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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ing - If On A Winter's Night 본문

음악이야기/팝

Sting - If On A Winter's Night

김현관- 그루터기 2025. 1. 15. 00:32

https://youtu.be/Dl1FnmSGj1Q?si=FLnVtQM7O2NfGK7B

 

겨울의 어둠과 그늘을 위한 주문
스팅의 '어느 겨울밤이면...... Winter's Night (2009년)

지구 기후 변화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이라면 겨울이 짧아지는 것이 무얼 의미하는지 압니다. 코펜하겐에서는 유엔 기후변화협약 총회의장 주변에서 거대국가들을 향한 전 세계 NGO들의 대규모 시위가 '지속가능한 세계를 원할 뿐'이라는 캐치프레이즈로 열리고 있다는 소식을 읽습니다. 해마다 겨울이면 쏟아지는, 늘 고만고만해서 재미도 감동도 진정성도 희박한 캐럴 앨범의 숫자마저도 줄어들 만큼 요즘 겨울은 겨울답지 못합니다. 인간이 속한 모든 생태계에서 겨울이 의미하는 것은 살균과 저장 이상의 그 무엇입니다.

뮤지션을 넘어 예술가의 연륜과 면모를 소유한 스팅은 세월이 갈수록 겸허해지는 인품과 함께, 사랑의 기쁨과 슬픔을 노래하는 청춘 타령을 넘어, 세상의 어둠, 지구의 불안이 가져온 인간과 자연의 실존적인 초상에 관해 그 특유의 상상력과 음악 언어로 성찰하고 있습니다.. 그는 은둔 공간에서나 대중매체와 몸을 섞는 공간에서나 늘 현재를 관조적으로 즐기는 듯합니다. 그러면서도 희망보다는 비판의 그늘이 드리우는 세계와 대자연의 미래에 관한 고민을 음악가의 시각에서 이해하는 모습입니다.

스팅의 신작 어느 겨울밤이면...... If On A Winter's Night은 겨울과 크리스마스를 주제로 한 앨범입니다. 겨울 사냥개들의 표적이 되어 버린 듯 외롭고 추운 사내가 내뱉는 넋두리가 담긴 곡 '겨울의 사냥 The Hounds Of Winter 가 처음 발표된 것이 1996, 제목부터 추운 여섯 번째 개인 앨범 머큐리 폴링 Mercury Falling에서였지요. 이미 스팅은 비단 이 곡뿐 아니라 거의 모든 작품을 통해 겨울에 사로잡힌 사람임을 증명해 왔지요.

전형적인 록 음악인 이 곡을 13년 만에 고풍스러운 어쿠스틱 악기와 달라진 창법을 활용해 증세 켈틱 음악풍으로 리메이크한 곡을 들어봅니다. 거기에는 추운 12월에 실연하고 옆구리가 휑해진 남자의 넋두리보다는 대자연의 축복으로부터 점점 멀어져 가는 지구인의 불행한 초상을 탄식하는 스팅의 음유시인다운 메시지가 느껴집니다. 그리고 겨울은 한없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오래된 이름과 존재들의 영혼과 기운이 되살아나는 계절임을 일깨웁니다.

16세기 엘리자베스 시대 영국 음악을 향한 스팅의 애정 어린 여행은 이미 삼 년 전 미로에서 온 노래 Songs From The Labyrinth 에서 작곡가 존 다울랜드 John Dowland에 진지하게 천착함으로써 이 방면을 향한 짧지 않을 행보를 예고했습니다. 도시적 모드와 자연 친화적인 지사의 이미지를 동시에 장착한 당대의 아티스트 스팅, 그저 아우라를 지키며 중세 분위기 물씬 나는 자기 소유의 아름다운 고성에서 팝과 월드뮤직의 교류를 모색하는 정도였던 스팅의 역동적 취향이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이 흥미로운 앨범이 나온 레이블은 클래식 명가 도이치 그라모폰 Deutsch Gramophone 입니다. 이번 앨범은 단순히 크리스마스 혹은 겨울을 주제로 한 앨범일 뿐 아니라 도이치 그라모폰의 의미 있는 아이콘으로 자리 잡은 스팅의 중세 영국 음악을 향한 여행의 또 다른 일환이고, '미로에서 온 노래 Songs From The Labyrinth를 잇는 후속작인 셈입니. 흡사 관객도 적고 규모도 작은 도시 변두리의 소극장에서 중세의 비의를 토로하는 드라마 주인공의 보이스 오버를 떠올리게 하는 미 로에서 온 노래 Songs From The Labyrinth 에선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슬픔을 억누르는 독백을 조금 잠긴 목소리로 표현했었지요. 

이로 비추어 보아 스팅이 삼 년 동안 준비한 웅숭깊은 과제는 '겨울'이라는 근원적인 주제와 배경이었습니다. 어둠의 중심에 빛이 있다는 역설을 믿고, 부활의 필연성과 재생의 계절이 되돌아옴을 축하하던 고대 문명인이 보여 준 상상력과 자연의 순리를 향한 책무로부터 영감을 받았지요.

록과 팝이라는 도구로 런던과 뉴욕의 썰렁한 밤을 노래하던 젊은 날의 스팅은 언젠가부터(틈만 나면 영국과 이탈리아 시골의 오래된 성에서 애완견과 함께 사색 가득한 시간을 가지면서 였을까요?) 인생의 희로애락에 대한 담백한 성찰이 가능한 연륜의 응답이 오기를 기다렸을지 모릅니다. 지옥에 몸을 담글 만큼 비탄과 슬픔에 빠진 인물의 격정적인 이야기를 가슴과 몸으로 받아들이고, 또 자기만의 문법으로 해석하는 데는 그만한 숙성이 필요했을 테니까.  

이제 세상의 빛으로부터 소외된 영혼들의 어둡고 더 추운 크리스 마스와 겨울의 환상과 비의를 시간 여행하듯 찾아 들어간 토스카니 언덕의 고성, 거기에 스팅의 제안으로 모인 현대와 고전, 클래식과 민속음악에 걸쳐 다양한 족적을 가진 음악가들이, 함께 뜨거운 차한 잔에 꼽은 손을 풀며 노래하고 연주함으로써, 그 숙성의 지도와 경과를 세상에 소개합니다. 스코틀랜드의 민요, 캐럴, 자장가, 바흐와 슈베르트, 그리고 스팅과 그의 오른팔이자 왼팔인 20년 동지 기타리스트 도미니크 밀러가 함께 만든 곡까지.

아름답다고 말하기에는 어둡고 쓸쓸하기 짝이 없는 이 겨울 노래들은 어둠과 그늘과 추위를 과장하지는 않았으되, 마술적 기운이 지배하던 중세의 언어와 모드로 연주됩니다. 역설적인 빛, 즉 대자연의 생명과 곤궁한 영혼의 두려움과 부활에 대해 낮지만 절실한 음성이 돋보입니다. 투명하되 촛불처럼 신중하게 빛을 내는 악기들(파이프, 피들, 멜로디언, 기타, 켈틱 하프, 첼로, 트럼펫, 바이올린, 퍼커션)과 조화를 이룬 목소리, 겨울바람을 막아 주는 토스카니의 오래된 건물의 벽 안에서 퍼져 나온, 고대와 중세와 현대의 모든 겨울의 존재를 위한 주문과도 같은 느낌입니다.

수백 번도 넘게 들으면서 정말 오랜만에 겨울 상념에 빠져 있습니 다. 스팅의 이 음악이 마음의 수도꼭지를 꽁꽁 얼게 하는 겨울이 빨리 지나가길 바라는 모든 춥고 불안한 존재들에게 울림과 위로를 줄 거라 믿습니다. 또한 이 계절에 이르러서 영혼이 깊어지고 맑아지는것을 잠시 잊어버린 이들, 그리고 무작정 겨울이 좋은 모든 이와 강아지들과도 공명할 수 있을 겁니다.     음악칼럼니스트 - 강민석 의 산문집 "바람이 속삭이는 너의 이름을"  中 '겨울 저녁에 떠나는 것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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