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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벌의 교훈

김현관- 그루터기 2022. 12. 11. 16:35

 말벌의 교훈

살다 보면 의도하지 않은 사소한 상황에서 사람의 날 것이 보일 때가 있는데 바로 며칠 전 바로 그 사소한 상황에서 벌어진 재미있는 일을 되새겨 보다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나른한 오후! 회사가 바뀌고 업무도 번잡해졌지만 그날따라 인적마저 뜸하였다. 너도 나도 식곤증으로 나른해하며 하품들을 하고 있었는데 별안간 여직원의 날카로운 한마디에 느긋하던 정적이 흐트러졌다.

"벌이에욧~

송곳 같은 소리에 깜짝 놀라 여직원이 가리키는 곳을 쳐다보니 민원대 건너편 상황판에 커다란 말벌 한 마리가 위용을 떨치는 쇳소리를 내며 붕붕 날아다니고 있었다. 그때 한 직원이 벌떡 일어나길래 벌을 쫓아내거나 잡을 줄 알았는데 맙소사! 말벌한테 쐬면 큰일 난다며 모자를 찾아 쓰고 저 혼자 벌에서 먼 쪽으로 달아나기 바쁜 그 행동이 가관이 아니다.

"에라이" 마지못해 궁둥이를 떼고 마침 DB서버 위에 놓여 있던 파리채로 말벌을 쫓아내면서 한 순간의 소동은 끝났는데 "맨날 큰소리치더니 쯧쯧~" 하는 여직원의 혀 차는 한 마디에 사무실은 한바탕 웃음 도가니로 변했다.

이곳 공항에는 근처에 백운산을 끼고 있어 한방 중에 고라니도 돌아다니고 출입 게이트 부스에 뱀이 들어가 똬리를 틀고 혀를 날름거리는 일도 있고 해서, 평시에도 군대에서 뱀 잡는 건 언제나 자기 몫이었다면서 사무실에 뱀이 들어오면 한 손으로 잡아 패대기친다며 큰소리 뻥뻥 치던 바로 그 직원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직원이 모자를 쓰고 말벌로부터 멀리 떨어지려 한 행동이 잘못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 역시 파리채를 들 것이 아니라 그 직원처럼 모자를 챙겨 쓰고 말벌로부터 피했어야 마땅한 일이었다. 오래전 할머니 성묘를 가다 말벌에 쏘여 퉁퉁 부어 한참을 고생했던 남동생의 모습을 보았었고,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다는 당시 의사의 말씀이 언뜻 스치고 지났기 때문이다.

쫓아냈기에 망정이지 혹시라도 쐬었을 경우를 생각하니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외려 잠시의 창피를 무릅쓰고 말벌로부터 떨어지려 한 그 직원의 판단이 옳은 행동이고, 파리채로 말벌을 쫓아낸 내 행동이 만용일 수 있겠구나 싶었다. 사소한 듯 보이지만 내 몸을 먼저 챙기는 게 바르지 않았을까?

오늘 이 글을 쓰면서 잠시 말벌에 대한 대처상황에 대해 알아보았는데, 말벌 한 마리의 독소가 꿀벌의 550배나 되고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이 쏘이면 1시간 이내로 사망할 수 있다니 그 직원의 대응은 바람직하다 하겠다. 크건 작건 앞으로도 위기가 다가올 때에는 나는 남자니까를 내세우며 덤벼드는 무모함보다는 상황을 판단하여 진퇴를 결정하는 것이 현명할 수 있다는 말벌의 교훈을 배운 날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바람직하다 한들, 여직원을 놔두고 혼자 달아 난 저 직원의 행동은 두고두고 핀잔받을 일이라. 간혹 곤혹스러운 대가를 치를 것 같은 예감이 스멀스멀 들고 있다.

 2014,12,6  - 그루터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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