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긴 들었어도

나이가 들긴 들었어도

벌써 나이가 들었는가? 근래에 사물이 얼보이는 일이 잦다. 작년만 해도 온종일 책을 보는데 피곤함이 없고 모니터를 보며 작업을 해도 낮밤 없이 불편함이 없었는데, 작금에 와서 책 보기는 한 시간 넘기기 힘들고, 급한일이 아니면 컴퓨터 작업도 오래 할 수 없다. 근 이 년 동안 도수조절 없이 쓰고 있는 안경 때문인지, 당뇨 합병증의 초기 증상인지, 아니면 작년부터 사용하기 시작한 스마트폰의 부작용인지 짬을 내 안과엘 들러 제대로 검진을 한번 받아 봐야 할 것 같다. 인간사 올바로 살아가려면 눈앞에 비치는 세상을 제대로 보며 판단을 하고 실행해야 할진대 이처럼 사물을 얼보며 살아가다 무슨 실수를 할지 적이 심려되는 중이다!

일전에 별안간 눈앞에 거미줄 하나가 어른거렸다 안구에 이물감도 없고 그저 눈알의 움직임 따라.. 거미줄 하나 저절로 허공을 떠돌아다니는데 조종할 수 없는 물체처럼, 마치 경험해 보지도 않은 무중력 상태인 것처럼, 시야에서 벗어나지는 않고 제 마음대로 떠다닌다. 손을 들어 거미줄처럼 보이는 물체를 잡으려 해 봐도 손은 허공만 맴돌 뿐이었다. 신기하기도 하였지만, 무언가 잘못된 듯한 느낌이 자리 잡으며 덜컥 걱정이 되었다.

나중에 이 현상이 비문증이라는 것을 알았는데 비문증은 말 그대로 눈에 모기 같은 날벌레가 날아다니는 것처럼 아른거리는 병이다. 원인은 나이가 들면서 초자체가 혼탁해지기 때문이라는데, 초자체란 안구의 중앙 대부분을 차지하는 투명한 젤리 같은 액체인데 노화와 더불어 성분이 변해 투명도가 떨어질 수 있고 그 결과 빛이 혼탁해진 초자체를 통과하면서 망막에 그림자를 만들기 때문에 이 그림자를 까만 점이나 벌레 실타래 등으로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이유를 알고 나서야 비로소 한숨을 돌리기는 했지만 건강에 자신 없음이 여실히 증명되는 순간이었고 점차 나이가 들어가는 것을 실감하였다. 여하튼 이런 현상이 감지된다는 것은 눈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인데 몸이 주는 경고를 무심히 생각하고 넘길 것이 아님은 확실하다.

얼마 전! 친구들과 송년모임을 갖느라 연락을 취하다 보니, 한 친구는 관절수술을 받느라, 한 친구는 손목이 부러져, 한 친구는 내리막길이 불편하다며 불참을 한단다. 그때 머리를 스치는 생각 "그럼, 그럴 수 있지!"... 모임 날! 둘레길을 오르는데 한 친구의 상태가 좋지 않아 보여 어디 아프냐 물어보자 머리가 아픈데 몇 군데 대학병원에서도 정확한 병명을 알 수 없다 하여 답답하다고 얘기를 한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하여 미리 유언장을 작성하는 중이라며 우리에게도 작성해 두라 충고를 하는데 누구 하나 반박 없이 다들 고개를 주억거리는 모습들을 지켜보며 " 아! 우리가 나이가 들긴 들었구나"라는 생각이 자연스레 와닿는다.

유언장 얘기를 듣자니 7년전!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기다리며 삶의 찌꺼기를 정리하고 떠나야 한다는 마음에 지인들과 가족에게 해 줄 말들을 기록하던 그때가 떠오른다. 다행히 살아 남아 덤으로 사는 인생이라 생각하는 지금까지 당시의 생각들을 의식하며 살아가고 있지만, 막상 몸이 정상으로 돌아오고 나서는 그 뜻이 점점 희미해지고 있음이 문제이다. 그나마 내 삶의 편린들을 글로 적고, 한 번쯤 되돌아보고 나서 한 발 앞으로 나가는 지금의 삶이 고마울 따름이다.

이후 "오츠 슈이치"의 "죽을 때 후회하는 스물다섯 가지"라는 책을 보고 나서 마음을 되잡고 매 순간 후회 없는 삶을 살기 위한 노력을 하지만 미력한 부분이 많다. 그래도 부족함을 알아야 채울 수 있을 테니 돌아 가신 천여 명 영혼들의 후회를 의식적으로 마음에 담아 생활하고는 있다.

그 자리에서 친구에게 병명이야 무엇이든 현대 의학의 힘이 있으니 금세 훌훌 털고 건강을 되찾을 것이라고 격려를 해주었다.. 친구도 유언장을 생각할 만큼 삶을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자각했으니 이후의 삶들이 과거보다는 좀 더 다른 새로운 세계로 다가올 것을 알게 될 것이고 행동으로 보일 것이다.

이제부터는 스스로의 방법으로 삶의 전환을 이루어 주위와 가족들에게 웃음과 희망을 주리라 짐작할 수 있으니 인생을 재점검해 보라는 신의 가르침을 알 수 있는 기회를 포착한 것만으로도 우리는 복 받은 사람이라 하겠다. 다만 다른 친구들과 세상 사람들은 굳이 아픈 경험으로 깨달을 것 없이 건강을 소중히 여기고 삶과 죽음의 의미를 진지하게 생각도 해 보면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맙다는 말을 많이 하면서 친절과 겸손한 마음으로 죽음을 목전에 둔 사람들이 알려 준 소중한 조언을 금과 목조 삼아 행복한 삶을 이루어 나가시길 바란다.

2013.12.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