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   2024/10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Tags more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형과니의 삶

인연에 대하여 본문

내이야기

인연에 대하여

김현관- 그루터기 2022. 12. 9. 17:12

인연에 대하여

우리의 만남은 인연이었습니다. 아니 우연이라는 표현이 더 맞을 겁니다. 그러지 않고는 우리의 만남을 해명할 수 없겠네요.

K라는 후배가  있습니다.

그에게서는 책 내음이 흘러갑니다. 한 마디 한 마디에 젊음이 스며 있고, 소탈한 농담에 많은 이가 미소 짓습니다. 책 얘기를 하는 그에게서는 진실이 녹아 있는 삶의 향기가 그윽합니다. 그를 만나면 텁텁한 누룩 냄새 풍기는 막걸리 한 잔 생각에 목구멍이 간지럽습니다.

C라는 후배도 있습니다.

그에게서는 나를 되돌아보게 하는 거울이 보입니다. 일에 대한 열정은 오래 전의 나를 닮았지만 그만의 촌철살인의 표현은 여러 사람에게 부러움을 안겨 줍니다. 편안한 미소와 품위 있는 배려가 주위를 푸근하게 합니다. 그를 만나면, 파커나 콜트레인의 우수에 젖은 색소폰 소리를 들으며 스카치 한잔 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다가옵니다.

막걸리같이 소탈한 K는 서로가 쓴 글들을 보며 꽤 오랫동안 호감을 느끼고 있었는데 몇 년 전, 어느 인문학 강좌에서 우연히 맞닥뜨려 인사를 나누다 알아 보고서 크게 반가워하며, 호형호제하기로 하였습니다. 신기한 우연이었죠!, 재즈바가 어울 리는 C는 불같은 더위가 몰아치던 작년 한 여름!  K의 꼬임에 등 떠밀리 듯 참가하게 된 전시회에서 만나 형, 아우라 부르기로 하였으니, 서로 간에 인연과 우연이 겹쳐진 만남이라 하겠습니다.

오늘 원성 스님의 인연이라는 글을 읽다가 우연보다는 인연이 더 애틋하다는 구절을 생각해 봤습니다. 그래요. 친구들과의 만남은 전생에 쌓고 쌓은 수많은 날들을 거슬러 올라선 만남이기에 축복할 수 있을 것이고, 그 축복이 있는 만남이기에 만약 우리가 헤어진다면 그 잘못은 모두 내게 있다는 스님의 마음을 곰삭이며 인연에 대하여 되짚어 보았습니다.

막걸리를 부르는 K는 종종 집으로  차나 고구마, 손수 빚은 술 등속을 챙겨 옵니다. 포장된 것도 있지만 덜어 온 듯한 물건들이 간혹 있는데 그런 것들은 나뿐 아니라 제 맘에 드는 선 후배에게 등분하여 조금씩 보내느라 그렇답니다. 작년 어느 날! 신안 사는 목사 친구가 보냈다는 소금 한 주먹과 계란 한 판을 건네주며 얘기해서 알았습니다. 귀한 소금이라 여기저기 나눠 주다 보니 내게 줄 소금이 너무 적어 계란이라도 삶아 찍어 먹으라고 내미는 그의 두툼한 손등에서 소박한 사랑을 느꼈습니다.. 이렇게 소소한 물건이라도 정성으로 함께 나누고자 애쓰는 친구의 마음이 축복되어 내 가슴에 켜켜이 쌓여 가고 있으니, 이런 친구와 헤어짐이 있다면 그 잘못은 당연히 내게 있으리라는 것은 스님의 말씀이 아니라도 이미 깨달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앞으로도 두 친구와 술 한잔 앞에 놓고 이런저런 세상사를 토론하기도 할 것이고, 차 한잔 마시면서 서로의 취미와 관심사도 얘기해 가며 살아갈 것입니다. 십 년의 나이 차이를 아우르는 생각과 삶의 특정 부분에서 공통점을 보이며 뜻이 통하는 친구들을 만나고부터 세상을 보는 눈과 의식이 젊고 긍정적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내가 바라보는 대로 보인다는 것을.. 간혹 빼야 하는 삶이 좋을 수도 있지만, 나는 더하기의 삶을 살고자 노력할 것입니다. 느지막이 만난 좋은 친구들 덕분에 얻은 하나의 성찰입니다

오늘은 낮과 밤의 길이가 같다는 춘분입니다. 검은 밤하늘에 늘어진 벌건 달이 불뚝 배를 내밀고 있네요. 꼭 야참을 먹고 동그랗게 삐진 내 배를 닮았습니다. 그나저나 다음에 두 친구를 만나면 C와 어울리는 블루스를 들으러 버텀라인으로 가야 할까, K 가 잘 먹는 빈대떡이 맛있는 마냥 집으로 가야 할까, 생각 좀 해 봐야겠습니다.   

   2014.3.21 -그루터기-

 

 

 

                                          

'내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낯섦과의 만남  (0) 2022.12.09
까치를 바라보다가 문득  (0) 2022.12.09
봄이 왔어요  (0) 2022.12.09
슬픈 아미월  (0) 2022.12.09
우수(⾬⽔) 날 오후  (1) 2022.1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