔 담백한 곡들. 보컬에 외로이 몸을 맡기며 노래에만 전념해 오던 김현식은 품어왔던 로망을 이렇게 구체화할 수 있었다.
3집은 김현식의 굴곡 많았던 노래 인생의 그래프에서 가장 극점에 있는 앨범이다. 인기와 명예를 얻었으되 눈 감는 순간까지 고통으로 몸부림쳐야 했던, 시대를 빛낸 가수의 소망과 성취가 함께 어우러져 있다. 병상에 누워있을 때에도 피를 토하며 노래했던 김현식을 우리는 잊지 못한다.
한시도 한국인 정서와의 밀착을 놓치지 않았던 김현식의 곡 창조력과 열혈 자세는 20년이 흐른 지금에도 각별하다. 그 뜨거웠던 그러나 슬프도록 아름다운 노래들은 후대에 지속적으로 리메이크되며 추억을 기리고 있지만 노래는, 그리고 그 노래를 부른 가수의 인생은 함께 움직여야 진정한 감동을 선사한다는 생각을 지우기 힘들다.
-수록곡-
1. 빗속의 연가 (김현식 / 김현식)
2. 가리워진 길 (유재하 / 유재하)
3. 슬퍼하지 말아요 (김현식 / 김현식)
4. 비 오는 어느 저녁 (김현식 / 김현식)
5. 우리 이제 (김현식 / 김현식)
6. 떠나가 버렸네 (김현식 / 김현식)
7. 비처럼 음악처럼 (박성식 / 박성식)
8. 그대와 단 둘이서 (이기호 / 이기호)
9. 눈 내리던 겨울밤 (김현식 / 김현식)
10. 쓸쓸한 오후 (김종진 / 김종진)
11. 우리 이제 (하모니카 연주곡)
이민희 (shamchi@hanmail.net)
<출처: http://www.iz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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