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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니의 삶
우수(⾬⽔) 날 오후 본문
우수(⾬⽔) 날 오후
길게 늘어 선 담장을 바라봅니다. 아스팔트에 지는 태양빛이 유난히 반짝이는데 좀처럼 보기 힘든 장관이네요. 관제탑을 시커멓게 삼켜버린 용광로 같은 태양은 시시각각 왕산 봉우리와 가까워지고 있지요. 지금은 해거름 녘! 하루 일과가 끝나갑니다. 웅성거리는 술추렴 소리가 달콤한 유혹으로 다가오며 입술을 간질입니다. 그러고 보니 외항사 건물의 오른쪽 뺨이 벌써 불콰합니다. 저 녀석은 술 소리만 나도 저리 벌겋게 달아오르니 정말 큰일이지요. 꼭 나를 닮았습니다.
오늘 하루 수고한 붉은 태양이 방금 흐릿한 반달과 하이-파이브 하고서 을왕 해변으로 잠자러 가네요.. 저-기 앞 화단에는 바싹 마른 솔잎을 이불 삼은 쑥대 하나 퀭하니 잠 못 이루며 뒤척입니다. 나는 오늘도 퇴근하지만, 쟤는 언제 퇴근할지 모릅니다. 경칩이나 지나야 맑은 초록과 뽀얀 회색빛을 띄며 매일 밤 샛별과 데이트하다 잠이 들겠지요.
나와 놀던 모니터는 밋밋한 소리로 인사를 하고는 금세 코를 곱니다. 창문 밖 사위는 검푸른데 아직도 배부른 달은 푸짐하게 트림을 하고 있습니다. 대나무 잎새들이 달의 트림에 놀라 파르르 경기를 하는 모습이 애처로워 보입니다.
밖으로 나왔습니다. 무한궤도처럼 공항을 도는 셔틀버스에서는 몇몇 사람들이 내리기 무섭게 흔적 없이 사라졌습니다. 저네들은 내일 아침 해와 달이 인사할 때 나와 같이 인사를 하게 될 테지요..
"수고하셨어요..."
"좋은 아침입니다..."
이렇게 오늘 하루가 지나 가는데 이제 나는 어디로 가야 할까요.? 이어폰에서 흐르는 " Donde Voy"를 들으며 잠시 생각 좀 해야겠습니다.. 이제부터 내가 어디로 가야 할지...
2014. 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