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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숙해질 때
- 70-80bpm
- 감정의 깊이가 다른 말
- 오블완
- 1mm 치과
- piano
- 동인천역 가새표#남수#보코#친구들
- male vocal
- Saxophone
- 碑巖寺
- 석민이#경민이#도화동시절
- male base vocal
- 인학사무실#참우럭#놀래미#도미#금문고량주#두열#제물포#마장동고깃집#마장동
- uptempo
- 인천시민과함께하는시화전
- 양파즙#도리지배즙#배도라지청#의약용파스#완정역#호경형
- jzzz&blues
- 인천대공원#포레#파반느#단풍
- 60bpm
- 추억의도시
- 티스토리챌린지
- lost in love "잃어버린 사랑" - 에어서플라이 (air supply)#신포동#ai가사
- fork. male vocal. 75 bpm.piano. cello. lyrical. lively.
- 누가바#상윤네집#진열이#금복
- 인천 중구를 사랑하는 사람들
- 경로석#한국근대문학관#윤아트갤러리
- y.c.s.정모
- new trot. male vocal. 60bpm. piano. cello. orchestra. lyrical. languid.
- 당화혈색소6.7#녹내장주의#아마릴정1일투여량1알줄임#자월보신탕24년3월폐업
- blues&jaz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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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당구이야기 (45)
형과니의 삶
조동성-혜화전문 시절의 당구수업 知識 ,知慧 ,生活/당구에 대하여 2009-08-27 15:15:56 혜화전문 시절의 당구수업 어떤 분야에 남보다 깊이 정통하게 되면 ‘전문가’라고 불린다. 이 호칭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도 없지 않으나 스포츠 세계에서만은 이 전문가란 말이 있을 수 없다는 게 나의 지론이다. 스포츠는 기술보다 정신이 앞서야 하고 그런 마음가짐은 곧 노력과 연습량으로 돋보여지기 때문이다. 당구도 분질이 스포츠십인 이상 이 점은 마찬가지여서 ‘당구인’은 있어도 ‘당구전문가’란 있을 수가 없다. 그런데도 이 ‘당구인’을 ‘당구전문가’로 오인하고 있는 경우가 흔히 있다. 이른바 고점자들도 결국은 ‘당구인’일 뿐임을 전제하고 나의 당구이력을 잠시 간추려 본다. 이는 나의 얘기이기 전에 그..
조동성-일본과 중국으로의 당구 나들이 知識 ,知慧 ,生活/당구에 대하여 2009-08-27 15:15:11 일본과 중국으로의 당구 나들이 생각해 보면 나의 당구수업은 국내에만 국한되지 않은 것 같다. 일부러 당구만을 목적한 것은 아니었지만 나의 해외여행은 결과적으로 외국 당구장을 순방한 격이 됐고 외국무대를 돌아본 이 체험이 기량 향상의 알파 요소였음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첫 번째의 외국행은 혜화전문 2학년 때의 겨울방학을 이용한 동경 구경이었다. 지금은 머나먼 현해탄이지만 그 시절의 일본땅은 비교적 내왕이 자유로웠다. 보다 넓은 세계로 시야를 열어 주기 위한 가친의 배려가 관부(關釜)연락선을 타게 만들었으나 1주일여의 동경 체재는 한마디로 ‘당구계 시찰’이었다. 이 당시 동경에는 약 2천여개의 ..
조동성-2차대전 나자 전시체제 돌입으로 당구도 사양길 知識 ,知慧 ,生活/당구에 대하여 2009-08-27 15:14:18 2차대전 나자 전시체제 돌입으로 당구도 사양길 현지의 선배 당구인인 박수복(朴守福)씨와 함께 봉천(奉天) 시내를 샅샅이 구경한 나는 입학원서의 제출 마감이 임박해서 북경대학을 찾아 나섰다. 기차를 타고 국경지대인 산해관을 통과하면서 느낀 점은 역시 중국은 넓고 크다는 것이었고 큰 물에서 큰 인물이 돼야겠다는 호기가 가슴을 부풀게 했다. 그러나 옛말 그대로 하늘은 무심치가 않았으니 잠시나마 놀이(당구)에 몰두했던 나에게 벌을 내린 것이다. 신원조회가 도착되지 않은데다 모교의 추천서마저 제대로의 양식을 구비하지 않아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 만주에서 도중하차만 하지 않았더라도 충분히 재수..
조동성-해방과 더불어 찾아온 대용품 시대 知識 ,知慧 ,生活/당구에 대하여 2009-08-27 15:13:29 해방과 더불어 찾아온 대용품 시대 일제의 사슬에서 풀려난 8·15 해방은 순수 우리 힘에 의한 국권 회복이 아니었던 데서 한동안의 혼란상태가 불가피했다. 이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기까지의 미군정 기간은 구전통과 새 양풍(洋風)과의 격렬한 싸움판이었고 그것은 모든 면에서 자아가 상실된 단절의 시대였다고도 볼 수 있다. 종래의 사교장이던 당구장이 술집이나 다방, 댄스홀로 변신하는가 하면 상아공 자체가 차츰 그 품위를 잃기 시작한 것도 어쩔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었다. 이런 가운데 해방 전까지 30여개에 달했던 서울시내의 당구장수는 불과 1년도 못돼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 더욱 서글픈 일은 과거의..
조동성-6.26전쟁 전후의 황금시대 知識 ,知慧 ,生活/당구에 대하여 2009-08-27 15:12:31 6·25전쟁 전후의 황금시대 군정이 끝난 1948년께부터 50년 6월 전쟁 발발까지의 혼란시국은 한편으로 유락가(遊樂街)로선 최고의 황금시기였다. 너도 나도 모두가 삶의 지표를 찾지 못해 떠돌다 보니 발길 닿는 곳이 그저 유흥가였다. 거리마다 애상조의 유행가 가락으로 넘쳤고 한 잔 술에 시름과 회포가 오갔다. 우후죽순격으로 생겨난 술집과 댄스홀은 밤낮없이 문전 성시를 구가했다. 당연히 당구장들도 제철을 맞기는 마찬가지여서 당구대마다 불티를 날렸다. 이 시절 나 개인적으로 잊을 수 없는 당구장이 있으니 충무로 2가의 태양당구장이다. 서울시내에서는 가장 연륜이 오래고 1급 당구장으로 명성을 자랑하던 이곳..
조동성의 남기고 싶은 당구이야기 知識 ,知慧 ,生活/당구에 대하여 2009-08-27 15:10:48 당구야화1 [항일운동 비밀결사 아지트 서울 광교의 무궁헌당구장] 1924년 일본의 와세다대학을 졸업한 임정호씨가 우리나라 사람으로서는 처음으로 광교통 네거리에 무궁헌(無窮軒)이라는 당구장을 개설하였다. 이 한국 최초의 한국인 당구장은 허름한 목조건물 2층에 당구대 2대의 빈약한 시설이었지만, 기품과 격조에선 그때까지의 일인당구장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럴 수밖에, 당시 식민압제하의 억눌린 민족감정은 무엇 하나 왜놈들에게 처질 수가 없었고, 이런 경쟁의식은 일종의 반항 컴플렉스였다고도 하겠다. 우선, 무궁헌이란 이름부터 나라꽃을 상징해 자주의식을 담았던 것이다. 실제 이 무궁헌당구장은 암암리에 학생운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