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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음악으로 기억되는 사람들 본문
영화음악으로 기억되는 사람들
많은 영화들 속에서 배우들의 연기나 감독의 연출만큼이나 잊혀지지 않는 것이 바로 영화음악이다. 우리는 음악감독의 이름을 뚜렷하게 기억하지는 못하더라도 대신 그들이 일구어낸 아름다운 멜로디와 음악을 기억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을 '영화음악가'라고 부른다. 살아 있는 전설 엔니오 모리꼬네와 라스트 사무라이 The Last Samurai」(2003)를 통해 100번째 OST를 맡은 한스 짐머(Hans Zimmer), 주로 독특한 연출 기법의 감독 팀 버튼(Tim Burton)과 콤비를 이루어 활동하는 대니 앨프먼(Danny Elfman) 그리고 우리의 자존심 조성우를 통해 영화음악가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엔니오 모리꼬네
「미션 The Mission」(1986)을 통해 1986년 영국 아카데미에서 음악상을 수상한 엔니오 모리꼬네는 많은 작품에서 잔잔한 멜로디와 가슴 벅찬 감동을 자아낸 인물이다.
1928년 로마 출신으로 트럼펫을 전공한 그는, 이후 할리우드로 진출하면서, 할리우드가 정석처럼 여기고 있던 전통적인 작곡 방식을 과감히 버리고, 휘파람 소리를 비롯한, 차임(Chime), 하모니카 등 새로운 악기들의 차용을 통한 서부 영화음악을 만들어 냈다. 대표적으로 「황야의 무법자 Fistful Of Dollars」(1964)의 휘파람 연주가 바로 그것인데, 수십 년이 지나서도 다양한 영화에서 패러디가 될 만큼 인상적인 멜로디를 구사하는 곡이다.
또한 금주법 시대의 미국 내 갱스터 사회에서 벌어진 배신과 의리를 그린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Once UponA Time In America」(1984)에서 들려오던 플루트 연주는 그의 영화음악의 정점이라고 평가받았다. 작품에 대한 깊이 있는 해석이 담긴 명연주로 영화와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는 쓸쓸함을 재현하였다.
이밖에도 애절한 사랑 이야기를 그린 「러브 어페어 Love Affair」(1994)의 피아노 솔로와 너무나도 유명한 시네마 천국의 <러브 테마 Love Theme>, 금지된 사랑을 그린「로리타 Lolita」 등의 영화음악은 바로 엔니오 모리꼬네를 상징하는 대명사로 기억되고 있다. 오랜 연륜 만큼이나 어느 한 곳 흠잡을데 없는 매끄러움을 선사하는 그의 음악은 이제 고전을 넘어서 전설이 되기에 충분하다.
한스 짐머
가장 왕성한 활동을 펼치는 영화음악가로 유명한 한스 짐머는 신디사이저 연주자였던 경력을 바탕으로 화려한 전자음과 긴박한 스펙터클을 선사한다.
드류 베리모어(Drew Barrymore)와 아담 샌들러(Adam Sandler)가 주연한 영화「웨딩 싱어 The Wedding Singer」(1998)에서 들을 수 있던 버글스(Buggles)의 유명한 히트곡 <Video Killed The Radio Star>가 바로 한스 짐머가 프로듀스한 작품이라면 그의 취향을 엿볼 수 있지 않을까?
데뷔작이라고 할 수 있는「레인맨 Rain Man」(1988) 이후 승승장구하던 그는 계속해서 소방관들의 애환을 그린 「분노의 역류 Backdraft」(1991), 숀 코너리(Sean Connery)의 매력이 물씬 풍기는 「더 록 The Rock」, 검투사의 화려한 일대기를 그린「글래디에이터 Gladiator」(2000) 및 스펙타클한 볼거리로 치장된 블록버스터 진주만 Pearl Harbot」(2001) 등을 통해 선굵은 음악을 들려주었다.
그렇다고 그의 작곡 스타일이 액션영화에만 편중된 것도 아니다. 잭 니콜슨(Jack Nicholson)의 연기가 인상적인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As Good As It Gets」(1997), 모건 프리먼(Morgan Freeman)이 자가용기사로 분한「드라이빙 미스 데이지 Driving Miss Daisy」(1989) 등 감각적이고 서정적인 작품에서도 그의 역량은 십분 발휘되었다. 샘플링을 통해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만들어내는 데 천부적인 재능을 보이는 한스 짐머는 제작자의 의도에 최대한 귀를 기울이고 자신의 음악적 주관만을 내세우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가장 왕성한 활동을 펼치는 만큼 가장 프로의식이 투철하다고 할까? 그는 다작을 뽐내면서도 어느 한 작품 그만의 스타일을 잃어버린 것이 없는 부지런한 장인이다.
대니 앨프먼
대니 앨프먼은 정규 코스를 밟지 않고 독학을 통해 음악을 공부하였다. 그는 불가능은 없다는 신념 아래 획기적인 시도와 예민한 감각에 의존하는 작곡 스타일로 주목받아왔다.
팀 버튼과의 인연은 그가 활동한 '오잉고 보잉고(OingoBoingo)'라는 밴드의 공연을 팀이 관람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이후 팀 버튼이 자신의 영화「피위의 대모험 Pee-wee's Big Adventure」(1985) 스코어를 그에게 의뢰한 것이 큰 성공을 이루면서 그 둘의 찰떡궁합은 화창한 미래를 보장받게 된 것이다. 이후 영화에서만 그의 역량이 표현된 것은 아니다. 그만의 독특한 작곡 스타일은 이른바 '엘프먼에스큐'로 불리며 영화인들의 관심을 사로잡았고, 이로 인해 그는 두 편의 텔레비전 작품을 통해 다양한 음원을 표현해내는 작곡가로 인정받기도 하였다.
가위손을 지니고 태어난 한 소년의 이야기를 독특하고 감성적으로 표현한「가위손 Edward Scissorhands」(1990), 암울한 디스토피아에 젖은 도시 속 망상 「배트맨 Batman(1989), 컬트 무비라고 할 만큼 기괴하고 발칙한 전개의 화성침공 Mars Attacks!」(1996), 따뜻한 가족애를 판타지와 허구를 동원하여 그리는 「빅 피쉬 Big Fish」(2003) 등 다양한 작품에 이름을 올렸다. 여기에 박진감 넘치는 첩보물의 대표작「미션 임파서블 Mission: Impossible (1996)까지 떠올린다면 우리는 독특한 세계관을 바탕으로 영화음악에 혼을 불어 넣는 대니 앨프먼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음악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퀄리티를 보여주지만 작품과 만났을 때 몇 배의 시너지를 일으키는 그의 일련의 스타일은 앞으로도 무수히 많은 작품에서 효과를 발휘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조성우
조성우는 국내 영화음악계의 독보적인 존재다. 정규 음악교육은 전혀 받지 못했지만, 연세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한 만큼 섬세하고 예리한 시선으로 시놉시스를 꿰뚫어 영상에 음악을 덧씌우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다. “영화와 음악의 관계는 바로 사랑하는 남자와 여자의 관계와 같다."라고 말하는 그의 영화음악에서 애잔함과 서정성을 느끼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감각과 통찰력 있는 시선이 만나 지금까지 국내 영화에서 경험하지 못한 풍부한 음악을 들려주는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그의 음악 스타일은 엔니오 모리꼬네와 비슷하다고도 할 수 있지만, 결코 클래식에만 집중하지 않고 다양한 영역대의 악기 사용과 탁월한 작곡실력을 바탕으로 장르를 넘나들고 있다. 그의 음악은 우리가 기억하는 영화들 곳곳에서 접할 수 있다. 가까이는 전도연이 1인 2역으로 열연한 인어공주」(2004)의 제주도 어귀에서, 멀리는 허진호의 데뷔작 「8월의 크리스마스」에 등장하는 초원사진관 한 편에서 들려온다.
그렇다고 그의 음악을 멜로영화에서만 들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시리즈로 자리 잡고 있는 공포물「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 (1999)와 이명세 감독의 걸작 인정사정 볼 것 없다」 (1999), 복고풍 향수를 불러일으킨「해적 디스코 왕 되다」 (2002) 등 그는 특정 장르에 편중하지 않고 다양한 스타일을 유감없이 발휘해왔다.
그러한 필모그라피 가운데 조성우의 스타일과 손길을 통해 비상하는 작품을 꼽는다면 단연 「8월의 크리스마스」와 「고양이를 부탁해 (2001) 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남들보다 죽음을 먼저 맞이하는 한 남자의 무덤덤한 심리를 표현한 「8월의 크리스마스의 정원과 다림, 그리고 방황하고 도약하는 갓 20대 소녀들의 생생한 현실을 그린 「고양이를 부탁해」에서 그의 음악이 했던 역할을 좀더 살펴보자.
먼저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특별히 기억나는 음악이라고는 산울림의 <창문너머 어렴풋이 옛 생각이 나겠지요>일 뿐이다. 여름에서 가을로 막 접어드는, 정원의 옷차림이 반팔에서 긴팔로 전환되는 그 시기에 이 곡이 강렬하게 들려온다. 이 노래는 영화 전반에 들려오는 음악의 수수한 떨림을 보다 긴 여운으로 남긴다. 그리고 필름이 담는 풍경마다 이름을 붙인 각 곡은 정원과 다림의 감정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한석규가 직접 부른 <8월의 크리스마스>처럼 직접적이지는 않지만, <다림의 Waltz> <초등학교 운동장> <파출소에서> <문 닫힌 사진관> 등은 마치 자신의 운명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정원의 영정 사진처럼 잔잔히 귓가에 맴돈다.
8월의 크리스마스」보다는 좀더 밝은 이미지를 연출하는 「고양이를 부탁해」에서 그는 음악을 통해 완성의 내일로 향하는 소녀들의 꿈을 표현한다. 꿈을 가득 머금은 별을 하늘에 쏘아 올리는 소녀들의 주제가 <2>, 마치 우주의 어느 별에 불시착해 길을 헤매는 듯한 몽롱함을 선사하는 <티티>와 <산책>, 현실의 벽을 감당하는 <무너지다>의 피아노 연주 등 그들만의 이야기에는 하나같이 따뜻한 숨결이 느껴진다.
조성우만이 들려줄 수 있는 서정미 가득한 음악은 사랑하는 남녀의 관계에서도, 도약하는 스무 살의 풋풋함 속에서도 완벽히 융합된다. 비단 영화음악으로뿐만 아니라 조성우의 음악은 각박해져가는 현실과 메마른 정서를 따뜻한 손길로 어루만지는 촉촉한 단비로 내린다.
영화를 보는 시점은 개인마다 무척 다르다. 배우의 연기나 시나리오에 초점을 둘 수도 있겠지만, 기회가 된다면 영화와 하나가 되는 음악에 귀를 기울여보는 것은 어떨까? 무수히 많은 영화음악가 중에 자신의 취향과 맞는 장인을 찾고 그의 작품을 만나는 색다른 경험을 당신으로부터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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