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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니의 삶

우정, 그 하고많은 사연 본문

친구들이야기

우정, 그 하고많은 사연

김현관- 그루터기 2024. 7. 1. 23:02

우정, 그 하고많은 사연

그림은 단원 김홍도가 자신의 호를 처음으로 그림 속에 밝힌 작품입니다. 단원(檀園), 무슨 뜻입니까? 중국 화가의 호를 따온 것이지만 원래 뜻이 박달나무가 있는 동산이라는 얘기입니다. 바로 자신이 살던 집을 그린 것이지요.. 단원의 집을 실증하는 자료로도 매우 중요한 그림입니다.

깊은 산중입니다. 잘 보시면 계곡이 있고요.. 집이 한 층 멋집으로 지어져 있는데, 나무가 여러 그루 있습니다. 풍류를 아는 사람의 집에 반드시 있어야 할 나무들이 이 그림에 다 있습니다. 우선 소나무가 있습니다. 문 앞쪽에 버드나무가 있고요. 마당에 파초가 있고, 그 옆에 대나무가 있습니다. 집 바로 앞에는 울울하게 자란 오동나무가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조선의 선비들이 집을 너그럽게 꾸미는 조경에서 필수적인 수종(樹種)이었습니다.

집 오른쪽에는 못을 팠죠. 그리고 연을 기릅니다. 이 연도 가시연이라고 해서, 가시가 많이 돋아난 그 연을 아주 희귀하게 쳤습니다. 그 옆에 괴석이 있죠. 바로 중국에서 수입한 태호석(太湖石)입니다. 다음에는 돌로 만든 널평상을 이렇게 뒀습니다. 마당에는 학이 노닐고 있습니다.. 날아온 학이 아닙니다. 집에서 기르는 학입니다.

 

마루에 모여 있는 사람들을 한번 볼까요. 작아서 잘 안보이니, 확대를 해서 보겠습니다. 확대된 그림을 보면, 왼쪽에 심부름하는 가동이 섰고요. 가운데에 한 사내가 거문고를 타고 있습니다. 뒤쪽 기둥에 기대앉은 한 사내는 손에 부채를 들었고, 또 한 사내는 양반다리를 하고 손을 들어서 박자를 맞추고 있습니다. 거문고를 타는 이 사내가 단원 김홍도입니다.

단원의 방으로 들어가볼까요. 서책이 있고요, 병에 꽂아놓은 것은 공작새의 깃털입니다. 벽에 악기가 또 하나 걸려 있네요. 목이 꺾였는 데 줄이 네 줄입니다. 당비파(唐琵琶)입니다. 단원은 비파를 아주 잘 연주했지요. 물론 거문고도 잘 타고 퉁소도 아주 잘 불었습니다. 음악에 조예가 깊었습니다. 그래서 음악을 소재로 한 그림이 아주 많습니다.

다시 마루로 나와, 이제 앞에 마실거리를 놓고 앉아서 연주를 즐깁니다. 어떻게 된 사연의 그림일까요? 그림 위에 자잘한 글씨로 이 모임의 사연을 적어놓았습니다.

경북 군위 출신의 조선 후기 여행가 창해옹(滄海翁) 정란(鄭瀾,1725~ 1791)1781년 금강산을 여행하고 돌아와 지금 이렇게 단원의 집을 찾아왔습니다. 정란은 금강산에서 대동강으로 백두산에서 한라산까지, 조선 팔도 동서남북에 자기 족적이 찍히지 않은 곳이 없도록 하겠다는 야망을 가지고 있었지요. 그런 그가 단원을 찾아왔습니다. 이웃 인왕산 자락에 살고 있는 중인 화가 강희언과 더불어 세 사람이 정말 잘 놀았습니다. 저 송나라의 사마광이 낙양진솔회(洛陽眞率會)라는 것을 만들어서 마음을 터놓고 진솔하게 교유할 수 있는 사람들과 우아하고 향기로운 모임을 가졌듯이, 이 세 사람도 거문고를 연주하고 시를 짓고, 같이 곡절을 맞추면서 잘 놀았다는 겁니다.

3년 뒤 단원 김홍도는 안기(安奇), 즉 지금의 경상도 안동 지역에서 찰방(察訪)을 지내고 있었는데, 창해옹 정란이 또 여행을 하고 초췌한 모습으로 찾아왔습니다. 그래서 3년 전 강희언과 더불어 단원의 집에서 즐겼던 풍류를 생각하면서, 밤새 술을 마시며 회포를 풀었는데, 그 때는 이미 강희언은 죽고 없었다고 합니다. 둘만 남아 술을 마시니 그 때의 생각이 새록새록 떠올랐겠지요. 그 그리움에 견딜 수가 없어서 단원이 그날의 모습을 회상하면서 이 그림을 그려 창해옹 정란한테 주노라, 하는 내용의 화제가 적혀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그림은 3년 전 서울의 단원 집에서 어울리던 모습을 회상해 그린건데요. 그럼 어떻게 놀았느냐? 그림 오른쪽 상단에는 정란 이 쓴 시 두 수가 적혀 있습니다. 먼저 뒤의 시를 볼까요. "단원거사(檀 園居士)는 정말로 좋은 풍채를 지니고 있지. 담졸(澹拙) 강희언 그 사람 또한 크고 기이했지. 누가 흰머리 백수가 되어버린 나를 남쪽으로 이끌어, 술 한잔과 거문고 연주로 미치게 만들었나." 창해옹이 그날의 모임을 생각하면서 쓴 시입니다. 그 앞의 시는 창해옹이 서울에서 놀 때에 지은 것입니다. "금성의 동쪽가에 전나귀(다리를 저는 나귀) 쉬게 하고, 석자 거문고로 처음 만남 노래하네. 백설양춘(白雪陽春) 한 곡을 타고 나니, 푸른 하늘은 고요해지고, 푸른 바다는 텅 비어버렸네."

그러니까 이날 단원은 <백설양춘>을 연주했던 것이지요. 그림을 보면, 단원이 거문고를 타고 있고, 창해옹이 거기에 손으로 장단을 맞추고 있고, 강희언은 그냥 어~ 하면서 부채를 든 채로 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양춘백설(陽春白雪)>이라는 비파 고전곡이 남겨져 있지만, 중국에서 연주되던 <양춘백설>은 사라지고 없습니다.

<양춘백설>은 원래 중국 초나라의 고상한 가곡인데, 이런 이야기가 전합니다. 중국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초나라 때의 시인 굴원의 제자 송옥(宋玉)의 이야기입니다. 송옥은 비상한 두뇌와 준수한 용모를 지니고 있었는데, 당시 사회에 대해 여러 가시돋힌 의견을 제시해 귀족들에게 많은 공격을 받고 있었습니다. 나쁜 말을 전해들은 초나라 왕이 불러서 나무랍니다.

"무엇 때문에 그토록 많은 사람이 그대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는 것이오?"

그러자 송옥이 이런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어느 가객이 도성에서 노래를 부르는데, 맨 처음 부르는 곡이 <하리파인(下里巴人)>이었습니다. 가수가 <하리파인>을 부르니 수백 명의 백성이 '떼창'을 하였습니다. 그 후에 <양춘백설>이라는 노래를 불렀는데 따라 부르는 사람이 수십 명에 불과했습니다. “

길거리의 가수가 가곡을 부르는데 그 제목이 '하리파인'입니다. '아랫동네의 파인()'이라는 뜻입니다. 이 파인이라는 말은 장삼이사 (張三李四), 곧 이름없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우리나라 시인 중 <국경의 밤>을 쓴 김동환(金東煥, 1901~?)의 호가 이 '파인'입니다. 자기를 낮추어서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고 한 것이지요. 어쨌든 ''아랫마을에 사는 이름없는 녀석들', 이런 제목의 가곡인데, 초나라 때 가장 대중적인 곡이었습니다. <양춘백설>은 초나라 가곡 중 가장 어렵고 격이 높은 음악이었고요.

송옥의 이 말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뛰어나고 수준 높은 콘텐츠는 대중의 환영을 받지 못하고, 적당하게 대중의 수준에 맞춰 통속적일 때 인기를 얻는데... 지금 임금한테 이렇게 얘기하고 있는 겁니다. 그 래서 '양춘백설'은 훌륭한 사람의 언행은 평범한 사람이 이해하기 어 려움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 되었습니다.

마침 여기 단원의 집에 비파가 있으니, 비파 이야기를 해볼까요. 단원보다 100여 년 앞선 인조 때 송경운(宋慶雲)이라는, 전주 지역에 사는 아주 뛰어난 연주자가 있었습니다. 비파 연주의 일인자였지요. 이 분이 서울에 와서 비파를 연주하면, 사람들이 그냥 눈물을 뚝뚝 흘리며 어쩔 줄을 몰라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자기가 좋아하는 곡 중에서 어떤 곡을 타면 사람들이 알아듣지를 못하는 겁니다. 고조(古調), 즉 옛 가락,, 그러니까 고전적인 곡을 연주하면 비파의 그 아름다운 음색에도 사람들이 뭔지 못 알아듣더라는 거죠. 그래서 송경운이 고조를 한 60퍼센트 정도하면 40퍼센트는 금조(今調), 즉 당대의 가락을 연주했다고 합니다.

'음악이란 무릇 모두가 더불어 즐기자는 것인데, 이렇게 못 알아듣는 음악만 연주해서야 되겠느냐'

라는 생각에 고조와 금조를 잘 섞어서 연주한 것이지요.

사람들이 알아듣는 음악을 해야 하는데, 자칫 거기에만 집착하다 보면 대중의 통속적 기호에 젖어버려 음악이 저질화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또 너무 고격의 음악만 추구하면 알아듣는 사람이 없어, 더불어 즐기는 여민락(與民樂)의 본질을 잃게 되지요. 여기에 음악가들의 고민이 있는 겁니다. 정말 들어도 들어도 귀가 트이지 않고 저게 뭔가 싶은 음악이 있습니다. 문학도 그렇고, 미술도 그렇습니다. 이때 예술가들은 세상과 어느 정도로 절충을 하느냐, 아니면 그냥 자신만의 세 계를 밀고 나가느냐, 참으로 큰 고민에 휩싸이게 되지요. 어렵건 쉽건 독자와 시청자에게 반드시 통하는 게 있지요. 곧 예술가의 진정(眞情) 과 고뇌입니다. 그것이 예술 가치의 척도가 되기도 합니다.   

흥[興] -  손철주의 음악이 있는 옛 그림 강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