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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극장이 헐렸다는데

김현관- 그루터기 2022. 12. 11. 19:26

동방극장이 헐렸다는데

오랜만에 카페엘 들어갔더니 나우시카님의 동방극장이 헐렸다는 글을 보게 되었다. 추억을 도둑맞은듯한 멍한 그녀의 심정을 토로한 글과 그리고 흉물스레 널린 건물의 잔재가 찍힌 사진을 보면서 한때 인천사람들에게 웃음과 감동을 주었던, 이제는 영원히 스러져 버린 동방극장의 마지막 모습에서 또 하나의 추억의 실체가 사라지는 안타까운 현실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녀의 말마따나 추억을 파는 신포시장이 새로운 추억을 포장해 상품으로 내놓으려고 추억을 묻었다는 표현만큼 적확한 말이 어디 있을까 싶다. 진즉에 극장 문을 닫아 영화관으로서의 추억 어린 상념이 희석된 상태였지만 그나마 호프집 등으로 운영되며 위락시설로서의 기능을 유지하고 있어 그곳이 동방극장이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위안이 되었으나 그마저도 문을 닫아걸었던 지난 몇 년간 공간의 부재가 건물마저 사라진 지금 그저 애틋한 마음을 가진 몇몇 인사들에게 짙은 의미상 실감을 맛보게 하는 중이다.

인천의 시네마천국이었던6-7십 년대 시절 동방극장은 애관극장과 미림, 문화극장과 함께 외화 개봉관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하게 해 내고 있었다. 여늬 극장과 달리 협소한 극장터의 입지를 커버하기 위해 조금이라도 좌석수를 늘리기 위해 충고가 높은 2층의 일부분에 마치 다락처럼 3층을 만들어 한국 극장사에 보기 드문 형태를 유지했던 극장이었다. 그러나 작은 공간을 오밀조밀하게 활용하여 이층의 휴식공간인 테라스의 이국적인 운치와 몇 개 안 되는 3층 관객석에서 누릴 수 있는 짜릿한 은밀함은 스크린의 황홀감보다도 더 극장으로서의 매력을 지니게 하였다.

인천에 오래 사신 여늬분들과 마찬가지로 내게도 동방극장에 얽힌 추억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오래전 돌아가신 아버지와 함께 보았던 "대부"에 대한 추억으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회상하며 쓴 글 중에 스치듯 써 내려 간 동방극장에 대한 장면이 있다.

“동방극장”안입니다.화면에는 눈부신 빛이 가득합니다.”돈 콜레오네로 분한 말론 브란도의 육중한 몸이 심장마비로 서서히 스러지는 모습과 손녀딸들이 깔깔거리며 뛰어 다니는 모습이 클로즈-업 됩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패밀리의 인사를 받고 있는 파치노의 젊은 시절의 앳된 모습이 보이며 “Speak softly love”의 비장함이 극장안을 울립니다.

대부는 청소년 입장 불가 영화였습니다. 개봉 당시 고등학생인 나는 너무도 그 영화가 보고 싶어 아버지를 꼬드겨 함께 보았는데 아버지께서 영화를 좋아하시는지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다음에도 같이 오자고 하셨지만, 그 영화가 아버지와 함께 본 처음이자 마지막 영화가 되고 말았습니다. 지금 내 아이들과는 아직 한 번도 영화관엘 가보지 않았습니다. 아내와 함께 영화관에 가 본지도 꽤 되었으니...    -중략-   [형과니의 삶 중아버지와 함께 하던 날" 중에서 5#]

아버지와 함께 대부를 본 이후 제임스 딘의 사망 20주기 회고전으로 상영된  "에덴의 동쪽"을 보고 난 뒤부터 동방극장에서 관람한 영화가 기억에 없고 생맥주홀로 변한 극장 건물 이층에 종종 들러 친구들과 영화에 대한 멘트를 하며 호프를 마시던 기억들이 삼삼하다.

동방극장이 문을 닫게 된 이유는 컬러텔레비전 방송의 등장으로 관객이 감소한 탓도 있겠지만, 1981년 소극장 활성화법으로 300석 이하의 극장들이 우후죽순 격으로 난립을 한 와중에 1987년 영화법 개정으로 영화시장이 개방되며 강한 타격을 받은 뒤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동방극장이 폐관한 년도를 정확히 알 수는 없어도 소극장이 활성화되고 메이저 영화사에 시장을 내 준 파고를 넘지 못하고 무너져 내린 것으로 추측될 뿐이다.

극장을 고성이라 한 사람이 있다. 하늘을 배경으로 길모퉁이에 묵연히 서있었던 우리들 청춘의 고성이었다고 그곳에서는 중세의 방울소리가 들리고 청춘의 긴 미로와 비밀의 방이 있었던 그 공간을.. 결코 시간이 흐르지 않는 절대공간을 그리워한다고.

영화를 사랑한 많은 시네마 키드들은 할아버지가 되어 삶의 팍팍함이 이어질 때면 찬란했던 청춘의 공간을 추억하며 미소를 지었는데 그 비밀의 방 하나가 스러진 지금 그리움과 망각의 방으로 또 하나의 방 열쇠를 모셔 놓을 수밖에 없겠다. 결코 시간이 흐르지 않는 절대공간이라 믿고 싶은 추억이라는 방에 깊이 간직하면서..     

2015.3.24   - 그루터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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