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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니의 삶
다 락 방 본문
다 락 방
다락방이라는 단어는 우리에게 어린 시절의 추억을 새록새록 떠 올리게 한다. 물론 어려움과 고난을 상징하는 단어일수도 있다. 안네 프랑크처럼 다락방에 은신하여 살았다던가, 6.25 전쟁 시절 다락방에서 숨어 기거했다는 어른들의 고생 담을 듣는 등의 이야기 말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다락방 하면 할머니와 숨겨놓은 사탕 과 과자, 그리고 숨바꼭질, 놀이터 등을 떠 올리며, 살포시 미소 지을 것 같다.
나 역시 다락방에 대한 기억이 없을 수 없다. 나의 다락방에 대한 기억은 은근한 추억과 고난! 두 가지를 동시에 떠 올리게 한다. 외가댁 다락방은 6-7세의 어린 내가 오르기에는 무척 높았고, 컴컴하다 못해 좁기까지 하였다. 하지만 어떻게든 오르기만 하면, 먹을 것의 보물창고였다. 곶감, 무지개 사탕, 밤 사탕, 약과 등 잦은 제사로 인해 , 남은 먹을거리가 지천이었다. 당시 외가댁과 우리 집을 통틀어 그런 주전부리를 먹을 사람은 나 밖에 없었다. 간혹 외할머니와 이모가 챙겨서 먹여주긴 했지만, 보물창고를 터는 맛에 기를 쓰고 다락엘 오르내렸다.
초등학교 시절, 친척 동무 아이 집에도 다락방이 있었다. 한 달에 한두 번씩 놀러 가면, 다락방은 두 아이의 숨바꼭질터와 잠자리가 되곤 하였다. 참 즐거운 시절의 추억을 남겨준 장소였다. 순수한 동심의 세계였고, 즐거움을 주던 놀이터였다.
막 제대했을 무렵! 부모님이 방 하나를 전세 주며, 어렵게 집을 장만했다. 해서 형편상 내가 잘 곳은 다락방 밖에 없었다. 겨울에는 삼단요로 추위를 달래고, 여름에는 선풍기 하나로 더위를 참는 그런 다락방 생활을 견뎌야 했다. 정말 시베리아와 적도 생활을 오가는,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진저리 쳐지는, 춥고도 무더운 다락방 생활의 잔인한 기억이었다.
집사람은 여유 있던 가정환경 탓으로, 비교적 고급스러운 다락방에 대한 추억이 있다. 처할아버지는 사십여 년 전에 사냥을 즐겨하시다, 영종도에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전망 좋은 널찍한 과수원을 구입하셨던 모양이었다. 과수원에 있는 별장에 다락방이 있어, 방학 때면 배를 타고 영종도엘 가서, 형제자매들끼리 전원생활을 흠뻑 즐겼다고, 자랑을 하며 추억에 젖고는 한다. 특히 다락방에서 내려다 보이는, 바닷물의 밀물과 썰물 모습이 너무 장관이었다고 하는데... 보질 못했으니, 같이 느끼질 못해 안타까울 뿐이다.
"마가의 다락방" 등 종교적인 개념의 다락방도 있고, 내가 알지 못하는 또 다른 개념의 다락방도 있겠지만, 우리들의 다락방은 그냥 어린 동심의 기억의 끄트머리를 끄집어내고 "아! 내게도 그런 경험이 있었지.." 하며 추억을 반추하고 미소를 지어보는 그런 매력으로 남기면 좋을 듯하다.
지금의 도심의 거의 모든 주거형태는 구조상 아예 다락방이 없거나, 다락방 자체를 아예 염두에 두지 않는 추세인지라, 자라고 있는 수많은 우리의 아이들이 다락방이 주는 조그만 즐거움과 추억을 주는 낭만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쉬움을 준다. 나 만의 생각일까! 2007.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