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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니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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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이야기

어 색 함

김현관- 그루터기 2022. 11. 21. 11:02

어 색 함

작은 외삼촌을 모신 병원 영안실에서의 일이다. 어머니와 막내 외삼촌은 열심히 누구누구라 설명하시는데 당최 기억에 없다. 외가댁 행사에만 가면 느끼는 한결같은 현상이다. 오늘도 역시 예외가 아니다. 외사촌 여동생 미숙이 남편도 가물가물하고 미선이 미라 남편들도 다 가물거린다. 사촌 형제들의 배우자를 기억하는 것도 자주 보질 못하면 이렇듯 어려운데, 어른들이 누구라고 열심히 설명한들 그 많은 낯 선 얼굴들이 기억에 와 닿겠는가 말이다. 어찌 되었건 미숙이 남편부터 미라 남편들의 특징을 하나하나 꿰차며, 대충 기억하고 자리에 앉았더니, 예의 그 고문이 시작된 것이다. 설렁설렁 맞장구치고 어색한 대화를 나누고 소주 한잔 마시는 그런 상황의 반복이다.

외가댁 집안의 웬만한 대소사는 주로 어머니께서 다니신 덕분에 참석을 안 한 탓이다. 이번에는 외삼촌께서 돌아가셔서 당연히 참석했으나 둘째 날 참석해서 그런지 그나마 소개받는 사람이 적어 다행이다. 그간은 외사촌 형제들의 혼인 적령기 때라 꽤나 많은 결혼식장을 전전했다. 그런데 결혼식장에 갈라치면 그 많은 먼 친척들과의 대면함에 어색함의 끝을 본다. 결혼식 당일 식장과 식당 두 군데에서 만나는 면면에 대한 소개를 받다 보면 정말 머리가 지끈거린다. 아예 모르던가 하면 괜찮겠지만 알듯 말 듯 생각나는 기억의 끄트머리에 머릿속에서 제 멋대로 돌아다니는 촌수 개념을 이리저리 짜 맞추고 설핏 기억나는 단편적인 상황들까지 합쳐서 대답을 하다 보면 정말 정신없다.

어머니의 외사촌 언니의 남편의 여동생 남편 정도까지 나오면 정말 대책 없다. 아무리 쳐 주지도 않는다지만 시골 촌수는 다 알아야 하는데 그게 자주 만난 것도 아니고 서로 간에 나이들이 자꾸 들어가며 모습들까지 변해가는데 어찌 한 순간에 턱 하니 알아볼까 하는 일이다. 참 희한한 것은 나는 전혀 기억이 안 나는데 어른들은 어릴 적의 나를 잘도 기억들 하신다. "아! 대분이 아들..." " 대수 조카" 하며"네가 어릴 적에"로 시작하는 옛이야기를 듣기 시작할라치면 여기저기에서 "그래 쟤가 그때 어떻게 했고" " 아 그럼 그때 저 아이가.." 하며 이어지는 꼬리 이어 듣기의 연속이다 바로 고문의 연속이다. 나야 알건 말건 시골 노인네들의 장황한 말의 화려한 잔치 속에서 헤매고 있을라 치면 당최 내가 어디에 속해 있는가 하는 망각의 광장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간신히 그 틈바구니의 허술함을 뚫고 비집고 나올 때의 후련함은 나 아니면 아무도 모를 일이다.

 사람의 관계만 어색한 것이 아니다. 정말 어색한 장면이 또 하나 있다. 오산읍 지곳리! 어머니의 고향이다. 지금은 오산시 지곳동으로 행정명칭이 바뀌었다. 권 율 장군의 무용담이 전해지는 "세마대"를 앞산에 두고, 맞은편에도 자그마한 산이 평야를 감싸 안고 있으며 서랑리 방죽으로 흐르는 시원한 냇가가 있는 배산 임수의 요지인 이곳이 나의 정신적 고향이다.

 예전에는 100여 호가 훌쩍 넘는 농가가 있는 전형적인 시골 동네였는데, 지금은 공장도 들어서고 식당도 들어서고 카페촌이 생기고, 점점 도시 물을 먹은 반 [反] 시골적인 동네로 다시 변하고 있다. 몇 년 전부터는 주택들까지 아주 이상스러운 변화들을 보여 주고 있다. 조금이라도 배경이 좋아 보이는 터에는 흙내와 텃밭과 야산에 어울리지 않는 도시적인 건물들이 이곳저곳에 슬그머니 하나둘씩 자리 잡고 있다.

 그중에 마을 한가운데에 자리 잡은 외갓집의 으리으리한 위용은 가장 어색함의 극치를 달린다 중앙 거실이 그냥 2층으로 틔어진 시원한 건축물로 환골탈태한 외갓집은 삶의 질을 높여주는 가구들과 냉, 난방장치 그리고 첨단장치들로 동선을 최소화 해준 시스템들이 외숙모의 오랜 시골집의 불편함을 일시에 해결해 주었다.

하지만 내게는 그냥 충격으로 다가왔다. 처음 그 집을 보는 순간 내 정신적 고향의 지주가 무너져 내리는듯한 굉음이 귓전을 와르르 때리며 스쳐 지나갔다. 시골이 시골이 아닌 사이비가 되었다. 마을 이곳 저구석에 경치 좋은 곳은 죄다 아름답고 화려한 2층 양옥집으로 변신하였고 그런 집들 중 전원에 어울릴만한 집들은 안보인다. 전체적인 경관의 조화로움은 배제된 듯 일산 신도시 주택단지의 건물들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다. 그저 너도 따로 나도 따로인 형국이다. 시골도 아니고 도시도 아닌 그런 동네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집 밖으로 나와 앞 산에 올라 동네를 살펴보니 참으로 옛 시골이 아니다. 자꾸 남의 옷을 입은 것처럼 근지럽고 노인네들의 중얼거림이 자꾸자꾸 내 머릿속을 헤집는다. 시골이 시골이 아니다. 어색하고 갑갑하다. 2007.01.24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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