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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이야기

그대를 사랑합니다

김현관- 그루터기 2023. 1. 12. 01:45

그대를 사랑합니다

 아내와 아이들에게 컴퓨터를 빼앗기고 혼자 T.V를 보던 중에 무료영화관에서 인터넷만화로 유명했던 강 풀 원작의 "그대를 사랑합니다"라는 영화를 보게 되었다.서울 변두리 산동네를 배경으로 4명의 노인들의 사랑 이야기를 담담한 모습으로 펼쳐 나가는 영화인데 젊은이들의 사랑에서는 느낄 수 없는 깊은 울림과 배려를 볼 수 있는 영화이다. 이 영화의 일부를 인천사람들이면 다 아는 숭의동 109번지 일대에서 촬영했다는데 그래서인지 매 장면마다 친근감이 더 들어 보이는 영화이기도 했다.

그대라는 말은 아내가 죽기 직전까지도 무심했던 김 만복의 죽은 아내에 대한 사랑이 만들어 낸 극중의 단어로 볼 수 있다. 아내외에 다른이에게 여보라는 말을 하면 안 된다는 가슴에 담은 책임감이 결국 송씨에게 " 그대"라는 표현을 쓰게 하고 제목까지 " 그대를 사랑합니다" 로 지어지게 된 것으로 보인다.

자기의 무심함으로 인해 아내가 암으로 고통받고 있는 사실마저도 모르고 지나던 날들에 대한 후회를 가슴에 안고 살아가는 김 만복은 눈이 쌓인 언덕길에서 어려움에 처한 송씨를 도와주면서 그녀에 대한 살뜰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송씨는 궁핍한 강원도 산골생활이 싫어 동네오빠의 꼬드김에 너머가 서울로 야반도주를 했지만 녹녹찮은 서울생활에서 남편과 갓난아이를 잃고서 홀로 폐지를 주워가며 인고의 세월을 보내는 중에 김 만복을 만나 그녀의 일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절을 보낸다.

치매에 걸린 아내를 돌보느라 개인택시 생활을 접고 집근처 주차장관리를 하면서 살아가는 장 군봉의 지고지순한 아내에 대한 사랑에서 눈시울을 붉히지 않는 사람은 없을것이다.아내의 고통을 덜어주고자 함께 세상을 떠나던 그 장면 장면에서 먹먹함에 한동안 눈을 끔뻑여야만 했다. 중간중간에 배우들이 던지는 말들이 현실과 오버랩 되면서 폐부를 찌른다.

 장 군봉이 죽음을 받아들이기로 하면서 함께 떠난 여행중에 김 만복에게 말하던 "우리는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야!"라는 말이나,장례식장에서 "호상은 무슨 호상~ 잘 죽었다는 말이 어디 있냐" 면서 이율배반적인 사회의 통념에 삿대질을 하던 김 만복의 일갈에서 평소 무심코 호상이라 말하던 내 몰염치스러움까지 들킨 것 같이 부끄러워진다.

 송씨의 글배우기와 치매에 걸린 아내 순이의 가출을 계기로 장 군봉과 김 만복은 서로 친구가 되는데 자식들에게 누가 되지 않으려고 마지막 가는 길을 친구 만복에게 부탁한  장 군봉의 편지장면은 나를 비롯한 수많은 자식들의 가슴을 찌르는 아픔을 주었다.부모자식간의 관계가 무엇인지 사람의 도리가 무엇인지를 애둘러 표현하는 방식이 마음에 닿았다.

장 군봉의 죽음은 송씨에게 크나큰 충격이었다.일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현재의 행복도 언젠가 죽게될 삶의 운명에 가슴 아파할 자신이 없어, 지금의 행복을 영원히 가슴에 안고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 고향으로 떠나는데.그 마음을 받아 주는 김 만복의 현명함(?)은 마지막 장면에서 아름다움으로 승화된다.

사람이 살아가는 어느 동네에서나 일어남직한 현실적인 모습에 이 영화의 매력이 있다. 현실과 동화되어 가는 감정을 스스로 가질 수 있어 이 영화의 장점을 느낄 수 있고 언젠가의 내 모습이 장 군봉과 김 만복의 모습에 투영되어 있어 극속에 몰입할 수 있었다. 사실 장 군봉과 같은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그래도 간간 언론에 애뜻한 부부간의 사랑 얘기가 실리는것을 보면 아직 이 사회는 따뜻함이 살아 있음을 느끼게 된다. 서로의 아픔도 함께 나누고,가려운 등도 긁어주면서 한 세월 서로 의지함이 부부이고,늘어가는 주름마저도 아름다운것은 사랑때문인데 나는 지금 아내에게 어떤 사랑을 주고 있을까?

 일상의 감동을 전해주는 “사랑밭 새벽편지”에서 이런 글을 보았다.

 바쁜 병원의 아침 시간.8시 반 엄지손가락 실밥을 풀러온 80대 할아버지, 급하게 일을 마치고 9시까지 어디 가셔야한다는 것. 실밥을 풀어주며 이야기를 나눠보니 9시까지 부인이 입원중인 양로병원에 도착해야 부인과 아침식사를 같이 할 수 있다고.. 늦게 가시면 부인이 화를 내시냐 물으니 그건 아니라며 치매에 걸려 자기를 알아보지 못한지 5년이나 되었다고. 부인이 알아보지도 못하는데 매일 아침 가실 필요가 있느냐고 물으니  미소와 함께 나의 손을 포근히 두드리며 하는 말

 '그녀는 나를 알아보지 못하지만 난 아직도 그녀가 누군지 알고 있거든!'

 이 답변이 부부간에 나눌 수 있는 궁극의 사랑이 아닐까 ? 

2012-01-27 그루터기 김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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