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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니의 삶

흰 머 리 본문

내이야기

흰 머 리

김현관- 그루터기 2022. 11. 21. 10:31

흰 머 리

 "千字⽂"은 천 개의 한자로 이루어진 문장이란 뜻이다. 천자문은 1500년 전에 중국사람에 의해 만들어 졌다는데 그 사연이 재밌다. 중국 남조의 梁 나라에 주흥 사라는 선비가 있었는데, 그 선비는 가난해서 책을 복원하는 일로 먹고살았다. 하루는 선비의 복원 능력이 뛰어나다는 소문을 들은 무제 (武帝)가 그 선비에게 일부러 아주 낡은 책을 복원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선비가 "책이 너무 낡아 복원이 불가능 하오나, 이 책의 핵심 내용은 요약해 드릴 수 있습니다"라고  대답을 하여, 4자씩 250 구로 된 장편시를 만들어 바친 것이 천자문이다. 무제는 감탄을 금치 못하고, 그 선비에게 관직을 내려 그를 등용시켰다 한다. 전해 내려오는 재미있는 얘기는 주흥사가 천자문을 만드는 동안 너무 고심을 해서 머리가 온통 하얗게 세어버렸다는 설이다. 그래서 혹자는 " 천자문 "을 " 백수문 " -⽩(흰)⾸(머리)⽂(글월) -이라 부른다 한다. 

요즘 엘리베이터 는 사면이 유리처럼 비추이는 곳이 많다. 혼자 그런 엘리베이터를 타다 보면, 평상시 못보던 뒷머리가 보이게 된다. 덕분에 훨씬 늘어난 뒷머리의 흰 부분이 눈에 확 띈다. 동전만큼 벗겨진 가마쪽 맨살도 조금씩 커져간다. 우리 집 남자들은 일찌감치 머리가 센다. 유전인가 보다. 아버지는 40세 전에 이미 반백이 되어 50세 되실 무렵엔 머리 전체가 하얗게 되어 손으로 스윽 빗어 넘기면 햇빛에 온통 은빛이 찰랑거리며 눈이 부셨던 좋은 기억이 있다. 

나도 30대초반부터 새치가 나기 시작하였으나, 신경 쓸 정도는 아니어서 무덤덤하게 지나갔지만, 40대 후반이 지나가며, 별안간 옆머리와 뒷머리에 서리를 맞고 말았다. 다행하게도 윗머리는 흰머리가 없다 사업과 건강에 대한 심적 압박감이 흰머리를 부추긴듯 하다. 할아버지와 비를 비웃듯 큰 아들놈은 고등학교때부터 염색을 하며 일찍 머리가 세는 집안 내력에 동참을 하고 있다. 구청에서 토목 책임자로 근무하는 나의 좋은 친구 제화 군은 이제 거의 은발이 다 되어가는데 요즘 참 보기 좋아졌다. (친구에겐 미안타.. 하지만 내가 보기엔 좋다.-앞에선 얘기 안 한다.)

길거리를 다니다 보면 가끔 학자풍의 연세 드신 분들의 곱게 정돈된 흰머리의 찰랑거림을 보게 되는데 매우 그윽하고 우아하면서 달관한 인생의 성공자 같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이런 흰머리도 있다. 나와 두 살 터울의 아내는 내 흰머리를 유난히 걱정해 주는 사람 중의 하나인데, 흰머리의 대열에 동참하고 싶지는 않겠지만, 세월의 흐름을 막지는 못하고, 군데군데에서 삐죽하니 솟아오르는 새치머리에 무척 신경을 곤두세운다. 

아내는 막내아들에게 새치머리 한올에 100원씩 줄 테니 뽑아달라고 해도 머리가 커서인지 요즘에는 미가 그렇게 애원하고 협박을 해도 어지간히 애를 먹이다가는 큰 선심 쓰는 척 한 번씩 뽑아 주곤 한다. 아들놈의 행태를 보아서는 배알이 틀려 내가 뽑아주고 싶어도 눈에 난시끼가 있어 엉뚱한 검은 머리를 뽑아댄 전력으로 아내에게 스트레스만 주곤 해서 아예 손도 안 대고 작은놈 윽박지르는데 일조만 하고 만다. 자기는 나이 안 먹나? 옛날 아버지가 내게 흰머리 뽑으랄 제 저렇게 뺀질거려 본적 한 번도 없었는데, 자식을 잘 키우는 건지 모르겠다.

세월은 내게 흰머리를 주었는데, 나는 그 세월의 흐름에 무엇을 더하고 가치를 부여해 주고 삶의 의미를 붙여 놓았을까? 한자의" ⼈ " 자는 서로가 기대면서 삶을 살라는 평범한 진리를 담고 있는데, 내가 기대고 내게 기대었던 사람들에게 과연 나는 나를 필요로 했었던 그 많은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의지의 지팡이가 되었을까 하는 생각의 의문부호에서는 자신 없다는 대답밖에 해 줄 수 없다.

이제는 기억도 안 나니 참으로 난감하다. 내가 살아온 인생의 수많은 사건과 일들과 부침의 세월을 기억력 하나에 의지 한다는 건 너무 무리다. 기록의 중요성이 너무도 대두가 된다. 더 늦기 전에 몇 권 안 남은 내 노트들의 메모라도 하나하나 끄집어 내 나의 삶을 한 올 한올 꿰매어 놔야겠다.

흰머리 하면 문득 떠오르는 게 하나 있다. 바로 "백두산"이다. 동북공정의 왜곡된 역사의 진실 한가운데 솟아있는 중국의 일방적 주장에도 힘없이 반론조차 못하고 있는 무력한 후손들을, "대조영" "광개토대왕" "장수왕""을지문덕" "연개소문" "양만춘"과 같은 빛나는 우리 선조들이 어떤 맘으로 지켜보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 참으로 안타까움을 금할 길 없다.

백두산의 ⽩頭는 뜻 그대로 흰머리(산)이다. 연중 흰 눈이 덮여 있어서 붙인 이름이다. 내친김에 세계의 지붕인 히말라야의 어원을 찾아보니 산스크리트로 hima는 '눈', laya는 '보금자리' 또는 '집'이라는 뜻이란다. 후지산은 아이누인의 전승에 따르면 이 산의 이름은 '영원한 삶",이며 혹시 하여 만년설로 일 년 내내 덮여있는 "킬리만자로"의 어원도 찾아보았으나 스와힐리 어로 "빛나는 산"이라는 역시 흰머리와는 상관없는 이름이었다. 

앞으로 반백인 지금의 내 머리가 하얀 은발이 되었을 때, 따뜻한 봄 햇살에 찰랑거리는 은발을 두 손으로 시원하게 쓸어내리며, 후회 없는 인생을 반추하며 살 수 있도록, 선으로의 지향과 깨끗한 심신을 다듬고 푸는 마음을 가져 한걸음 한걸음 바른길로 향해 나가야겠다. 그게 흰머리의 사명이고 흰머리의 의무일 테니까~~ (2007.1.26) - 그루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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