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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니의 삶
선공후사 先公後私 본문
선공후사 先公後私
知識 ,知慧 ,生活/배움-문학,철학사
2010-05-07 19:14:20
선공후사 先公後私 [먼저 선/공변될 공/뒤 후/사사로울 사] ☞공사(公事)를 먼저 하고 사사(私事)를 뒤로 미룸.[동]滅私奉公 [출전]『史記』 [내용]조나라 혜문왕(惠文王)이 인상여(藺相如)를 재상(국무총리)을 삼으니 지위가 염파(廉頗-조나라의 명장군)보다 높았다. 그러자 염파가 말하길 "내가 조나라의 장 수가 되어 성을 공격하고 들에서 싸우는 큰공이 있는 데 인상여는 단지 말 좀 잘한다고 해 서 도리어 나보다 높은 위치에 있으니 내가 그보다 밑에 있음을 부끄럽게 여긴다. 내(염파) 가 인상여를 보게 되면 필히 그를 혼내 주겠다." 하자 인상여가 그 소릴 듣고 조회 때 마다 늘 병을 핑개되어 염파와 더불어 서열을 다투지 아니하고 혹 나가다가 염파를 바라보면 즉 시 피하니 인상여의 식객(食客)들이 다 그러한 인상여를 부끄럽게 여겼다. 그러자 인상여가 말하길 "막강한 진(秦)나라를 내가 욕을 보인 사람인데 유독 염장군을 두려워하겠는가? 막 강한 진나라가 우리 조나라를 처들어오지 못하는 이유는 나와 염파 장군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두 호랑이 격인 나와 염파가 서로 싸운다면 그 형세가 둘다 온전하지 못할 것 이다. 내가 염파 장군을 피하는 것은 국가의 급한 것을 먼저하고 사사로운 원망을 뒤로하기 때문이지 무서워서 겁을 내는 것이 아니다." 하고 말 한데서 연유되었다.물론 인상여와 염파는 이 일로 인해 죽음을 같이 할 좋은 교유관계를 맺었다 [예문]조선왕조 5백년 내내 왕조가 일반백성에게 베푼 것이 무엇일까. 세금으로 빼앗아 가고 형벌로 위협한 것 외에 일반백성들이 그 왕조로부터 그 어떤 시혜를 받았을까. 입만 열면 先公後私(선공후사: 公的인 것을 먼저 하고 私的인 것은 뒤로 미룬다)니 先難後獲(선난후획: 어려운 일을 먼저 하고 대가는 뒤에 생각한다)을 말하고, 심지어는 滅私奉公(멸사봉공: 私를 죽이고 公을 받든다)을 부르짖으면서 실제로 백성의 위에 앉은 사람들은 어떠했는가. 국가권력을 私有化하고 국가재산을 私物化하고 일반백성의 섬김만을 받으려 한 것 외에 그들의 역할은 무엇이었는가.<한국사회의 私와 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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