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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니의 삶
12월부터 시작되는 수첩 본문
12월부터 시작되는 수첩
하루를 시작하고 한 주를 보내면서 그렇게 시간의 흐름을 느끼면서 차고 기우는 달의 모습이 몇 번 지나는가 싶더니, 어느새 한 해의 끄트머리에서 지난 시간을 추스르고 있다. 정년퇴직 후 2년이 지나는 올해는 굴곡 없이 지낸 것으로 보인다. 변화 없는 삶이 그저 좋을 수는 없겠지만, 질풍노도의 시기가 아닌 다음에야 조그만 계획을 세우며 실천해 나가면서 주변과 다툼 없이 평안한 일상을 꾸려 나가는 것이 내 나이 때의 바람인가 보다.
부족한 가운데 친구들과 조촐한 만남과 여행도 다니면서, 도도한 취흥에 젖기도 하고, 하고 싶은 일 몇 가지는 이루면서 지내 온 한 해였지만, 소갈증을 안고 술을 마시느라 아내에게 핀잔을 받는 횟수가 늘어난 것은 잘못이라 할 수 있지만, 이런 게 필부의 삶이요 이마저 누릴 수 있는 것은 온전히 아내의 덕이다. 알뜰한 살림을 꾸리며 웃음을 잃지 않는 아내가 없다면 그나마 소소한 삶마저 지탱하기 힘들었을 테다. 살림이란 말이 "살리다"말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는데 사실 여부는 차치하고서라도 아내의 살림살이가 능숙하여 말 그대로 우리 집을 살리고 있는데 큰 역할을 하여 이만큼이나마 작은 행복을 누릴 수 있음이다.
우리 집은 舊屋이라 한겨울이면 웃풍이 심해서 웅크리며 지내느라 활발한 거동을 못하지만. 그래도 큰 불평 없이 지내는 아내와 두 아들이 고마울 뿐이다. 가장으로서 가족들에게 짐을 지우며 살고 있어도 웃음으로 넘기는 내 가족들과 올 한 해를 행복하게 지내고 나니 다행이란 생각이 절로 든다.
얼마 전 송년회에서 오랜 친구가 하는 말이 "친구야! 이제는 불편함을 피하며 살고 싶구나."라는데 불편함이라 함은 편하지 않다는 것이니 친구가 내게 이 말을 한 것에 의미를 둘 수밖에 없다. 젊지 않은 나이에 한 해를 마무리하며 그간 느껴온 의중을 펴 보인 것이니까!. 친구나 나나 은연중에 사회적인 관계의 피곤함을 거두고 살고 싶을 때가 되었나 보다. 조금은 이기적으로 살고 싶은 마음의 표현이겠지!
'웨인 다이어'라는 심리학자가 쓴 "행복한 이기주의자"라는 책의 첫머리에 보면 " 나의 가치는 다른 사람에 의해 검증될 수 없다. 내가 소중한 이유는 내가 그렇다고 믿기 때문이다." 라 썼는데. 저자가 의도하는 내용은 우리는 그동안 유아기를 지나면서부터 지금까지 타인을 배려해야 하는 도덕적인 삶을 강요받으면서 살아왔지만, 이제는 자신을 존중하고 스스로 행복한 삶을 살아야 자신도 타인도 함께 행복할 수 있다는 말인즉, 친구의 의중에서 저자의 얘기하고자 하는 바가 제대로 와닿는다. 타의적 사회적인 관계를 벗어나 자의적 인간관계를 통해 편안함을 추구하고 싶은 중년의 '행복 바라기'라는 것을.
한 해를 보내려니 세월의 속도가 살아가는 나이에 비례한다는 말이 확연히 가슴에 와닿는다.. 젊은 시절에 그리 더디 가던 시간들이 이제는 거침없는 속도로 질주하고 있어 스쳐가는 시간을 움켜쥐고 싶게 하는데 그 세월 속에 젊은 시절의 꿈과 포부의 부스러기라도 건지며 살아왔다면 덜 아쉬울 테지만 이제는 쉼 없이 흐르는 인생의 강물에서 빈 낚시질만 하고 있는 공허함이 가슴을 두드리고 있어 해거름 녘 이면 뒤를 돌아보며 후회를 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있다.
언제나 그렇듯이. 앞으로도 그렇게 하루를 뒤돌아 보면서 모자란 부분을 되짚어 보면서 "이 정도면 될 거야.. 사람이 하는 일이니까 완벽할 수 없을 거야 " 이렇게 자기 위안을 하지나 않을까? 보통의 사람들도 그럴까? 이렇게 사는 게 인생이라면서? 남이 들을까 넋두리도 중얼중얼 해 가면서? 그러며 하루를 보내고, 일주일이 지나면, 달은 차고 또 기울고 어느새 한 해가 갈 테지. 그래도 한 해중에 꼭 이루고 싶은 것 하나쯤 이루며 살 수 있다면 괜찮은 삶일 거야. 원하는 모든 것을 이루며 살 수는 없을 테니까. 그래 그래야지.
내년은 쥐띠 해 경자년! 조금은 이른듯하지만 친구가 만나면서 챙겨준 수첩에 내년에 해야 할 일들 하나하나 적어 봐야겠다. 늘 간절히 원하고 노력하는 매일이 내가 살아가는 인생일 테니까,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며 후회를 하지 않으려면, 주변과 다툼 없이 평안한 일상을 꾸려 나가려면 무엇을 하며 살아갈 것인가를 오늘부터라도 하나씩 챙겨가면서 지내야겠다. 수첩이 12월분부터 시작되니 잘 됐다.
2019.12.23 - 그루터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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