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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니의 삶
빽판 키드의 추억 / 서울시민회관, 그리고 잔치는 끝났다 본문
서울시민회관, 그리고 잔치는 끝났다
신현준(申鉉準, 1962~)
1970년대 전반기에는 대형 화재사건이 많았다. 1971년 12월 25일 대연각호텔 화재, 1974년 11월 3일 청량리 대왕코너 화재, 1972년 12월 2일 서울시민회관 화재등이 그것이다. 한 자료를 보니 이 세 개의 화재 사건은 인명피해를 따질 때 역대 1, 2. 3위를 기록하고 있었다. 순서대로 사망자만 163명, 88명, 53명이었다니 화재의 심각성을 실감할 수 있다.
이 가운데 대연각호텔 화재사건을 제외하고, 뒤의 두 사건은 대중음악과 연관이 깊다. 청량리 대왕코너 화재사건에서는 한국 록의 선구자 가운데 한명인 서정길이 사망했다. 서정길은 신중현이 미8군 무대를 벗어나 '일반무대'로 나와서 처음 결성한 밴드 애드 휘의 리드 보컬로 활동한 인물로 (빗속의 여인>을 처음으로 레코딩한 사람이었다. 뒤에는 '라틴 쿼터' 같은 종로의 '생음악 살롱'에서 데블스 The Devils 같은 그룹을 발탁했다는 증언도 들을 수 있었다. 그를 비롯하여 화마에 휩쓸려 유명을 달리한 유·무명의 악사들에게 뒤늦은 조의를 표한다.
이상은 화재를 화두로 하다 보니 나온 이야기이고 꼭지의 핵심은 서울시민회관이다. 그런데 서울시민회관은 1972년 화재로 사라진 뒤 다시 재건되지 않았다. 정확하게 말하면 재건 되기는 했지만 이전과는 전혀 다른 건물이 들어섰다. 바로 세종문화회관이다. 그러니까 서울시민회관은 1961년부터 1972년까지 약 10년 정도 존재한 셈이 된다.
기록을 자세히 보면 서울시민회관이 기획된 것은 1955년부터 였다고 하는 데, 그 당시 예정된 이름은 '우남회관'이었다고 한다. 무슨 갈비집이나 냉면집 이름 같지만 우남이란 당시 대통령이던 이승만의 아호였다. 그 뒤 우여곡절 끝에 1961년 11월 7일에 비로소 개관을 했는데 대통령의 이름이 두 번이나 바뀐 다음이다. 역시 마지막에 밀어붙인 사람은 군인 정신이 투철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서울시민회관에 화재가 발생한 시점을 따져 보면 악명 높은 10월 유신이 선포되고 전국에 한파주의보가 밀어닥친 때였다. 이런 이야기야 이런저런 기록을 뒤져보고 상상을 보태서 하는 이야거릴 뿐이다.
나의 기록에 서울시민회관은 1972년 12월 명하니 TV를 지켜보다가 발생한 화재사건의 놀라움으로만 남아 있다. 다름 아니라<MBC 10대가수 청백전>이 열리고 있을 때의 사건이었다. 가족이 모여서 ‘올해의 가수왕은 누가 될까?’라고 궁금해 하면서 시청하던 프로그램이었던만큼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시민회관이 이 화재를 마지막으로 영원히 사라질 줄은 모르고......
서울시민회관에서 이미자, 패티 김, 윤복희, 남진, 나훈아 같은 속칭 '아다마 가수(으뜸 가수)'들의 쇼나 리사이틀이 열릴 때 왠지 언론의 분위기가 들썩대는 것을 조금 느끼기는 했다. 즉, 이른바 일반무대라고 말한 곳 가운데 최고의 무대가 바로 이곳이었다. 남진과 나훈아가 용호상박의 라이벌전을 펼치던 때 '시민회관 리사이틀'은 두 사람이 자신들의 인기를 과시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무대였다. 그 외에도 비중 있는 영화나 연극(악극)이 상영 혹은 상연된 곳도 이곳이었다.
그렇지만 서울시민회관이 한국 록 음악의 전파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서울시민회관에서 일어난 사건들 가운데 가장 널리 회자되는 사건은 1969년 5월 17일부터 4일 동안 열린 <5·16 혁명 기념 플레이보이배 쟁탈 전국 보컬 그룹 경연대회>와 1970년 7월 25일 신중현의 그룹이 주축되어 열린 <고고 갈라파티 Go Go Gala Party)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사실들을 전혀 알지 못했다. 당시에 몰랐던 것이야 오히려 당연한 일이다. 그렇지만 그 뒤로도 오랫동안 이때의 일을 내게 전달해 준 사람은 없었다. 한때 '록 평론가'를 자처한 사람마저도 30대를 흘려보내기까지 이때에 대한 상세한 이야기를 알지 못했 다니, 신중현을 비롯한 한국 록 1세대들의 진짜 전성기에 대해서는 '담론 형성'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그 점에서 나는 당시의 이야기를 내게 생생하게 들려준 최고의 팝칼럼니스트 서병후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그렇다고 이들에 대해 전혀 몰랐다고 볼 수도 없다. 신중현과 엽전들, 키 보이스, (김홍탁과) 히 식스, (안치행과) 영 사운드, 데블스 등에 대해서는 이름도 알고 있었고 음반과 방송을 통해 히트곡도 몇 곡 들었다. <미인>, <해변으로 가요>, <초원의 빛>, <등불>, <그리운 건 너> 등등 말이다. 하지만 이런 '가요'들이 이들의 진면목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기에는 매우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대학가요제 이전의 그룹 사운드에 대해 갖고 있는 기억은 이 정도일 것이다.
그래서 왕년의 뮤지션들이 당시에 잘 나가던 이야기를 흥분해서 말하는 것을 듣고 있으면, 정말 그 정도였을까? 라는 의문을 지우지 못했었다. 그때의 이야기들은 어떤식의 담론으로도 표상될 수 없는 성질의 것이기 때문에 그런 것일까, 아니면 별 것 아니었던 것을 괜히 과장하는 것일까. 진실은 둘 다일 수도 있고 둘 다 아닐 수도 있다.
어쨌거나 한 시대의 종언은 매우 상징적이었다. 서울시민회관의 소멸. <MBC의 10대 가수 청백전> 도중 발생한 화재로 인해 시민회관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앞서 말했듯 건물이 아예 헐리고 으리으리한 세종문화회관이 들어섰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문턱이 높아진 셈인 데. 이로써 한 시대가 마감된 셈이다.
그러고 보면 나의 세대는 '잔치는 끝나고 파리만 날리는' 시대에 청소년기로 접어든 셈이다. 그래서 요즘도 50대 이상의 사람들이 서울시민회관의 추억'을 이야기할 때면 왠지 부러운 느낌이 든다. 내 옆을 흘러 지나간 것이 아니라 흐르는 것조차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 빽판 키드의 추억 - 2006.11.22 초판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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