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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니의 삶

그래, 가을이다. 가을이 왔다 본문

내이야기

그래, 가을이다. 가을이 왔다

김현관- 그루터기 2022. 12. 8. 12:28

그래! 가을이다! 가을이 왔다.

수 천 년 전 조그만 섬에 사람이 살았다. 신석기시대에 살았던 그네들의 흔적 따라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레 발길을 옮긴다. 호젓한 오솔길 옆! 잿빛 소나무 담장 거미줄 위에 한 줄기 햇살이 포근히 얹혀 있다. 담장 너머 조그만 연못가에서 휘릿휘릿 잠자리 떼 노니는데, 쌍으로 날아다니는 모습도 익숙하고, 수면 위에서 가쁜 숨을 내쉬는 날갯짓도 정겹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발치를 맴도는 방아깨비와 잿빛 메뚜기의 푸득임이 재밌다. 메뚜기는 녹색이어야지 저리 잿빛은 왠지 싫은데.. 그나마 동무 하자 살랑거리는 모습에 살포시 마음이 열린다.

저 멀리 바닷 소나무 가지가 출렁거린다. 나무 꼭대기에 백로 한 마리 쉬자커니 날아 앉은 자태가 우아하고 맑고 파란 하늘색에 어우러진 흰빛이 더욱 투명하여 가을을 바라보는 이의 마음까지 청량하다. 연못 저쪽에 해오라기가 고개를 끄덕이며 내게 오라 날갯짓하는 듯하여 조금 더 다가가려 풀숲으로 들어서는데, 스르륵 풀잎이 앞으로 갈라지고 있다. 아! 조그만 뱀 하나 입맛 다시며 물가로 달려간다.

"그렇구나! 나를 부르는 게 아닌가 보구나!"
정수리를 달구던 따가운 햇살의 기운이 수그러들기 무섭게 이파리 넓은 나무에는 어느새 단풍이 들어가고 있다. 그악스럽던 여름은 가고 조석으로 선뜻하니 찬바람이 분다. 찬바람 불거든 술 한잔 하자던 처사촌 오빠는 이 여름 막바지에 속절없이 가버렸다. 가을은 그렇게 생채기 하나 그어놓고 내 곁으로 다가왔다.

가을 해는 꼬리를 빨리 감추는데.. 여섯 시가 넘자 어스름 그늘이 연못가로 찾아든다. 잿빛 소나무 담장 옆 풀잎 위에 잠자리 한 마리 졸고 있다. 저 녀석은 아까 짝짓기 하던 놈인데.. 제 짝은 어쩌고 저리 홀로 졸고 있을까?

잠자리 날개에 투명한 가을이 얹혀 있다. 홀연히 가을이 내 마음속을 휘젓고, 눈앞에 보이는 풍경 속에 내가 들어선 것을 보니 지금 나는 가을을 타는 모양이다. 그리 등 떠밀며 가라던 여름은 이제야 가고, 뜬금없는 생채기 하나 잠자리 날개에 얹어 쉰일곱 번째 나의 가을이 사부작 다가왔다."

"그래! 가을이다! 가을이 왔다."

2013. 9. 9 
삼목도 선사시대 유적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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