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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니의 삶
눈물을 흘릴 줄 아는 장군 본문
눈물을 흘릴 줄 아는 장군
눈물을 흘릴 줄 아는 장군
이순신(1545-1598년)이 남긴 <난중일기>에는 칼이 울 정도로 나라를 침략한 왜적에 대한 분노도 임금에 대한 충절도 나오지 않는다. 어머니를 그리는 애절한 마음은 있지만, 이는 오늘날 병역의 의무를 하는 군인들의 편지에도 자주 나타나는 평범한 감정이다. 이순신을 괴롭힌 것은 병사들간의 다툼, 부하장수들의암투, 원균(1540~1597년)의 독단적인 행동, 만성적인 군량미 부족이었다. 전투보다 이순신을 더욱 지치게 한 것은 왜적에 대한 공포나 두려움이 아니라 이와 같은 전쟁의 살림살이였다. 이순신은 병사들에게는 칼을 빼든 위대한 장군이 아니라 우리를 먹여 살리는 어머니같은 존재였다.
이 와중에도 이순신은 우리나라 최초의 종군기자 일까지 맡았으니 그 작품이 <난중일기》다. <난중일기>는 전투 장면은 물론 전쟁의 참담함,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한 인간 이순신의 모습, 그리고 전쟁터에서 싸우며 살아가는 보통 인간들의 삶을 그대로 보여주는 다큐멘터리라 더 가치가 있다. 적과 싸우고나면 항상 적의 수급의 숫자를 속이고 심지어 양민들의 머리까지 베어 적으로 가장하는 부하들을 질책했다. 특히 경상, 전라, 충청의 수군을 통솔하게 되자 자기 말을 듣지 않는 부하 원균을 책망한다. 원균에 대한 이순신의 감정이 좋지는 않았는지 원균이 장계를 먼저 올려 같이 세운 공을 빼앗은 사실을 지적하기도 한다.
# 난중일기
이순신이 임진왜란이 일어난 7년 동안의 기록을 적은 책이다. 연도별로 총 7권으로 구성되었으며, 이순신의 심정과 군사비밀 등 세세한 기록까지 묘사되어 있어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이런 자료를 보고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이순신과 원균은 라이벌이었다"라는 주장을 펼친다. 심지어 과거 군사정부에서 이순신을 신격화해서 군인의 정권 찬탈을 정당화시키려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나오고 있다. 그런데 《난중일기>를 제대로 읽는다면, 이런 의혹은 그저 음모론으로 그럴 수도 있지 않았냐는 추론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먼저 <난중일기>에는 이순신과 왜군, 부하들과 부하들, 이순신을 시기하는 조정대신이나 심지어 선조와의 여러 가지 갈등이 겹쳐 나타나고 있다.
또, 전라도 좌수영에서 적의 근거지인 부산포까지 각 격전지를 돌아다니고 백의종군을 한 뒤에는 국문을 치르고 한양에서 다시 남쪽으로 내려가는 여정을 보이니 <오디세이> 못지않은 여행기다. 무엇보다 사랑하는 어머니를 그리는 이순신의 마음은 매일 밤 고향으로갔으니 이순신은 몸과 마음으로 모든 여행을 경험한 셈이다.
그런데 원균과의 갈등이 생길 수 밖에 없는 원인이 있었다. 이순신은 원균과 달리 부하들을 무조건 죽음으로 내모는 맹장형의 장수가 아니었는데, 이런 이순신의 모습이 원균에게는 나약한 지휘관으로 비쳐졌을 것이다. 《난중일기》에는 지형지물이나 심지어 육군과 합동작전으로 연안에 주둔한 적의 배를 동시에 공격하는 등 아군 피해를 최소한 줄이는 데 목적을 둔 전투가 많다. 또, 전쟁을 수행하려면 지속적인 물자 공급이 필요한데 결국 피난민들이 생업에 종사할수 있도록 도와 물자 지원은 물론 백성들의 마음까지 얻었다.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은 이순신이 단순히 정치력과 친화력만 있는 장군이 아니라 백성들처럼 아플 때는 눈물을 흘리고 부상을 당하면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는 사람이었기에 가능했다. 《난중일기》에는 이순신이 부산진 전투에서 전사한 부하 녹도만호 정운鄭運(1543~1592년)의 이야기를 하며 눈물을 쏟는 장면이 나온다. 수많은 부하가 목숨을 잃는 전쟁터에서 이순신이 정운의 죽음을 더욱 슬퍼한 것은 임진왜란이 나고 자신의 관할지역이 아닌 경상도 바다를 왜군이 휩쓸자 출정을 주저하는 이순신에게 조선의 바다를 지키자고 간언을 한 사람이 정운이기 때문이다.
“나라가 위험에 처해 있는데 군인에게 자신의 관할지가 따로 어디 있겠소.경상도가 무너지고 나면 전라도가 어찌 무사하겠습니까 적이 울타리 밖에 있을 때에는 막기가 쉽지만, 울타리 안으로 들어오면 막기가 어려운 법이오. 군병을 이끌고 나가서 적을 쳐서 영남을 도우면서 호남을 보호할 생각은 하지 않고 그저 머뭇거리며 눈앞의 편안함만 찾는단 말이오. 지금 우리가 울타리 안으로 적을 인도하는 것과 진배없는 일을 하고 있어야만 하겠소?"
정운의 피끓는 간언을 받아들인 이순신은 한마디로 큰 교훈을 얻었다. 조선 천지의 백성들이 받는 고통을자신도 함께 느꼈기에 경상도 바다로 출정한 것이다. 사람에게 필요한 감정 가운데 두가지가 있다고 한다. 첫 번째는 다른사람이 불행한 일을 당했을 때 이를 동정하는 측은지심이고, 두 번째는 다른 사람의 고통을 함께 느끼는 것이다. 이 중 측은지심은 누구나 가질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의 고통을 공유하기는 쉽지 않다. 이순신은 부하를 통해서 감정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배운 사람이기에 위대한 인물이 되었다.
이순신이 한 일 가운데 가장 인상 깊은 것이 있다면, 바로 항복한 적을 인간적으로 대해 주었다는 것이다. 이는 단지 먼 이국에 침략을 하러 온 적군이 원해서 여기 온것도 아니고 명령에 따라 온 것이니 복수를 하지 말라는 인정 차원을 넘어선다. 또, 항복한 왜군에게서 신식무기인 조총 기술만을 전수받으려고 한 것도 아니다. 이순신은 이들도 인간이기 때문에 감금을 하거나 학대하는 것을 막고 원하는 사람에 한해서만 조선군에 협조하도록 허락했다. 한편 당시 조선이 전란에 휩싸여 자기 군사들만 먹여살리기도 버거운 실정에 포로를 데리고 있으면 그만큼 부담이 늘어났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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