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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니의 삶
200년을 기다려온 법호 본문
200년을 기다려온 법호
구한 말 백양사는 퇴락할 대로 퇴락해 절에는 제대로 된 건물이 하나도 없었다. 어느 날 그 백양사에 두 모자가 찾아왔다. 그들은 절에 닿자마자 처음 마주친 스님에게 주지 스님을 만나게 해달라고 청했다.
"무슨 일로 주지 스님을 찾습니까?"
"예. 이 아이는 저희 집 막내아들인데 절에 맡기려고 찾아왔습니다."
"아이를 절에 맡기겠다니요. 무슨 까닭입니까?"
“네, 어느 날 한 스님이 저희 집 앞을 지나다가 이 아이를 보고 단명할 것이라고 하여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이 아이를 좀 받아 주십시오."
여인의 말에 아이를 살펴보던 스님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사정은 알겠으나 단명할 아이를 절집에서 맡아 기를 수는 없습니 다. 중이 되면 몰라도."
"그러면 스님을 만들어 주십시오."
여인의 마음은 간절했다. 당시만 해도 스님이 된다는 것은 그렇게 좋은 일이 아니었다. 구한 말 승려의 직위는 사회적으로 매우 낮았다. 도성 출입도 겨우 허락될 정도로 유교주의가 사회를 지배하던 때였다. 여인의 간절한 호소에 스님은 다시 입을 열었다.
"아이가 대체 몇 살이요?"
"이제 열 살입니다."
"너무 어립니다. 아이가 열네 살이 넘으면 다시 데리고 오세요.“
당시 절 생활은 힘이 들었다. 먼저 들어가서는 행자 생활을 해야 하는데, 산에 가서 나무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서 공양 짓는 것등 산속에서 생활하는 것을 모두 익혀야 했다. 그래서 어린 나이에 들어오면 고생이 심했다. 어머니와 스님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아이가 물었다.
"저, 스님 궁금한 것이 있는데요. 누각에 걸려 있는 현판에 있는 강추금이란 분은 누구입니까?“
아이의 돌연한 질문에 스님이 놀라서 물었다.
"글씨를 아느냐?"
”예“
"그래? 그럼 누각에 무엇이라고 쓰여 있더냐?" 스님의 질문에 아이는 또박또박 대답을 했다.
강남에 절이 몇 개던고
이곳이 바로 명산일세
늙은 스님은 무엇을 얻었던가
그저 한평생 여기서 살았을 뿐이네.
아이는 현판의 한자뿐만 아니라 그 뜻풀이까지 거침없이 했다. 그것을 본 노스님은 그의 출가를 허락했다.
그 아이가 후일의 만암 스님이었다.
그는 6개월 만에 행자 생활을 마치고 법명을 받았으나 법명이 종헌이었다.. 그 뒤 종헌 스님은 백양사의 백운암에서 참선에 들어가 3년 만에 한 소식을 얻었다. 그의 한 소식을 들은 스승은 그에게 법호를 내렸다.
만암.
이 법호는 사연 있는 법호였다. 만암이라는 호는 추사 김정희가 이백 년 전에 준비해 둔 법호였던 것이다. 추사 김정희가 마련한 호는 석전石顚, 만암曼庵 , 다륜茶輪 등 세 가지였다.. 그는 백파와 서신을 통해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때 백파에게 이 세 개의 호를 직접 써 주면서 나중에 그의 문하에서 도를 깨달은 인물이 나오면 그 호를 나눠줄 것을 부탁했던 것이다.
만암에게 법호가 주어지기 이전에 영호당 박한영 스님에게 석전이란 호가 돌아갔고, 다륜이라는 호는 대흥사 스님에게 돌아갔었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호가 그에게 떨어진 것이다. 추사가 백파에게 호를 남긴지 200년 만에 그 주인을 찾은 것이었다.
추사의 이 호는 지금도 백양사에 남아 있는데, 만암은 그 글씨를 죽을 때까지 가지고 있다가 입적하면서 자신의 물건들을 하나씩 상좌들에게 나눠줄 때 함께 나눠주었다.
만암이 갖고 있던 물건은 지필묵, 경책 그리고 낡은 옷 몇 가지였다. 그는 그것을 상좌를 비롯해 원주와 공양주 등 자신의 주변 사람들에게 모두 나눠주었다. 누군가. 그것을 궁금해하자 만암이 한 소리를 했다.
"왜 이렇게 나눠주냐고? 이 사람아, 사람이 죽을 때 입는 수익에는 주머니가 없어. 그런데 어디에 담아 가지고 가나. 가져갈 수도 없는 것, 남은 사람들이나 유용하게 써야지. “.“
만암은 추사의 글씨가 새겨진 병풍을 그의 손상좌에게 물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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