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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니의 삶

삼천포 가는 길 (단편소설) 본문

일상이야기

삼천포 가는 길 (단편소설)

김현관- 그루터기 2023. 2. 13. 00:18

삼천포 가는 길 / 곽 재구

아, 모두들 따사로이 가난하니

배는 두 시간에 한 대꼴로 운항 중이었다. 밤에 삼천포항에서 건너편 늑도의 불빛을 바라본 추억이 몇 차례 있었다. 이 도시의 해안 언덕바지에 있는 관광호텔의 커피숍에서 바라보았던 늑도의 불빛은 꿈결처럼 아름다웠다. 언젠가 저 섬마을에 꼭 가야지 했는데,

오늘 그 뜻을 이룬 것이다.

 

진주에서 삼천포로 빠지는 3번 국도에 접어들었을 때 두 명의아가씨가 손을 들었다. 두 잔의 자판기 커피를 빼 마시고도 가을 햇살이 무료하던 참인데, 나는 차를 세웠다. 삼천포 가는데예………. 아가씨들의 말투가 정겨웠다. 고성을 거쳐 통영을 갈까, 아니면 삼천포를 거쳐 늑도에 들어갈까 잠시 망설였던 행로는 아가씨들의 탑승과 함께 자연스레 결정됐다.

짧은 시간이지만 마음에 드는 도반을 맞았을 때, 혼자인 여행자의권태는 설레임과 영감으로 뒤바뀐다. 삼천포가 고향인 그들은 명절 앞머리에 미리 고향에 다녀오기 위해 서울에서 함께 비행기를 탔다고 했다. 사천공항에서 삼천포의 버스가 많았을 텐데 그들은 버스보다는 히치하이크를 선택했다. 재밌잖아요. 느낌이 좋은 차를 골라손을 들고, 거기 맞춰 차가 서고, 그들의 웃음결이 가을바람만큼이나 선선했다. 아름답지 않은가. 한 번도 인연을 나눈 적이 없는 차를 향해 손을 들고 또 차가 서고・・・

나는 그들에게 물었다. 왜 삼천포시가 사천시로 이름이 바뀌었느냐고. 무슨 중화요리 냄새가 나는 사천보다는 삼천포가 훨씬 정겨운이름이 아니냐고. 그들 또한 이유를 알 수 없다고 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다녔던 학교의 이름에 삼천포란 이름이 들어 있음을 소중하게 여긴다고 했다. 아마도, 잘 나가다 삼천포로 빠진다는 속어의 어감이 싫어서 그런 게 아니겠느냐는 말을 덧붙였다. '빠진다'는 말속에 서울에서 먼 변방의 의미가 들어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서울에서 제일 먼 골짜기에 삼천포가 자리하고 있으면 어떠한가. 교통이 좋은 요즈음은 제주 부산이나 목포 모두 비행기로 같은 시간이 걸리는 것을…………. 서울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더 인심이 후하고 문물은 따스한 빛을 잃지 않고 있음을. 그래서 더 맑고 오붓하고 소중한 고향이 될 수 있음을………….

일제 강점기에 우리말의 순박한 아름다움을 자신의 시에 잘 녹여 썼던 시인 백석은 70년 전 삼천포의 풍경을 다음과 같이 남겼다.

졸레졸레 도야지새끼들이 간다
귀밑이 재릿재릿하니 볕이 담복 따사로운 거리다
잿더미에 까치 오르고 아이 오르고 아지랑이 오르고

해바라기하기 좋을 벗곡간 마당에
볏짚같이 누우런 사람들이 둘러서서
어느 눈 오신 날 눈을 치고 생긴 듯한 말다툼 소리도
누우러니 소는 기르매 지고 조은다
아, 모두들 따사로히 가난하니

-삼천포> 전문

 

마음 한 끝에 자릿자릿 햇빛이 닿는 것처럼 마음이 포근해지지 아니한가. 볏짚같이 누우런 얼굴을 한 사람들, 도야지새끼들과 질마를 맨 소들이 함께 평화로이 지내는 마을………….

어느 방송국 드라마에 '잘 나가다 삼천포로 빠지더니' 라는 대사 한 마디가 나와 삼천포 시민들이 항의했다는 그런 소극적인 애향심보다는 잘 나가면 (우리) 삼천포에 이르지요' 식의 적극적인 사고가 더 필요한 것 아니냐는 그들의 얘기에 나는 귀를 기울였다. 융통성 있는 젊음이라니…. 나는 내 일행이 마음에 들었다.

그들이 탑승하고 나서 차의 주인이 바뀌었다. 운전은 내가 하지만 진로는 그들이 정했다. 나는 그들이 지정해준 길을 따라 몇 군데의 바닷가 마을을 지났다. 차 한 대가 겨우 지날 농로를 따라 '주문' 이란 바닷가 마을에 이르렀을 때 그들이 꾸려온 배낭을 풀었다. 놀랍게도 배낭 안에서는 김밥과 삶은 계란이 나왔다. 학교 다닐 적 친한 친구가 이 마을에 살았어요. 자주 놀러 왔지요. 이 바닷가를 꼭 오려고 서울서부터 생각했지요. 나는 이들이 왜 버스를 타지 않았는지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이곳의 개펄은 돌이 많았고 단단했다. 몇몇 할머니들이 뭔가를 잡고 있어 물어보니 '개발' 을 잡는 중이라 했다. 개발? 내가 의아해하자 나의 여행 도반들이 웃으며 '반지락' 이라고 일러주었다. 반지락을 이곳에서는 '개발' 이라고 한단다.

나는 일행과 함께 일행의 추억이 어린 바닷가에서 김밥을 먹었다. 새벽녘에 서울에서 쌌다는 김밥은 아직 따스한 느낌이 남아 있었고 촉촉했다. 나는 삶은 달걀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어린 시절 소풍 갈때 삶은 달걀을 가져갔잖아요. 우리도 소풍 가니까 김밥에 삶은 달걀에 사이다 싸가자 했죠. 나는 그들과 함께 조금 미적하지만 톡 쏘는 맛이 감도는 사이다를 마셨다.

나는 1003번 지방도로에 들어섰다. 삼천포를 거쳐 충무로 가던 길에 몇 차례 들른 적이 있는 이 길의 입구를 그들이 아니었으면 놓쳤을지도 모른다. 영복 마을은 그 길의 초입에 자리하고 있다. 영원히 복된 마을, 나는 마을 이름에서 마을의 이력을 대충 짐작했다. 마을 안 느티나무 아래 몇몇 노인들이 담소하고 있다. 검은 빛깔의 안경, 목발, 손가락이 잘려 나간 손・・・・・・ 천형이라고 하는 한센병(나병)의 후유증이 역력했다. 이곳에서도 나는 나의 도반들의 덕을 톡톡히 보았다. 일반인들의 출입이 많지 않은 이 마을에 드물게 찾아온 아름다운 아가씨들 탓에 그들은 마음의 경계를 허물고 쉬 이야기를 나눴던 것이다.

조희상 씨(81)는 6.25 직후에 이 마을에 들어왔다.

대동아 전쟁에 출전 소집을 받았지요. 훈련도 다 끝나고 마지막 신검을 받는데 양성 반응이 나왔어요. 그래 전장터에 끌려가지 않았지요. 함께 훈련받은 사람들은 다 죽었지요. 한 명도 살아오지 못했어요.......

조옹은 말꼬리를 흐렸다. 친구들은 다 죽고 살아 남은 자신은 죽음보다 더 못한 삶을 이어 나가고・・・・・・ . 그런 회한이 조용의 주름살에 깊게 새겨져 있었다. 보통학교에 다닐 적 그는 문학에도 관심이 있었다고 한다. 한하운의 시 <보리피리>와 <전라도 길>을 그는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 그 사람 시 참 슬퍼요. 남의 일인 듯 수더분하게 얘기하는 그의 목소리 사이로 가을바람 한 줄기가 지나간다. 40여 명의 환자들 중 그래도 조옹은 자신이 행복한 사람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동갑인 박점이 할머니와 지난 56년간 함께 살 수 있었기 때문이다. 4년 지나면 회혼례를 올려야겠네요 했더니 잇몸으로 환하게 웃으신다.

실안 마을의 바닷가에서 나는 다섯 명의 건장한 청년들을 만났다. 그들은 바다에서 막 건진 싱싱한 병어를 회쳐 소주를 마시는 중이었다. 차를 멈추고 늑도로 들어가는 도선장을 물었더니 우선 회부터 한 점 하라 얘기한다. 그들이 내 도반에 눈독을 들였다. 나는 순순히 차에서 내려 그들이 상춧잎에 싸주는 회를 먹었다. 거제 삼성조선소에 다닌다는 그들은 내게 이 아가씨들을 소개해준다면 직접 늑도까지 사선을 몰아 데려다 줄 수도 있다고 제의했다. 솔깃했지만 그 결정은 전적으로 내 도반들의 몫이었다. 도반들은 그들이 내민 병어회와 음료수 한 잔씩은 마셨지만 전화번호를 달라는 제의에는 웃음으로 대꾸했다. 그들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꼭 부쳐달라며 그들 중 한 명이 명함을 건넸으나 나는 그 명함을 잃고 말았다.

삼천포항에는 배들이 참 많았다. 바다에 배가 많은 것은 장꾼들이 법석대는 장날 풍경을 보는 것만큼이나 기분 좋은 일이다. 갈매기떼들까지 북적댄다면 더더욱・・・・・…. 삼천포항에는 갈매기떼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기분이 참 좋았다. 나의 도반들이 기꺼이 나의 늑도행에 동행했기 때문이다. 배는 두 시간에 한 대꼴로 운항 중이었다. 밤에 삼천포항에서 건너편 늑도의 불빛을 바라본 추억이 몇 차례 있었다.이 도시의 해안 언덕바지에 있는 관광호텔의 커피숍에서 바라보았던 늑도의 불빛은 꿈결처럼 아름다웠다. 언젠가 저 섬마을에 꼭 가야지 했는데, 오늘 그 뜻을 이룬 것이다.

삼천포항에서는 인근 무인도와 유인도를 잇는 연륙교 공사가 한창이다. 뱃길에서만 네 개의 다리가 보인다. 저 다리들이 다 이어지면 삼천포에서 섬과 섬 사이를 달려 남해도에 이르게 된다. 국도3호선의 종점이 삼천포가 아닌 남해의 아름다운 작은 포구 미조까지 연결되는 것이다. 한려수도의 새로운 관광 명소가 탄생할 터.

늑도에서는 많은 낚시꾼들이 내렸다. 섬 사람들이 주낙 낚시 준비에 한창이다. 당연히 나는 늑도에 내려 조금 실망을 했다. 삼천포 쪽에서 바라본 밤 늑도의 상상의 풍경과 현실의 풍경은 어느 정도 차이가 있다.

마을의 작은 고샅길을 다니다가 한 작은 초등학교를 발견했다. 삼천포초등학교 늑도분교, 운동장보다 훨씬 넓은 바다가 운동장 너머에 펼쳐진 그곳에서 나는, 내가 지금까지 보았던 팽나무 중 가장 아름다운 팽나무 한 그루를 보았다. 5백 년, 어쩌면 그보다도 더 나이를 먹었을지도 모르겠다. 일고여덟 개의 가지를 깊게 드리운 그 나무 아래 길게 누워 나무의 전신을 보았다. 도반들 또한 나무 아래 놓인 화강암 벤치 위에 몸을 누였다. 여름 벌레들의 울음소리가 다 사라지고, 반짝반짝 가을 물살들만 나무 이파리 사이로 밀려오는 고즈넉한 시간. 어쩌면 이 나무 아래 벤치는 나라 안에서 가장 책 읽기에 좋은 자리인지도 모르겠다.

내 도반들은 금세 한무리의 아이들과 어울렸다. 함께 손을 잡고 언덕길을 오른다. 그곳에 한 대학의 박물관에서 발굴작업을 하는 현장이 있었다. 청동기 시대의 패총 유적지 발굴 현장이다. 현장 책임자는 아이들과 내 일행에게 늑도의 유적지가 지닌 의미에 대해서 꼼꼼하게 설명해주었다. 무엇인가를 열심히 한다는 것만큼 아름다운 일은 없다.

저물 무렵 늑도에서 나오는 배를 탔다. 선착장에서 어디로 갈 거냐물었더니 항구 맨 끄트머리에 있는 등대를 가리킨다. 그곳이 내 도반들의 마지막 여행지인 셈이었다. 그들은 이곳 등대 주위에서 고등학교 시절을 다 보냈노라 얘기했다. 틈만 나면 이곳 등대를 찾아와 책을 보고, 장래의 꿈을 이야기하고, 몇 번인가는 술을 마신 적도 있다고 했다. 나는 등대의 몸에 새겨진 낙서들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은서야, 여기가 가을 동화냐………… 경태 오빠를 많이 좋아해……여기에 널 버린다. 이젠 잊고 싶다………… 우리 우정 영원히………… 두렵기만 해요. 다시는 사랑을 못할 거 같아요…… 혜민아, 여기 온께니가 너무 보고 싶다……… 현주 누나 다시 태어나도 누나만 사랑해요…………. 이 세상 사람들 다 행복하세요.

* 곽 재구의 포구기행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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