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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니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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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이야기

낯섦과의 만남

김현관- 그루터기 2022. 12. 9. 20:52

 낯섦과의 만남

 며칠 전! 저녁을 먹고 차 한잔 마시려 그림을 그리는 후배가 운영하는 카페엘 들렀다. 하지만 반갑게 맞이하는 후배의 덥수룩한 수염과 투박하고 검은 뿔테 안경, 막걸리에 전듯한 걸걸한 목소리만이 익숙할 뿐, 왠지 카페 전체의 분위기가 평상시와 달라졌음을 느꼈다.

두 면의 벽에 흑과 백으로만 구성된 약 4-8호 크기의 이십여 점의 그림이 액자도 없이 그득히 걸려 있는데, 모두 붓터치가 거칠고 어두우며 문외한이 보기에도 추상과 구상이 콜라보로 다가오는 느낌이라 매우 생소하였다.

내가 들어가자 좌석이 협소한 그 카페에 먼저 자리했던 소설을 쓰시는 여사님과 일행이 그림 두 점 구입하고는 자리를 양보하며 조용히 퇴장하였고, 이윽고 후배와 함께 앉아 맥주를 마시던 낯선 사내와 인사를 주고받는데 한 눈에도 그 사내의 정체성이 예사로 보이지 않는다.

 "나긋나긋, 까딱까딱, 느릿느릿, 조용조용..!"

 그날 길지 않은 시간 술 한잔 하면서 그가 내게 보여준 모습의 표현이 이만큼 적합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러나 표현은 표현일 뿐 가늘고 기다란 흰 손가락으로 담요를 덮은 무릎을 톡톡 치면서 조곤조곤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는데.. 인천에서 살던 얘기를 시작으로 어릴 적부터 스스로의 성 정체성을 고민하다 삼십 대에서야 자신을 있는 그대로 포용해 주는 네덜란드로 가서 지금까지 생활을 하고 있다는 그의 이런저런 얘기를 들으며 나도 모르게 목울대가 뜨끈해짐을 느끼고 있었다.

 모처럼 부모님을 뵈러 귀국한 그는 어릴 적 친구였던 후배를 찼았고, 후배는 그 친구가 한국에 있는 동안이나마 외롭지 않게 함께 시간을 보내고자 생활의 터전인 카페까지 내주며 손님들에게 그의 그림을 소개하느라 애쓰고 있는 중이었다. 후배와 함께 대화를 나누는 그에게 조심스레 지금의 삶이 어떠냐고 물었다. 그는 담담하면서도 또렷하니 이렇게 대답했다.

 "매우 평온해요!"

우리는 남자 혹은 여자로 태어나 일생을 그렇게 구분 지어져 사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며 살아 가지만, 남자로 태어나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여자로서의 삶을 살아야 하는, 혹은 그 반대의 삶을 살아야 하는 저네들의 어려움과 고통에 대하여, 이해는커녕 대부분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들은 이해를 바라는 게 아니라 그저 있는 그대로만 봐주어도 저렇게 평온할 수 있다는데...

그의 평온하다는 말의 함의에, 스스로 남들과 다름을 느끼는 순간부터 고통이 시작되고, 세상의 편견을 이겨 내면서 지난한 삶을 이어가야 하는 저네들의 속 저림을 바라볼 수 있게 한, 그와의 낯선 만남은 당분간 잊기 힘들 것 같다.

 짧은 대화에서 평범하지 않은 한 사람의 저린 삶의 일부를 듣고. 그와 저네들이 세상에 원하는 바를 알 수 있게 된 이해의 충격이었다. 그래서 이 글을 읽고 고개를 주억거린 분들만이라도 저네들에 대한 편견을 걷어 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스민다.

2014. 4.16 -그루터기 -

 생소한 그림을 덥석 살 수는 없었는데 이렇게 글을 쓰다 보니 내일이나 모레 그가 떠나기 전에 한 점 구입하러 가야겠다. 그래야 마음이 평온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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