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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니의 삶

아버지라는 이름 본문

내이야기

아버지라는 이름

김현관- 그루터기 2022. 11. 21. 11:29

아버지라는 이름

 나는 아버지에 대해 살갑거나, 존경스럽다거나, 정겹다는 표현을 하기에 어색함을 느낀다. 아버지가 돌아가실때까지, 제대로 된 대화 한 번 못해보고 그저 약주 드시고 하시는 일방적인 말씀을 머리 수그리고 듣던 기억만 있을 뿐이다. 대체 내 아버지는 일과, 술과, 담배로만 점철된 참으로 단순하고, 굴곡없는 평범한 삶을 초지일관 살아내셨을까 ?

 평상시에도 무뚝뚝하고 과묵하시며 휴일에도 별 말씀 없이 신문과, T.V 시청만 하신, 결국 당신의 삶에 윤활유가 될만한 행동을 한 번이나 해 보셨을까 하는 의문만 갖게 했다. 정년 이후에도 일만 하시다, 덜컥 폐암 3기의 진단을 받고 제대로 손도 못 써본 채 생을 마감한 너무나도 억울해 보이는 삶을 사셨다. 아버지에 대한 내 감정을 굳이 표출한다면 "무덤덤" 함이 가장 적당한 표현이 되겠다. 기실 폐암 말기의 고통에 홀로 신음하실 때부터 운명하실 때도, 그 이후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난 아버지에 대하여 별반 연민도 못 느끼고, 눈물 한 방울 안 흘린 지독히 못 된 자식이다. 

 그만큼 아버지에 대한 정이 없지 않았나 싶다. 돌아가실 때까지 당최 아버지와 함께 무엇인가를 해 보았던 좋은 기억이 거의 생각이 안 나니 말이다. 그렇다 해도 나라는 사람은 참으로 안 되었다. 지금까지도 아버지의 진면목을 모르고 앞으로도 모른 채 살아야 될 한심한 인간으로 남겨졌으니 말이다.

 아무리 그래도, 좋은 기억이 없을까 하여 기억의 조각들을 이리저리 맞추고 나서야, 아버지와 함께 했던 일이 생각난다. 대 여섯 살경! 아버지가 몰던 자전거 뒷자리에 앉아, 광나루로 낚시가며 커다란 등을 어루만지던 기억과, 구로동에서 열린 "제1 회 만국박람회"에 아버지 친구분들 몇 분과 어울려 걸어가던 도로의 끝없는 사선만이 아스라이 떠 오를 뿐... 그마저도 술로 인해 나들이의 들떴던 기분이 희석되어 좋다고 얘기하기도 그렇다. 이후의 몇 번의 나들이 역시 술로 인해 벌어지는 안 좋은 기억만 가지고 있어 나들이 소리만 나오면 도리질을 하게 되었다.

 그런 분에게 결혼 후 2달쯤 뒤 조심스레 내민 "결혼 축하패" (결혼 축하패 하는 것 자체도 신기하지만 자식에게 "합니다" 체로 써진 상패 가게의 표본 문체에서 이름만 바꾼)를 받고 나서야, 내 아버지도 연세 드시면서 변하시는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던 게 생각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생각이 전혀 다른 나와 아버지와의 관계는 항상 일촉즉발의 긴장감과 대립 상태의의연속이었고, 급기야는 커다란 의견 충돌로 장남이면서 분가를 하게 된 이후 한 번도 함께 생활하질 못하였다. 결국 아버지와의 대화의 흔적을 찾는 일은 묘연하다고 볼 수 있다. 

어머니는 평생 아버지에 대해 아무런 결정권도 의사표현도 못 하신 채, 그냥 너부죽 엎드려 사시던 전형적 시골 아낙의 표본이신지라, 그 모습이 너무 보기에 안 좋았고 지금까지도 어머니의 그런 모습들이 내게는 큰 멍에로 남아있다. 이제 내 나이도 하늘의 뜻을 아는 나이를 지나가는데, 아버지의 존재감이란 무엇인가 하는 것도 모르며, 무슨 知天命 일까 하는 의문을 스스로 던져 본다.

이런 상태에서  내 두 아들은 나를 어떤 시각으로, 아버지란 존재에 대해 표현할까 하는 생각에 이르러서는 덜컥하는 두려움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제 나는 내 아이들을 생각해서라도 아버지와 화해를 해야 하는 큰 기로에 서있다. 스스로 자식으로서의 도리를 못한 채 아버지만 원망하며 살아왔던 기나긴 지난날의 허물을 벗고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 대해 깊은 고려를 해야 한다. 

 불현듯! 왕의 남자"에서 "장생"과 "공길"의 대화가 생각난다. "너 거기 있어 나 여기 있다. 나 여기 있어 너 거기 있다"라는  말이 순차적으로 이어 나가듯, 아버지와 나 그리고 내 아들들에게서 인생의 한 꼭지를 배우고 나면 아버지란 이름의 존재감을 실감하게 될 것이다. 아버지가 내 아버지이듯 내 아들들에게도 나 역시 아버지란 존재이니까 말이다. 나도 내 아들들에게, 내가 겪어왔던 내 아버지와 같은 모습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일과 술담배로 아내와 자식들에게 소홀했던 많은 날들이 주마등처럼 흐른다. 그래도 아직 난 기회가 있어 다행이다. 적어도 지금 살아 있으니까돌아오는 휴일엔 아버지께서 좋아하시는 술 한 병 사 가지고, 아버지를 찾아뵙고, 평생 동안 못 나누었던 긴 대화를 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그동안 못 흘린 눈물을 울컥 쏟아내야 아버지란 이름과 함께 할 것 같은 자격이 생길 것 같다. 아버지! 너무도 늦게 아버지의 자라를 깨닫고 있는 못난 자식을 용서해 주세요. 2006.12.31 22:50

 

 

 

: ⼆ ⽊ 2006.12.18 23:03

중학교만 졸업하면 남의 집 머슴으로 보내겠다고 이미 가계약까지 하고 졸업하기만을 기다리던 우리 아버지... 국민학교 졸업하고 형편상 중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멀리 볏짚동이 뒤에서 몰래 친구들의 중학교 입학식을 지켜보던 아들을... 우리 엄마는 어디서 구했는지는 모르지만 뒤늦게 입학금을 내고 어렵게 어렵게... 마지막 번호(65번)를 달았지요... 

 국민학교 3학년 때부터 겨울방학이 되면 온기 없고 구멍 난 양말이 아니면 할머니 버선에다 검정고무신을 신고 아버지를 따라 이 동네 저 동네 집집마다 헛간에 쌓여있는 재(아궁이에 불 때고 남은)를사러 다녔지요.. 해 질 무렵이면 얼굴이며 온 몸이 뿌옇게 화장을 한듯한... 왜 그리 추웠는지... 버스도 안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자갈밭의 30리 길... 중간에 대폿집에 들러 아버지는 큰 잔에 막걸리 두 잔.. 나는 김이 무럭무럭 나는 어묵 먹는 맛에 그 추위도 잊었지요.. 세월이 지나 위암에.. 중풍에.. 한 없이 고통 속에 사시다.. 지금은 산꼭대기.. 옛날 고구마와 콩, 깨, 다래, 농사를 짓던 밭에 누우신.. 아버지... 저도 이제는 아버지의 흰머리를 물려받아 반백이 되어 갑니다.. 때로는 아버지를 원망하며 눈물도 많이 흘렸지요.. 아버지. 당신이 고통에 괴로워하실 때 혼자서도 많이도 울었지요.. 그러나 지금은 원망 안합니다.. 그래도 나를 낳아 주시고... 이렇게 반듯하게 길러 주셨으니까요..

 

석바위 2006.12.19 20:39

참 진저리 나는 생활들이었습니다. 물론 안 그렇게 지낸 많은 분들도 계시겠지만, 주위를 돌아보면 내 또래 치고 어려움 없이 지내지 않은 분들이 없었습니다. 참으로 어려운 시절! 어려운 건 참겠지만 ⼆⽊님의 글을 보니 내 상태가 그리 나쁘진 않다는 느낌이 드네요. 이제 저는 아버지와 화해하고 내 두 아들들의 아버지로 다시 정신 차려 태어나야겠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  2006.12.21 17:12

제 기억에 중학교까지 시골에서 살면서 가을 추수철 빼고.. 나머지 계절에는 거의 대부분이 콩죽을 먹었던 것 같아요.. 아침은 굶고 점심은 고구마 아니면 김치에 물 붓고 보리밥을 끓인 국밥을... 저녁엔 콩죽... 다행히 제가 중2 때 우리 시골 동네에서 하우스 열풍이 부는 바람에 빈촌에서 일약 부촌으로 바뀌는 기적이 일어났죠.. 저는 그 촌구석에서 서울이라는 동네로 유학을... 그리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법대는 때려치우고 제가 하고 싶은 그림 공부를 하면서 방황을 했죠...

 

석바위 2006.12.21 21:31

답글에 감사드리며... 그나마도 삶의 어려웠던 부분에서 반전이 생긴다는 것은 매우 고무스러운 일이죠. 본인의 의지를 끝까지 관철시키신 ⼆⽊ 님의 행동이 놀랍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밥이 없어 재강을 먹고 학교엘 갔다가, 술 마시고 오는 못된 놈이라며 불같은 따귀를 때려주신 담임 선생님이 새삼 기억의 한 끝을 부여잡고 있습니다.

집에 와도 아무도 없는 단칸방 툇마루에 놓인 찬장에서, 배급받아 놓은 좁쌀죽을 먹고 어머니 오시길 기다리던 철부지 어린아이가, 툇마루 한편에서 두 다리를 번갈아 흔드는 모습이 보입니다. 하나하나가 기억의 단편이 되어 흑백 사진집이 되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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