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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zz Carol / Vince Guaraldi Trio / A Charlie Brown Christmas 1965 본문
Jazz Carol / Vince Guaraldi Trio / A Charlie Brown Christmas 1965
김현관- 그루터기 2023. 2. 28. 08:35
매년 받는 즐거운 크리스마스선물
Jazz Carol / Vince Guaraldi Trio / A Charlie Brown Christmas 1965
크리스마스! 기독교도는 물론이고 종교에 별 관심 없는 사람들에게도 기대와 설렘을 주는 1년의 마지막 종착역 같은 시즌. 이맘때만 되면 뭔가 로맨틱한 일이 생길 것만 같고, 왠지 뜻밖의 선물이나 기쁜 사건이 날 찾아올지 모른다는 희망이 온 세상에 눈처럼 내리는 것만 같다. 대체로 별일 없이 그냥 지나가긴 하지만.
“아, 벌써 크리스마스구나!" 하고 느끼게 해 주는 것은 뭐니뭐니 해도 여기저기서 들리는 각종 캐럴송들일 것이다. 12월이되고 첫눈이 내릴 무렵 시작되어 성탄 전야에 피크를 이루는 수많은 크리스마스 캐럴의 홍수에 매년 빠지면서도 매번 즐거우니, 이 노래들에는 거의 평생을 들어도 질리지 않게 하는 일종의 특수한 '크리스마스 방부제 코팅 처리'가 되어 있는 것 같다. 그 코팅 효과를 노리고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크리스마스 앨범들. 캐럴이라고 다 좋은 것은 아닐진대, 잠깐 반짝하는 연예인들로 댄스 메들리를 엮어 파는 상혼은 늘 이맛살을 찌푸리게 한다. 하긴 뭐, 어렸을 적에는 나도 심형래의 "달릴까 말까,징글벨'을 신나게 따라 부르던 기억이 난다.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아무리 정신이 없어도 세 편의 영화를 꼭 다시 본다. 먼저 팀 버튼Tim Burton의 기괴한 진흙 애니메이션 영화 <크리스마스 악몽The Nightmare Before Christmas〉, 짧지만언제나 웃음을 선사하는 TV 영화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빈<Merry Christmas Mr. Bean>, 그리고 가장 오래된 나만의 크리스마스 TV애니메이션 <찰리 브라운 크리스마스A Charlie Brown Christmas>
찰리 브라운과 스누피, 그리고 그 일당 '땅콩들Peanut Gang'은 50년 넘게 전 세계 사람들의 어린 시절을 같이 보내 주고 있는친숙한 캐릭터들이다. 신문이나 단행본으로 보던 이 만화에 경이롭게도 움직이는 2D 애니메이션 버전이 있다는 것을 알게해 준 것이 바로 <찰리 브라운 크리스마스> 비디오였다. 마치 캐릭터들에게 생명이 생긴 것 같았고, 상상으로 그려보던 목소리와 찰리 브라운과 일당들의 식을줄 모르는 인기
찰스 M. 슐츠가 1950년부터 2000년까지 그린 피너츠 Peanuts는 총 17,897편이고 21개의 언어로 번역되어 75개국의 신문에 연재되었다. 이 만화가 이런저런 관련 상품들로 벌어들인 돈이 총 10억 달러가 넘고 아직도 수익을 내고 있다.고 하니 새삼 '개인주도형 문화콘텐츠의 힘을 실감한다. (뽀로로와 뿌까도 화이팅이다!) 2000년 이후에도 많은 신문들이 찰리 브라운 만화를 연재하고 있는데, 모두가 과월호'를 다시 싣는 것이다. 찰리 브라운과 스누피는 스마트폰 앱으로도 등장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거기에는 아름다운 음악의 주인공, 빈스 과랄디Vince Guaraldi의 재즈 트리오가 있었다. 짐작컨대 이 크리스마스 특집 TV 만화가 내게는 '재즈 첫 경험'이었으리라. 어린아이에게 재즈를 들려주는 데 찰리 브라운만큼 좋은 텍스트는 아마 없을 것이다.
1965년 찰리 브라운의 창조자 찰스 M. 슐츠Charles Monroe Schulz는 1시간짜리 만화영화를 기획하며,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빈스 과랄디를 찾아갔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담뿍 묻힌 '찰리 브라운스러운 음악을 주문했다. 빈스과랄디는 1962년에 영화 (흑인 올훼 Black Orpheus)의 재즈 해석인 앨범 《Jazz Impressions of Black Orpheus》로 그 실력을 인정받아 당시 한창 잘나가던 재즈 뮤지션이었다. 연주는 화려하지 않지만 안정적인데다가 곡 해석력과 작곡 능력도 뛰어났던 그는 슐츠의 만화영화 음악 의뢰를 흔쾌히 받아들였고, 이렇게 역사적인 크리스마스 명반은 탄생되었다. 이 시점에서 슐츠가 과랄디 말고 오스카 피터슨이나 빌 에반스 같은 재즈 피아니스트를 찾아가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자칫 너무 어려운 음악이 나와 어린이들을 우울하게 만들었을지 모르니까.
<찰리 브라운 크리스마스> OST는 기본적으로 피아노, 콘트라베이스, 드럼의 재즈 트리오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어 아주 아주 담백하다. 화려한 혼 섹션도 없고 멋들어진 재즈 보컬도 없으며 그렇다고 찰리 브라운이나 스누피가 우정출연하지도 않는다. 처음에 우리 귀를 붙잡는 것은 이미 매우 친숙한 커버곡cover 오리지널 넘버의 멜로디를 그대로 살리면서 자신의 스타일에 맞게 재편곡해 연주하거나 부르는 것들이다. 오래된 유럽 민요인 <소나무야o Tannenbaum〉와 〈What Child is This?>, 교회 찬송가에도 실려 있는 크리스마스 고전 <천사 찬송하기를Hark! The Herald Angels Sing〉, 멜 토메가 불러 널리 알려진 발라드 〈The Christmas Song〉, 그리고 다소 뜬금없으나 슈로더를 위해서 삽입한 베토벤의 〈엘리제를 위하여 FElise>까지. 친숙하다 못해 식상하다.
그렇지만 과랄디는 비범한 자신의 나머지 곡들로 이 앨범을 보석처럼 빛나게 만들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캐럴이자 가장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발라드 중 하나인 <Christmas Time is Here〉가 바로 이 앨범을 통해 탄생한 것이다. 이 곡은 찰리 브라운과 친구들이 부르는 어린이 합창 버전과 재즈 피아노 트리오 버전 두 개가 앨범에 나란히 실려 있어 이채롭다. 크리스마스의 설렘을 연주로 멋지게 표현한 곡 <Christmas is Coming〉과 찰리 브라운, 스누피, 라이너스와 루시가 유유히 스케이트를 타는 모습이 눈에 선한 곡 <The Skating〉, 이후 찰리 브라운 만화의 주제가가 되다시피 한 곡 〈Linus and Lucy〉도 이 앨범에서 처음 선보인다. 40년도 더 지난 음악과 연주들이지만 언제 들어도 크리스마스가 느껴지고 마음이 평화로워지는 이 앨범. 내가 무인도에 떨어지면 무인도에도 어찌 됐건 크리스마스가 찾아올테니 외롭고 이국적인 열대의 크리스마스를 위해 이 CD가 필요할 것이다.
언젠가 자타공인 재즈광인 어떤 선배와 재즈 명반에 관한 지리하고도 시시콜콜한이야기를 한참 나누다가 명반 중의 명반을 꼽으며 이 앨범을 언급하자 그 선배, 만화 주제가 따위를 어찌 듀크 엘링턴, 마일즈 데이비스, 찰리 파커, 존 콜트레인과 견줄 수 있느냐고 피식 웃는다. 즉시 분기탱천해서 피카소가 괴물같이 그린 입체주의 작품들보다 가분수 찰리 브라운 만화가 더 멋진 그림일 수 있다는 이야기부터 시작해, 마일즈 데이비스가 어린이와 크리스마스를 위해 한 일이 도대체 뭐냐는 억지까지 부리며 씩씩거렸다. 급기야 이야기는 찰리 브라운과 인종주의에까지 번져 누구도 뒷감당이 안 되는 상황이 벌어졌지만 말이다.
빈스 과랄디의 앨범은 보통의 재즈 뮤지션들이 수많은 레코딩을 남기는 것을 감안할 때, 상대적으로 몇 장 되지 않는다. 채 오십이 안 된 아까운 나이에 세상을 떠난 탓도 있지만, 한창 전성기일 무렵 찰스 슐츠와 함께 찰리 브라운 TV 시리즈를 만드느라 시간과 열정을 쏟아 부은 이유도 있다.
1969년의 명작 《Alma-Ville> 앨범을 끝으로 이렇다 할 앨범 없이 과랄디는 떠났다. 그가 작곡한 총 15편의 찰리 브라운 시리즈의 음악 중 몇몇 곡을 발췌해 모은 《Charlie Brown's Holiday Hits》가 1998년에 발매되어 과랄디와 스누피 팬들의 갈증을 다소 달래 주기도 했으나, 2000년 찰스 슐츠마저 타계하고 나자 이들의 위대했던 작업은 그만 세월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리고 만다. 하지만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작곡가는 죽어서 음악을 남기는 법. 이번 크리스마스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Christmas Time is Here〉를 들으며 빈스과랄디와 찰스 슐츠, 찰리 브라운과 그의 강아지를 기억할 것이다.
찰리 브라운 만화에도 인종주의가?
찰리 브라운 만화에 등장하는 유일한 흑인인 프랭클린은 1968년에 처음 소개되었다. 프랭클린의 아버지는 베트남전 파병군인이고, 찰리 브라운과 프랭클린은 모래성을 만들면서 친해지게 된다. 언젠가 흑인 코미디언인 크리스 록Chris Rock이 〈SNL(Saturday Night Live)>에서 프랭클린이 인종차별을 당해 비중도 없고 대사도 없다고 투덜대 폭소를 자아냈는데, 슐츠가 지금까지 살아 있었다면 동양인 캐릭터도 한둘쯤 나왔을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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