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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니의 삶

바흐의 '무반주 첼로 조곡' 본문

음악이야기/클래식 & 크로스오버

바흐의 '무반주 첼로 조곡'

김현관- 그루터기 2024. 12. 20. 11:24

https://youtu.be/UuQZ8VuZTSA?si=_BtIQECCtC29ulHB

 

깊은 영혼의 기도
바흐의 '무반주 첼로 조곡'을 들으며


그 사람이 촛불을 켠다. 갑자기 사방이 환해진다 
저 깊은 음계 아래서 긋는 라장조의 지그 
촛불의 춤


바흐를 들을 때면 언제나 "바흐를 들으며 안경알을 닦는다"는 김성춘 시인의 시구가 떠오른다. 사물이 뿌옇게 보일 때 안경알을 닦으면 눈앞이 명료해지듯 정신이 혼탁할 때 바흐를 들으면 머리가 맑아진다. 그것은 「브란덴부르크 협주곡」이나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나단조 미사곡」 「토카타와 푸가」를 비롯한 오르간 곡, 100여 곡이 넘는 칸타타 등 그의 어느 음악을 들어도 마찬가지이다.

이것은 아마도 '신약의 제5복음 작가'라고 할 정도로 그의 모든 음악이 "기독교 예술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영적 생활을 그렸고, 실생활에서도 깊은 신앙심으로 평생 종교에 헌신한 까닭에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바흐에게는 음악이 곧 신앙이었고 생활이었다. 그의 음악이 지성과 감성, 거기다가 영성까지 갖춘 것은 이런 삶에서 연유한다. 또 하나, 그의 음악이 가장 엄격한 대위법 형식을 쓴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의 음악 형식의 특징은 하나의 성부가 다른 성부를 일정한 간격을 두고 한 음씩, 혹은 각 음정을 쫓아간다. 이 푸가와 캐논 형식은 마치 기도문을 암송하듯 듣는 사람을 어떤 정신의 몰입 경지에 빠지게 한다. 종교를 초월해서 모든 기도문은 사람의 정신을 맑게 한다. 바흐의 작품은 마치 음악으로 만든 기도문 같다.

이것은 파블로 카잘스에 의해 '첼로의 성서'가 된 그의 '무반주 첼로 조곡」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마치 깊은 고난으로부터 시작되는 듯한 「무반주 첼로 조곡」 여섯 곡은 아마도 바흐 음악 가운데서도 가장 오랜동안 잊히고 평가받지 못한 작품일 것이다. 그러나 카잘스의 발견으로 그 자신은 첼로의 거장이 되었고, 이 「무반주 첼로 조곡」은 첼로를 공부하는 사람들의 통과의례곡이 되었다.

이 음악은 아마도 카잘스가 아니었다면 영원히 빛을 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이 곡의 발견에는 에스파냐 바르셀로나에서 있었던 한 에피소드가 따라다닌다.

아버지와 나는 부두 근방에 있는 어떤 고악보서점에 들렀습니다. 나는 악보 뭉치를 뒤져보기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오래돼 변색되고 구겨진 악보 다발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것은 바흐의 무반주 첼로를 위한 모음곡이었습니다. 나는 그 악보가 왕관의 보석이기나 한 것처럼 단단히 움켜쥐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방에 들어가서는 그것들을 열심히 들여다보았습니다. 읽고 또 읽었어요..... 그 뒤 12년 동안 매일 그 곡을 연구하고 연습했습니다. 그래요, 12년이 지나서야 나는 그 모음곡 가운데 하나를 공개 연주회에서 연주할 만큼 용기가 생겼는데 그때 내 나이는 이미 스물다섯 살이었어요. ...... 그 곡은 바흐의 본질 그 자체이며, 또 바흐는 음악의 본질입니다.

·첼리스트 카잘스, 나의 기쁨과 슬픔」 중에서

1973년 97세로 서거한 카잘스는 80여 년의 세월을 매일 똑같은 방식으로 출발했다고 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피아노로 가서 바흐의 『프렐류드와 푸가』 중 두 곡을 칩니다. 이것은 집에 내리는 일종의 축복같은 것이지요."

바흐는 이처럼 카잘스에게 경외심 자체였다.

이 조곡의 가장 큰 특징은 무반주라는 것이다. 선율악기이면 반드시 동반해야 할 통주저음이 없는 것이 특징이지만 첼로가 선율악기이면서 동시에 통주저음의 역할을 감당하는 것이다. '한 성부의 폴리포니', 이것이 아마도 바흐 음악의 매력이며, 마치 기도문을 듣는 듯한, 그래서 그 고귀하고 우아하기 그지없는 단순성이 우리의 정신을 맑게 한다. 

누군가 저 깊은 층계를 내려가고 있다. 
아니 누군가 저 높은 층계를 올라가고 있다. 
한 층계씩 그 사람이 촛불을 켠다.
갑자기 사방이 환해진다.
저 깊은 음계 아래서 긋는 라장조의 지그,
촛불의 춤.

 

 #랩소디 인 블루 /이인해 - 한길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