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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이야기

만 추 晩秋

김현관- 그루터기 2022. 12. 11. 16:30

만 추  晩秋

절기상으로는 입동이 지나고 소설도 지났으니 당연한 겨울에 무슨 만추라면서 가을 타령이냐 하겠냐마는 사실 우리는 음력으로 사계절을 구분 짓던 농본주의가 삶의 기초였으니, 오늘은 음력 시월 초사흘! 당연하게 가을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니 아무리 내게 어깃장 놓는다 해도 그저 나의  새로운 기분으로 가을을 재촉하며 보자니 제일 먼저 눈에 밟히는 것이 단풍이고 당연스럽게 이 가을 한편에서 찬란하게 지고 있는 단풍들의 숨소리에 귀 기울이며 지나가는 만추를 느끼고자 하는 바이다..(사실 올해는 변변히 가을을 챙길 기회가 없어 어물쩡 가을로 되돌아가 보자는 꿍심의 발현이다.)

불과 며칠 전! 답동사거리 주변에 늘어서 있는 가로수에서 마치 한 여름 소나기 쏟아지 듯, 혹은 한 겨울 한 치 앞도 안 보이게 솜뭉치 같은 함박눈 내리 듯, 은행나무 이파리들이 바람에 떠밀려 우수수 떨어지는데 온 천지가 노란빛으로 가득 차 장관을 이루고 있음에  새삼  " 아! 올올 가을이 정녕 가고 있구나..!" 라며 잠시 계절에 대한 소회에 젖기도 했다.

게다가 오늘 아침 신문에 온통 노랗게 물들어 있는 덕수궁 돌담길 은행나무 주변의 풍경 사진을 찍어 놓고 만추라 제목을 지어 놓으니 그 풍경과 제목이 너무 잘 어울림을 부럽게 느껴 나도 이렇게  뻔뻔하게 같은 이름을 붙이며 놀고 있는 중이다

엊그제 아내가 강화에 있는"갑곶 성지" 일만 위 순교자 현양 동산" 등 세 군데의 성지순례를 다녀왔는데 내가 가지는 않았어도 부부는 일심동체라 하여 묘하게 그곳에 다녀온 기운이 배인 듯하다. 하지만 실상은 아내가 찍어 온 사진들을 챙겨 보며 재작년 여름에 다녀온 십자가의 길에 펼쳐진 단풍들과 특히 "한국 일만 위 순교자 현양 동산"의 오솔길에서 황금빛에 젖은 만추의 정취에 젖은 탓이리라.

만추는 한자말 뜻 그대로 저문 가을이며, 고운 빛깔로 물들어 있는 단풍과  떨어진 낙엽에서 적막함과 아름다움을 함께 느낄 수 있는 시기를 말하는데, 올해는 별달리 이룬 것도 없이 친구 두 녀석만 저 세상으로 보내며 이별한 허전한 마음만 되새길 뿐이다.

그래도 이렇듯 맥없이 이 가을을 보내기 아쉬워 녀석의 끄트머리라도 붙잡고 늘어질 심산으로 집 뒤의 공원을 한 바퀴 돌았으나, 이미 공원 산책로에도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의 떨림에 계절이 담겨 흩어져 버린 뒤였다. 그렇게 해거름이 지기 시작하는 어느 순간 사위마저 조용해지고 기척도 사라지면서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석양빛을 받은 나무와 풀잎들이 가는 가을을 늘어 뜨리며 겨울잠을 자려고 하는지 슬몃슬몃 졸고 있다. 만추는 만추다.

 2014.11.24  - 그루터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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