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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니의 삶

Les Feuilles Mortes - 고엽 / 이브 몽탕과 전통 샹송의 부활 본문

음악이야기/월드음악-샹송,칸초네,탱고,라틴등

Les Feuilles Mortes - 고엽 / 이브 몽탕과 전통 샹송의 부활

김현관- 그루터기 2023. 3. 3. 00:18

https://youtu.be/3k9Zv06Ub3I

Les Feuilles Mortes (Fallen Leaves)-Yves Montand 고엽 - 이브 몽탕 

 

이브 몽탕과 전통 샹송의 부활

이브 몽탕(1921-1991)을 생각하면 여러 가지 모습이 동시에 떠오른다. 그는 배우이자 가수이고 투사였다. 본명이 이보리비인 그는 이탈리아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몽탕의 가족은 그가 두 살 때 이탈리아의 파시즘(1922년 수립된 무솔리니의 독재적 전체주의 정치 체제)을 피해 프랑스 남쪽 항구 도시인 마르세유로 이주했다.

1932년 어린 이브는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누나의 미용실에서 일하게 되었다. 미용 일에는 큰 관심이 없던 그는 낮에는 미용실에서 일하고 밤에는 살롱에서 노래를 했다. 1938년 동네의 카페 콩세르(Café-concert : 오늘날 음악다방 같은 곳)에서 노래하게 되면서 이름을 이브 몽탕으로 바꾸었다. 한동안 마르세유에서 가장 유명했던 '알카자르' 무대에 서기 위해 그는 다른 사람의 노래를 모창하는 것을 관두고 작곡가와 손을 잡고 자신의 곡을 부르기 시작했다. 그는 미국 웨스턴 풍의 노래를 선택했으며, 이때 '서부 황야에서(Dans les plaines du far west)'가 나왔다.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그는 독일군을 피해 파리로 떠났다. 그는 서는 무대마다 환호를 받았고 물랭 루즈에서 에디트피아프의 1부 공연을 맡기로 했다. 거기에서 두 사람은 서로 첫눈에 반했다. 이후 피아프는 몽탕에게 무대에서 필요한 모든 것을 하나씩 가르쳐 주었다. 이 시기에 '루나 공원(Luna park)' 등이 발표되었다.

피아프와 함께 영화 <밤의 문(Les Portes de la Nuit)〉에 출연했지만 영화는 실패했고 피아프도 그를 떠났다. 그러나 이 영화에 삽입된 '고엽(Les feuilles mortes)'은 후일 불후의 명곡이 되었다. 이 노래로 그는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되고, '고엽'은 1949년 '어텀 리브스(Autumn Leaves)'라는 제목으로 불리며 많은 영미권 가수들의 애창곡이 된다. 이 노래는 1946년에 몽탕의 친구이자 시인인 자크 프레베르의 시에 조제프 코스마가 곡을 붙인 것이다.

이 노래는 재즈 음악의 표본으로 자리 잡았으며 살사 버전과 그레이스 존스가 부른 디스코 버전 등 다양한 스타일로도 불렸다. 현재까지 600명이 넘는 다양한 국적과 언어의 가수들이 이 노래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이들 중 몇 명을 거론하자면 냇 킹 콜, 마일즈 데이비스, 키스 재럿, 스테판 그래펠리, 스탠게츠 등과 프랑스어권에서는 쥘리에트 그레코, 에디트 피아프,코라 보케르 등을 들 수 있다. 1956년 영화 <고엽>에는 냇 킹콜의 노래가 삽입되었다. 세르주 갱스부르는 후일 이 노래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프레베르의 샹송(La chanson de Prévert)’을만들기도 했다.

1949년 8월 몽탕은 배우인 시몬 시뇨레를 만나 1951년 결혼에 이른다. 시뇨레와의 만남은 그를 여러모로 변화시켰는데,정치에 관심을 갖게 되어 프랑스 공산당에 동조한 것도 변화중 하나이다. 영화와 노래에서 맹활약을 하던 그는 1959년 드디어 미국행을 단행하였고 대성공을 거두고 마릴린 먼로와 영화를 함께 찍으면서 둘 사이에 염문이 떠돌기도 했다.

그는 1968년 공산주의와 단절을 선언한 이후 1980년대에들어서면서는 인권 운동에 관심을 갖게 됐고, 1981년 폴란드의 반공산주의 노동자 단체와 그 지도자인 레흐 바웬사를 위해 투쟁에 참여하였다. 그는 정치에 관심을 가졌으나 결코 정치인은 아니었고, 평화 운동가였다.

1960년대 이후 몽탕은 영화에 더 많은 비중을 두긴 했지만 배우와 가수, 평화 운동가로서의 역할을 조화롭게 이어갔다. 그러나 1985년 9월 그의 아내 시뇨레가 죽자 모든 것이 달라졌다. 그는 더 이상 노래하지 않았다. 또한 공산주의에 대한 실망과 좌절을 경험한 사람들에게 강연을 하는 한편 영화와 TV를 오가며 분주한 시간을 보내다가 1991년 11월 영화 촬영 도중 숨을 거두었다.

몽탕은 노동자 출신이고 그는 그 사실이 자랑스럽다고 했다.그의 노래에서 주인공은 주로 노동자 계층이다. 당시 노동자들은 전쟁 후 파괴된 프랑스를 재건하는 힘든 업무에도 불구하고새로운 사회 제도 덕분에 전보다 나은 혜택을 받는 계층이 되었다. 그가 노래한 '루나 공원은 공장에서 일을 마친 후 친구들과 즐기러 나오는 청년의 기쁨과 슬픔을 그리고 있다.

그는 무대에서는 단순하고 생기발랄하고 온화한 스타일을 추구했다. 그는 1945년 '에투알'에서의 첫 번째 리사이틀에서 넥타이와 양복 상의 없이 바지와 밤색 셔츠의 단순한 차림으로 목 단추를 풀어헤친 채 관객들 앞에 섰다. 이런 노래와 그의모습이 그 시대의 구미와 맞아 떨어졌다. 이제 모자, 양복, 넥타이를 갖춘 트레네 풍의 멋쟁이 댄디 스타일은 대로에서 산책을즐기는 선반공 같은 프롤레타리아 층의 몽탕 풍 스타일로 바뀌었다. 그는 새로운 무대 룩을 창조한 것이다. '루나 공원'처럼‘대로(大路, Les grands boulevards)'도 노동자들의 소박한 행복을 노래하고 있다.

 

난 시트로엥 자동차 회사에서 선반공으로 일하고 있지.일주일 내내 기분 전환을 위해 돈을 쓸 순 없어.그래서 무료이면서 즐겨 하는 오락거리가 있어.난 대로에서 돌아다니는 걸 좋아해. 거기엔 볼 게 너무 많거든.

거기엔 희망의 날도,사람들이 거리로 뛰쳐나오는 분노의 날도 있지.거기엔 파리의 심장이 뛰고 있어.언제나 열렬한, 때로는 비판하는 심장이.노래와 더불어, 파리의 외침과 역사의 중요한 순간들이거리 군데군데 적혀 있어.

그러곤 나의 허름한 호텔로 돌아오지.내 방의 창문을 통해 하늘 한구석이 보이지.그 창문을 통해 마치 부름처럼 내게 들려오네.거리의 마법 같은 세상의 모든 빛들과 소리들이.

난 대로에서 돌아다니는 걸 좋아해. 여름 저녁, 모두가 늦게 잠들고 싶은 날 천사의 두 눈을 볼 행운을 잡을 수 있어.

 

트레네에 이어 몽탕에 대한 전 국민적 열광은 전쟁으로 더욱 성숙해졌고, 해방과 더불어 새로운 환상으로 더욱 생기를띠었다. 한 가수에게 특별한 사회적인 중요성을 부여하는 것이 간단한 일은 아니지만, 트레네와 인민전선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브 몽탕이라는 한 사람을 통해 전쟁 이후 시대의 사회상을 살펴볼 수 있다.

트레네처럼 시를 쓰거나 작곡을 하지는 않았지만 이브 몽탕은 그에게 맞는 작품을 식별해서 선택할 줄 알았다. 그는 보통 사람들의 삶, 일상적인 모습들, 도시의 센티멘탈리즘, 우정,동포애, 이런 것들을 일관되게 노래했고, 이런 그의 노래들은전 세계에서 불렸다. 몽탕은 또한 프랑스 전통 노래 부흥과 시에 관심이 많았다. 프레베르와 아폴리네르와 같은 시인들의 시를 노래하였고 <프랑스의 전통 가요(Chansons Populaires deFrance)>라는 음반을 취입하면서 샹송의 전통 유지에 한몫을했다.

그는 사회 전반적인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특히 전쟁의 슬픔을 말하는 '바바라(Barbara)'에서 반전 운동 주도 등의 참여가수로서 투사로서 그의 면모가 그대로 드러난다. 역시 프레베르의 시에 코스마가 곡을 붙인 '바바라'를 보자.

바바라 기억하니, 그날 브레스트엔 비가 오고 있었지.넌 내리는 빗물 속에서 미소를 띤 채 환하게, 눈부시게,비에 젖은 채 걷고 있었지.브레스트엔 비가 내리고 있었어.샴 거리에서 널 우연히 만났지.넌 웃고 있었어. 나도 미소로 답했는데 난 널 알지 못했고 너 역시 날 알지 못하지.그렇지만 기억하니? 그날을 잊지 말아 줘.

어느 현관 아래 한 남자가 비를 피해 있었지.그는 네 이름을 불렀어. 바바라라고 비에 젖어, 행복하게, 눈부시게 아름다운 넌 비를 맞으며 달려가 그의 팔에 안겼지.내가 '너'라고 지칭한 것을 원망하진 말아 줘.난 내가 좋아하는 모든 사람을 '너'라고 칭하지.설령 단 한번 밖에 보지 않았더라도.

바바라 기억하니. 잊지 말아 줘.바다 위로 내리는 이 비, 너의 행복한 얼굴 위로이 행복한 도시 위로, 바다 위로 내리는 이 비병기창 위로, 우에상 섬의 전함 위로 내리는 비.바바라, 전쟁은 얼마나 바보짓인가.넌 지금 어떻게 변해 있을까.이 비처럼 쏟아지는 총알 속에서 피로 얼룩진 포탄 속에서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널 안아 주던 그 남자는이젠 죽었을까 사라졌을까 아직도 살아 있을까,바바라

https://youtu.be/2V5_35DnbI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