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형과니의 삶

The Evening Bell - Sheila Ryan 본문

음악이야기/월드음악-샹송,칸초네,탱고,라틴등

The Evening Bell - Sheila Ryan

김현관- 그루터기 2023. 3. 1. 08:17

https://youtu.be/bX1a8UAb2ls

백야! 빈들에 서서
이브닝 벨 (The Evening Bell)  / 쉘라 라이언(Sheila Ryan)


저물녘 겨울 빈 들에 섰다. 붉은 빛이 거치면서 드러나는 백야! 밤은 잠깐 흰 빛을 드러내면서 어슴푸레 온다. 이 어스름은 나를 이완시키고 해방시키는 여유를 주며, 포근하게 뒤를 돌아볼 수 있는 품을 준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교회당 저녁 종소리에 귀가하는 느릿느릿한 발걸음은 고요하고 질서정연하면서 맑다. 다 거둬들이고 남은 빈 마음 하나 들고 종소리에 배어든다. 오래 전 내가 기억하던 종소리에 가슴이 울렁거린다. 종소리를 따라 걷노라면, 소란하던 일상의 버석거리던 누추한 감각들이 잠시 비켜선다.

마음 가장자리로 밀려나는 더께 앉은 삶의 편린들. 고즈넉하게 젖어드는 서쪽하늘을 바라본다. 하나 둘 돋기 시작하는 별을 흔들며 어둠이 곧 내리겠다. 마음에 평화가 오고 종소리에 맞춰 낮은 허밍을 하며 걷는다. 서서히 밀려가는 빛, 속에서 일용할 양식을 거두고 두 손 모아 축복의 감사 기도를 드리는 부부의 평화로운 모습이 순간 떠오른다.

한 편의 전원시를 보는 듯한 평화로운 그림

밀레의 <만종>이 넓게 펼쳐진다. 누구에게나 한두 장씩 가슴에 새겨져 있을 아름다운 명화. 밀레의 <만종〉. 도시로부터 멀리 떨어진 교외의 전원 풍경을 화폭에 담은 그림, 전원시를 보는 듯한 평화로운 그림.

 

<만종>은 하루 일을 마치고 농부 부부가 교회 종소리를 들으며 기도하는 평화로운 그림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이 그림에는 슬픈 이야기가 숨어 있다.

농부 부부가 바구니를 발밑에 놓고 기도하고 있는 모습인데, 사람들은 그 바구니가 감자 씨가 담긴 바구니로 알고 있다. 그런데 사실은 그 바구니에는 씨감자가 들어 있던 게 아니라 그들의 사랑하는 아기의 시체가 들어 있었다고 한다. 그 시대 배고픔을 참고 씨감자를 심으며 겨울을 지내면서 봄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들의 아기는 배고픔을 참지 못해 죽은 것이다. 죽은 아기를 위해 마지막으로 부부가 기도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 만종이다.

그러면 그림 속의 아기는 어떻게 된 것일까? 이 그림을 보게 된 밀레의 친구가 큰 충격과 우려를 보이며 아기를 넣지 말자고 부탁을 했다. 그래서 밀레는 고심 끝에 아기 대신 감자를 그려 넣었다. 그 이후 이 사실이 알려지지 않은 채 그저 농촌의 평화로움을 담고 있는 그림으로 유명해졌다.

신성한 노동 후의 고요한 정적과 평화를 느끼게 하는 <만종>의 슬픈 사연이 그토록 아름다울 수 있었던 것은 기도하는 꼭 맞잡은 두 손에서 어떠한 신념, 믿음이라는 힘이 느껴져서 일 것이다.

이 그림은 누가봐도 가슴 아픈 곤궁함을 서사적인 숭고한 이미지로 표현한 보편지향적인 이상향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초현실주의 작가인 살바도르 달리는 달랐다. 달리는 이 그림을 보며 불안과 슬픔을 느꼈다니 말이다. 달리는 그 원인을 찾아 많은 고심을 했다고 하는데, 현대 과학이 자외선투사작업을 통해 밝혀냈다. 기도하는 부부 앞에 놓인 감자 바구니는 덧칠해져 있었고, 초안은 우리가 상상을 초월하는 아기의 시체였으니 역시 천재는 다르다.

색채로 만들어낸 기도의 숙연함.

삶을 하나의 무늬로 바라보게 하는 가슴시린 날.
아! 종소리가 가까이서 들려온다.

저녁연기처럼 피어오르던 유년의 종소리. 발걸음을 멈추고 잠시 고개를 숙인다. 두 손을 모은다. 밀레의 <만종>을 떠올림과 동시에 내 가슴속에서는 쉘라 라이언의 <이브닝 벨>이 울려나오고 있었다. 이 목가적인 그림에 푹 빠져 있을 때, 오버랩 되는 노래, <이브닝 벨>, 밀레의 <만종>과는 다른 이야기지만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멜로디의 분위기가 같은 종소리로 들리기에..

우울한 인생을 읽게 하는 <이브닝 벨>

서정적인 풍경이나 좋은 그림 한 장에서 느끼는 강렬함은 가슴속에 묻어둔 노래를 불러낸다. 음악이야말로 인간의정서와 열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매체가 아닐까. 나를 보호하고 숨겨주는 평화로운 음악을 향해 이 시간 달려간다.

Those joyous hours are past away,
그 기뻤던 시간들이 순간처럼 지나가고

And many a heart that then was gay
화려했던 많은 가슴들도 지나가고 

Within the tomb now darkly dwells
무덤 속처럼 어두운 지금의 거처에서는

And hears no more these ev'ning bells. 
더는 이브닝 종소리를 듣지 못한다.

And so twill be when I am gone, 
내가 사라지고 없어도 종소리는 들릴 것이고 

That tunefull peal will still ring on 
조율이 잘된 그 종소리는 여전히 살아남는다. 

While other bards will walk these dells 
한편에서는 시인들이 조용한 골짜기를 거닐며

 And sing your praise sweet ev'ning bells. 
달콤한 노래로 이브닝 벨을 찬미할 것이다

<이브닝 벨>의 가사 일부



쉘라 라이언의 <이브닝 벨>을 주의 깊게 듣는다. 음악을 듣는 것이 아니라 우울한 한 생을 읽는다. <이브닝 벨>이라는 것은 내 삶을 구성하고 있는 추억, 젊음, 가족과 함께 어깨를 맞댄 빛나는 시간들이, 결국 한 벌의 종소리라는 상념은 날선 바람에 베인 것처럼 차갑고 서늘하다. 더불어 이 곡과 어울릴 것 같은 애조 띤 예이츠의 시를 감상해 본다. 슬픈 어조의 리듬을 타는 무덤 속처럼 어두운 지금의 거처에서는…늙음의 회한이 얼마나 비통하게 아픔으로 느껴지는지 처절하게 내 심장을 뚫고 지나간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대의 기쁨에 찬 
우아한 순간들을 사랑했으며
거짓된 혹은 참된 사랑으로 그대의 아름다움을 사랑했는지를,
그러나 어떤 한 사람은 그대의 순례하는 영혼을 사랑했고
그대 변한 얼굴의 슬픔을 사랑했음을  <그대 늙거든>  예이츠의 시 일부


<그대 늙거든>은 윌리암 버틀러 예이츠의 시다. 사랑하던순간들을 떠나 보내야 하는 안타까움이 늙음이라고 노래한다. 그 늙음 속에는 젊은 날 수없이 부딪치는 인연들이 자신의 몸과 영혼을 사랑하던 것들이라고 노래하고 있다. 예이츠와 라이언은 아일랜드 사람이다. 잘 조율된 삶을 보며, 생생한 리듬에 빠진다.

제 잎을 모두 쏟아낸 겨울나무처럼 참 쓸쓸한 리듬

아일랜드 민속악기 아이리시 하프와 어우러진, 라이언의허스키하고 맑은 고음의 우울한 목소리로 듣는 이브닝 벨>은 순간을 절실하게 살지 못하고 있는 현재와 지나온 날들에대한 내 후회처럼 들린다.

덧없이 지나는, 내일마저 써버리고 사는 내 모습을 거울에 비추는 것 같다. 제 잎을 모두 쏟아낸 겨울나무처럼 리듬이 참 쓸쓸하다. 볼륨을 높일 때마다 음표들이 말없이 던지는 우울한 물음표를 줍는다.

한때 화려했던 왕국을 무너뜨리고 죽음이라는 목적지 앞에서 서성거리는 만추와 겨울의 경계에서 피할 수 없는 운명같은 것을 읽는다.

내가 사랑했던 풍경들이, 노래들이, 詩들이…, 시간이 흐르면 불평하던 날들이 사진첩에 흑백처럼 빼곡히 꽂힐 것이다. 다시 들어낼 수 없는 시간은 저 멀리 미리 앞서가 있고 내게도 이 노랫가락처럼 우울해지는 날이 올 것이다. 사진첩을 꺼낸다. 지나온 길마다 하얗게 웃음들이 박혀 있다.

아일랜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나라다. 자신들의 역사가 가장 비참하고 비극적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자신의 민족이야말로 가장 순수하고 순결하다며 맹목적인 애국심을 갖는 면에서 우리나라를 무척이나 닮아 있다. 강대국에서 겪은 수난의 역사, 식민지, 남북 분단, 이산가족, 늘 민족의 정체성으로 고민하는 부분도 닮아 있다. 제임스 조이스, 예이츠, 버나드 쇼, 오스카 와일드, 사무엘. 정서가 같다는 것에 동질성을 느끼며 세상에서 가장 슬픈 나라 아일랜드 정서를 품고 <이브닝 벨>을 오래 듣는다.

<이브닝 벨>은 신비스런 분위기가 있으며 무언가 불러내는 듯 주술적이며 동화적이다. 아일랜드 전통음악 켈틱(Celtic)이라는 그들의 조상인 켈트족의 정서가 배여 있다.

켈트족의 정서가 스며 있는 켈틱 음악(Celtic Music)

인도 유럽어족의 일파인 켈트족의 전통음악이다. 켈트족의 이동과 정착 경로인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즈, 프랑스의 브리티뉴, 스페인의 갈라시아 지방 등 서부 유럽지역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으나 중심지는 아일랜드이다.

켈틱 뮤직은 아일랜드의 상징인 '하프'와 민초들의 바이올린이라 할 피들(Fiddle)', 팔꿈치에 바람주머니를 끼고 연주하는 '백파이프', 말린 염소 가죽으로 만든 북 '보드란', 음색이 바람소리를 닮은 피리 '휘슬' 그리고 콘세르티나 (Concertina - 소형 아코디언) 등으로 구성된 음악이다.

라이언의 음악에는 뉴에이지 성격이 강하고 아일랜드 고유의 정서가 숨어 있다. 근면하고 친절하며 억척스런 아일랜드인은 곧잘 한국인과 비교된다. 한국인과 가장 정서가 잘 통하는 서양음악으로 꼽히는 아일랜드 정통음악, 묘한 슬픔의 정서가 우리 민족과 닮았다.

우리나라에도 많이 알려져 심금을 울리는 노래를 부르는 아일랜드 대표적인 가수 엔야는 자신의 음악에 대해 이렇게 얘기하고 있다.

“멜로디에는 이미 태어날 때부터 갖추어진 아일랜드 적인 것이 있고 아무리 빠른 템포로 노래해도 우울한 기조가 밴다.”

그 멜랑콜리한 분위기는 그런 환경에서 나온다. 음악이 갖는 주체성에 대해서 생각한다. 우리도 "한국적인 음악을 해야 한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는.

먼 지평선을 향해 끝없이 우수에 젖었던 짧은 여행에서 돌아왔다. <이브닝 벨>, 아직도 내 안에서 생생하다. 오래도록 있다. 침묵과 고요와 불멸로 오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