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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니의 삶

천리타향에서 만리타향까지 본문

친구들이야기

천리타향에서 만리타향까지

김현관- 그루터기 2023. 2. 9. 12:01

천리타향에서 만리타향까지

유성기로 심금을 울리던  '천리타향'이라는 노래가 있었습니다. 고향을 떠나 있는 외로운 심사를 절절이 노래한 가사에서 불현듯 한 친구가 떠오릅니다. 천리보다 훨씬 먼 '인도네시아'에서 근무를 하고 있는 이 친구는, 코로나 사태로 인해 일년을 훌쩍 넘겨도 못 오더니 아들내미 장가보내느라 바쁜 일정 뒤로하고 잠시 돌아왔습니다 그나마 14일간 자가격리 중이라 못 보고, 지난주 결혼식장에서 잠깐 만나 안부를 묻고는 오늘에야 제대로 술 한잔 나눌 수 있었습니다.

언제고 보고 싶은 이 친구는 가정 형편이 어려워 미래를 바라보기 힘든 나의 중학교 시절에  힘이 되고 의지가 되었으며 매일 새벽마다 아차산에 뛰어 오르내리며 함께 호연지기를 키우던 막역지우입니다 나이들어 결혼도 하고 세상을  살아가던 중 명퇴를 하며 시작한 사업실패와 건강을 잃어 힘들던 시절에 타국에서 고군분투하던 이 친구와 연락이 끊겼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근 십 수년간 그를 추억하고 그리워하며 지냈는데, 오랜 외국생활을 청산하고 귀국하여 국내에 머물던 친구와 블로그의 글을 통해 다시 만나게 되는 기적 같은 일이 생겼었지요.

공교롭게도 그가 귀국한 즈음부터 글을 쓰기 시작하며 내 심정에 변화가 일어나 세상을 넓게 보기도 하고, 포용과 이해의 뜻을 받아들이면서 마음이 평온해지고, 동동거리던 조바심도 사라졌는데 지금도 서로 잘 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주는 우정의 영감이 작용하여 재회의 기적을 일으켰다고 믿고 있습니다.

친구와 다시 만나던 날! 신포동 카페에서, 월미도에서, 차이나타운에서 그간 살아온 서로의  얘기와 안부를 묻느라 해 저무는지도 모르고 함께 얼굴을 마주 보며 있다는 사실 하나로  그저 흐뭇했습니다. 친구는 그냥 모든 지난 세월의 공간까지도 가슴으로 함께 느꼈으며 무심히 지나던 긴 세월의 느낌도 금세 알아채는 마음의 블랙홀을 공유하였습니다. 그래서 친구라 하고 동무라 하나 봅니다.

이후로도 이 친구는 세계 여러나라의 건설현장을 돌아다니며 일을 하느라 한국에 있는 날들이 그리 많지 않았으나 귀국할 때마다 빈 만남의 공간을 채우며 지금까지 잘 지내고 있습니다. 깊게 잠들었던 추억의 일기장에서 기적처럼 걸어 나온 내 소중한 친구는 더 이상 애잔한 그리움의 대상이 아닌 것이 한없이 기쁘고, 죽음이 우정을 가를 때까지 옆에서 만지며 느낄 수 있는 현실 속의 내 친구라서 고마울 따름입니다.

오늘 아차산 기슭에서 살모사를 잡고 즐거워하던 위험천만한 치기 어린 옛 추억을 술 한잔에 녹여내며 낄낄대는 서로의 모습을 보면서 모처럼 기분 좋은 행복에 젖었습니다. 아쉽게도 며칠 뒤 다시 만리타향으로 되돌아간답니다. 만남의 자리를 파하고 돌아오는 길! 오래전 사춘기 시절에 접하던 정 지용 시인의  '호수'에  또 다른 그리움을 담아 보냅니다.

"얼골 하나야 손바닥 둘로 폭 가리지만, 
보고픈 마음 호수만 하니 눈 감을 밖에."

'남수야! 잘 다녀와라. 내년에 보자..'

2021-10-31 03:37: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