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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니의 삶
빨간구두, 구미호, 슈렉 본문
빨간구두, 구미호, 슈렉
2022-06-29 00:10:01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제일 처음 선물로 받은 책은 노란색 표지의 '의사 안중근'이었다. 자식을 의사로 키우실 만큼 담대한 분들은 아니셨는데 어쩌자고 그 책을 어린 아들에게 사다 주셨는지 아직도 나는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한번 진지하게 "왜 그 책을 제게 사주셨나요?" 물은 적이 있지만 그분들은 그 사실 자체를 기억하지 못하고 계셨다. 혹시 내 머릿속에서 기억의 왜곡이 발생한 건 아닐까? 뭔가 멋있는 가문으로 보이려고 어린 것이 영악한 술수를 부린 것일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나는 '아름다운'동화의 세계를 거치지 않고 바로, 육혈포로 민족의 원수 이토 히로부미를 하얼빈 역에서 쏴 죽인다는, 비장하고도 비정한 성인들의 세계로 진입해버렸다.
『의사 안중근』 이래로 내게 충격을 준 또 한 권의 책은 『한국전래동화』라는 수상쩍은 책이었다. 『의사 안중근』을 사주신 뒤, 당신들께서도 미안하셨던지 이번에는 제목에 떡하니 '동화'라는 단어가 들어간 책을 사들고 들어오신 부모님들, 그분들의 교육적 열의를 생각하며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겨가던 나는 이야기 하나하나가 끝날 때마다 야릇한 기분에 휩싸이게 되었다. 이야기들의 분위기는 대체로 이랬다. 하나만 예로 들면, 깊은 산속에서 길을 잃은 나그네 하나가 멀리 어렴풋한 불빛을 발견하고 반가운 마음에 그리로 달려간다. 거기에는 아리따운 아낙 하나만 살고 있다. 그다음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전개다. 길을 잃었으니 하룻밤 유하게 해 주시오. 아니되옵니다. 아낙네 혼자 기거하는 집이니 어찌 외간 남자를 들일 수 있으리오. 비만 그을 수 있으면 되니 부디 내치지 말아 주시오. 그렇다고 어찌 헛간에서 재울 수 있겠는가. 아낙은 남자를 아랫목에 재우고 자신은 윗목에서 잔다. 밤이 이슥해지자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아낙이 자꾸만 사내의 허벅지 위에 자신의 다리를 올려놓는 게 아닌가? 잠버릇이 고약한 것이려니 하고 잠을 청해 보지만 여인의 유혹은 집요하다. 꼬장꼬장한 선비는 갈등하다가 점잖게 그녀의 발을 내친다. 이제 더 이상 아낙은 선비의 허벅지 위에 발을 올려놓지 않는다. 그러나 잠시 후, 선비는 부엌에서 칼 가는 소리에 잠이 깨고..
어리디어린 나는 궁금했다. 아니, 발 좀 올려놓은 걸로 왜 저렇게 예민해지는 거지? 호기심을 잘 참지 못하는 나는 어머니에게 그 연유를 물었다가 책을 압수당하는 봉변을 겪었다. 수상쩍은 한국 전래동화엔 그것 말고도 아슬아슬한 이야기들이 가득했다. 훗날, 어느 술자리에서 동료 문인들에게 이 얘기를 했더니 모두들 입을 모아, "그게 가당키나 한 소리냐"며 믿지를 않았다. 도대체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책에서 여자가 외간 남자 허벅지에 발을 올려놓는다는 게 말이나 되냐는 것이었다. 나더러 이상한 소설 쓰더니 머리가 이상해진 거 아니냐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억울했다. 그 책이 수중에 없으니 보여줄 수도 없고. 그렇지만 그런 책이 있었던 것은 확실하다. 있었던 정도가 아니라 아주 많았다. 이것은 훗날 조선시대 전설을 소재로 소설을 쓰느라 이 자료 저 자료를 뒤지다가 새삼 확인한 것이다. 그러니까 한동안 우리나라 출판계는 동화와 설화를 구분하지 못했던 것이다. 전래 설화들 이별 다른 윤색을 거치지 않고 바로 '동화'로 둔갑하여 시장에 깔렸다. 『청구야담』같은 책을 슬쩍 현대어로만 바꾸어 내놓으면 장사 끝이었다. 먹고살기 바쁜 부모들은 읽지도 않고 그 책들을 애들에게 안겼다. 나도 그런 아이들 중의 한 명이었다.
생각해보면 내 어릴 때만 해도 어린이물과 성인물 사이의 경계는 희미했다. 아이들은 무조건 고전을 읽어야 한다고 믿는 순진한 어른들 덕분에 나는 반금련의 애정행각이 적나라하게 묘사된『수호지』를 아무 검열 없이 읽을 수 있었다. 그러므로 적어도 내 정신세계 속에서 순수한 의미의 '동화'는 자리할 곳이 없었다. 애당초 '동화'는 안중근 의사의 육혈포를 맞고 하얼빈 역 구석에서 숨을 거두어버렸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어린이가 그 시대엔 무척이나 흔했다. 어른들 읽을 책도 사는 사람이 별로 없는 시절에 어느 한가한 부모가 애들책을 사고 있었겠는가. 그렇다면 이런 상황은 시대를 거슬러 올라갈수록 더욱 자심했을 게 틀림없다.
서양은 어땠을까? 그림형제 같은 자들이 한 일은, 처참하고 끔찍한 설화와 전설들을 어린이용 버전으로 재구성한 것이었다. 익히 알다시피 『신데렐라』 초기 버전의 엽기성은 상상을 뛰어넘는다. 유리구두에 발이 들어가지 않자 언니들은 뒤꿈치를 잘라낸다. 피가 철철 흐르는 발을 유리구두에 밀어 넣으려는 무서운 언니들 악독한 계모를 토막내어 죽이는 것은 기본. 빨간모자의 늑대는 할머니를 고스란히 발라먹고 그것도 모자라 어린아이들의 맛난 육체를 노린다.
물론 이런 이야기의 주된 소비자는 사회의 새로운 구성원들, 즉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은 이런 끔찍한 이야기를 통해 사회생활에 필요한 교훈들을 주입받는다. 낯선 사람에게 문을 열어주어서는 안된다(잡아먹힌다. 남의 것을 탐내서도 안된다(발이 잘린다). 엄마를 도와야 한다(그러지 않으면 네 엄마는 죽고 계모가 들어와 불에 달군 쇠꼬챙이로 지질 것이다).
고속도로 휴게소의 교통사고예방 사진전을 연상시키는 이런 엽기적인 이야기들은, 그러나 이제는 너무 순화되어 과거의 '매력'을 잃어버렸다. 말을 못하는 벙어리 인어공주는 기어코 물거품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림형제의 후예인 디즈니는 그 필수적 요소마저도 제거해버렸다. 적어도 안델센의 『인어공주』에는 인생에 대한 일말의 통찰은 있었다. 사랑을 한다는 것은 벙어리가 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렇게 아등바등 사랑을 해봐도 결국은 물거품이 되어 사라진다는 것. 이게 연애라는 달콤한 환상 뒤에 가려진 진실 아닌가?
유명한 『빨간구두』 이야기, 한 번 신으면 죽을 때까지 원치 않는 춤을 추어야 한다. 그만두고 싶다면, 발을 잘라내야 한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만, 이게 인생 아닌가? 한 번 선택한 직업, 한번 맺어진 인연은 발을 잘라내는 고통 없이는 우리 곁을 떠나가 주지 않는다. 지긋지긋할 정도로 우리를 괴롭힌 연후에야 이것들은 마치 시혜라도 베풀듯 이별을 고한다. 피투성이 발을 남겨두고 말이다. 이런 진실을 왜 어린이들은 알면 안되는 걸까?
요즘의 새로운 코드가 엽기라고? 아니다. 엽기는 전혀 새롭지 않다. 엽기는 인류의 아주 오랜 친구였다. 길게는 백 년, 짧게는 수십 년 동안 어린이보호라는 명목하에 억압받던 그 오랜 취향이 다시 돌아오고 있다. 시체의 간을 파먹는 구미호, 딸을 범하려다 돌이 되어버린 아버지, 젓으로 담가진 악독한 계모의 이야기는 불과 얼마 전까지 자장가와 함께 우리의 긴 밤을 함께한 오랜 벗이었다. 이제 다시, 그 이야기들이 귀환하고 있다. 역겨운 교훈으로 분칠된 디즈니풍 가상낙원에 질린 사람들은 다시 그 오래된 이야기 전통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슈렉>에 바쳐진 열광도 어느 정도는 거기에서 기인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슈렉> 역시 투입된 인원과 자본의 규모로 볼 때 그 한계는 명확하다. 애니메이션의, 그리고 동화의 반란은 플래시 애니매이션과 같은 간편하되 새로운 툴에 의해 본격적으로 전개될 것이다.
오래된 이야기 전통과 새로운 기술이 만나는 그런 순간을 나는그저 기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다. 어설픈 교훈도 얼치기 해피엔딩도 없는 그런 세상도..
김 영하와 이우일의 영화이야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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