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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니의 삶

돈키호테와 산초의 여행 본문

사람들의 사는이야기

돈키호테와 산초의 여행

김현관- 그루터기 2023. 7. 16. 09:05

돈키호테와 산초의 여행

知識 ,知慧 ,生活/배움-문학,철학사


 

돈키호테와 산초의 여행

미국에는 100년 전에 아일랜드에서 이민 온 '트레블러 traveler' 라는 사람들이 있었다. 소위 아이리시 Irish 집시라고도 불리는 이 사람들은 정착생활을 거부하고 남자들은 그때그때 공사장에서 노동일을 하며 먹고 살았다. 종교도 가톨릭인데 다른 나라에서 온 가톨릭 신자들과는 좀 다른 유별난 구석이 있어서 배척을 받는다. 또, 여성들은 고등학교를 마치기도 전에 결혼을 해 바로 출산을 한다. 하긴 이들이 사는 트레일러에는 전기도 잘 들어오지 않으니 밤에 할 일도 없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이런 부류의 사람이 세계 문학계에도 있다. 바로 세르반테스인데 그의 <돈키호테 Don Quixote>는 세르반테스 자신의 이야기라고 확신한다. 돈키호테는 이미 없어져 버린 기사라는 직책을 스스로 만들어 늙어빠진 애마 로시난테와 좀 덜 떨어진 하인 산초를 데리고 방황한다. 사실 이 작품에는 느닷없이 길을 떠나는 시골양반 돈키호테가 왜 여행을 하는지도 모르고 목적지도 수시로 변해서 라만차와 바르셀로나 등 스페인 각지이다.

' 또, 여행 도중 만나는 적이라는 것도 풍차나 동네 건달이어서 의미없는 싸움만 반복할 뿐이다. 돈키호테는 좀 망령기가 있는 시골귀족으로 나중에는 자기가 누구인지 왜 싸우는지도 모를 무아지경에 빠진다. 그런데 세르반테스는 이 돈키호테를 통해 무엇을 말하려던 것일까? 그런데 해양을 제패하고 세계 각지에 식민지를 마련하고 종교적으로 가톨릭의 신봉자를 자처하며 북유럽인 독일에서 벌어지는 종교전쟁까지 개입해서 싸우는 스페인이야말로 돈키호테가 아닐까?

스페인은 여러 민족이 혼합되어 살던 나라이다. 남부에는 이슬람교도들이 아직 건재하고 유대인들은 경제권을 장악하고 있었다. 오죽하면 가톨릭 국왕인 스페인의 왕들이 중요한 일을 토론하기 위해 백성들의 대표를 접견할 때에는 가톨릭, 유대인, 이슬람 대표를 항상 동시에 만나 의견을 들을 정도였다. 이처럼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돈키호테 같은 이 나라가 남의 나라 전쟁에 어떤 뚜렷한 목적도 없이 뛰어들고 금이 가득하다는 아메리카로 막연한 환상만을 좇아 남부여대하고 떠나는 모습은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돈키호테와 다를 것이 하나도 없다.

그렇다면 돈키호테가 고귀한 공주님으로 착각하고 순정을 바치는 시골처녀 둘시네아 Dulcinea는 어떤가? 사실맨 정신으로 본다면 둘시네아는 그저 그런 촌티가 줄줄 흐르는 시골 처녀에 불과하다. 그런데 넋이 반쯤 빠진 돈키호테의 눈에는 절세의 미인이자 꼭지켜주어야 할 순정어린 여성으로 보였다. 방랑하는 돈키호테에게 자신이 살아가야 할 의미를 부여해준 사람이 둘시네아였다. 그녀를 지킴으로써 돈키호테는 드디어 공주님을 수호하는 기사가 되고 그녀가 없으면 그냥 방랑무사에 불과한 것이다. 즉, 둘시네아는 돈키호테라는 기사가 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존재였다.

이는 로마 가톨릭이라는 이념, 즉 성모 마리아라는 여성에 빠진 수많은 사람들이 고귀한 이름을 부르면서 사악한 짓을 저지르고 자신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는 지경에 빠진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닐까? 스페인에서는 유대인이나 이슬람인 가운데 가톨릭으로 개종을 하지 않는 자를 모두 국외로 추방했다. 한편으로는 종교재판소가 설치되어 숨어 있는 이교도를 찾아내서 처단하는 일도 벌어졌다.

가톨릭은 스페인의 얼굴이고 성모 마리아가 있기에 스페인의 기사가 드디어 명함을 내밀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돈키호테》가 다른 소설과는 다른 점이 하나 있다. 돈키호테 외에 말없이 주인을 따라다니는 하인 산초 판사 Sancho Panza도 무언가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것이다. 산초는 돈키호테처럼 좌충우돌로 싸움을 벌이거나 정신 나간 짓을 하지는 않는다. 다소 둔하기는 해도 산초는 미친 사람은 아니기 때문이다. 산초는 주인의 광기를 말리지도 못하고 항상 어정쩡한 태도만 취한다.

이는 종교 광신론, 이단 처벌, 갈 곳을 몰라 발광하는 스페인이라는 나라를 바라보면서 정작 백성이나 지식인이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있는 것을 상징하는 것은 아닐까? 돈키호테는 광기로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말도 되지 않는 우스운 짓까지 저지르지만, 그래도 가만히 앉아 운명의 파도에 몸을 맡기는 사람은 아니다. 그러나 산초는 모든 일이 잘못 돌아가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가만히 앉아 몸을 숙이는 그 시대의 비겁자들을 질책하는 인물이라고 하겠다. 세르반테스는 이렇게 호통을 칠 것이다. “돈키호테는 모험과 여행을 벌이는 주인공이지만, 산초는 그냥 따라만 다니는 평생 조연에 불과하다"고 말이다.

두려움에 몸을 사린 천재

돈키호테는 말도 되지 않는 것으로 억지를 쓴다. 다른 사람 눈에는 그저 평범한 시골 처녀인 둘시네아를 보고 아름답다고 말하라고 동네 건달들에게 소리를 지르다가 죽도록 두들겨 맞는다. 아마 지나가는 농부가 돕지 않았다면, 돈키호테는 그냥 죽었을지 모른다. 이런 말도 되지 않는 만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나는 돈키호테의 어리석고 무모한 짓이 세르반테스가 스스로 하고 싶지만 행동으로 차마 옮기지 못하는 욕망을 표출하는 것이라고 본다.

세르반테스는 의사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평생 자신의 누이에게 신세를 지며 살아간 변변치 못한 사내였다. 그런데 단지 출세를 하지 못했다는 콤플렉스 외에 다른 무언가가 두려움을 조장한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기록에는 세르반테스가 레판토 해전에 참전했다가 왼팔을 잃은 상이용사로 나오는데, 그 이전부터 왼팔은 제대로 쓸수 없는 사람이었다. 레판토 해전에서 그나마 다친 팔에 다시 부상을 입는 대다수 사람들이 믿는 신앙 밑에 감추고 평생을 살아간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사람에게는 누가 내 과거를 알까 두려운 마음과 함께 항상 나 자신을 속인다는 양심의 가책이 따라다니기 마련이다.

깨끗한 정치를 한다고 선전하지만 부정부패를 저지른 치부가 있고 간혹은 이런 것이 폭로되어 망신을 당하고 정치 생명이 끝나는 우리의 정치인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 돈키호테이다. 아무리옳은 행동이라고 공감을 해도 평생 이런 일을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 갑자기 선행을 하기도 어렵다. 돈키호테는 입으로는 정의와 양심을 부르짖지만, 실성한 사람은 세르반테스 자신이 아닐까? 아니 오늘날을 살아가는 수많은 세르반테스들도 같은 처지라고 본다.

마음의 자유나 양심에 따라 행동할 수 없는 사람들은 아무리 부귀영화를 누려도 황금새장에 갇힌 새이다. 돈키호테는 상상 속에서는 자유를 만끽하지만 자신이 기사가 아닌 시골노인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최후에 와서야 자신의 잘못을 알고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세르반테스가 찾으려고 한 진실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