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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니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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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색 지명

김현관- 그루터기 2024. 10. 20. 18:11

왜색 지명

서울에는 '중지도' 같은 왜색의 때가 그대로 묻어 있는 지명이 적지않다. 뒤늦은 대로 서울시에서는 이 지명에 눌어붙은 왜색의 녹을 씻는 작업에 착수할 것이라 한다.

그 왜색을 유형별로 가려보면 이렇다. 일제 때 파괴시켜 놓은 지명을 그대로 쓰는 경우로 동대문 회기동을 들 수 있다. 본 지명은 연산군의 생모 윤 씨의 능이 있다 해서 회룡리 또는 회묘리였다.

한데 일제가 지명을 바꾸면서 '묘'자가 좋지 않다 하여 '묘(墓)' 자 비슷한 '기(基)'로 고쳐 당치도 않은 회기정이라 했으니 지명파괴도 유만부동이다. 합정동(合井洞)도 그렇다. 그곳에 조개우물이 있어 합정동(蛤井洞)인데, 일제가 소홀히 하여 합정(合井)으로 고친 것을 지금도 답습하고 있다. 옥천동(玉川洞)도 원지명인 옥폭동(王瀑洞)을 일제가 옥천정(玉川町)으로 바꾼 것을 환원 못 시킨 채 쓰고 있고, 권농동(勸農洞)도 농포동(農圃洞)을 일제가 개명한 것을 그대로 쓰고 있다.

그릇 와전된 일본지명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계동(桂洞)은 그곳에 제생원(濟生院)이 있어 제생동이었던 것을 어느 누가 발음을 잘못 들어 계생동(桂生洞)이 됐다가, 일제 때에 그 발음이 기생동(妓生洞)으로 들린다 하여 '생' 자를 제거, 계동이 되고 말았다. 다동(茶洞)도 원지명을 보면 대다방(大多坊)·소다방(小 多坊)인데 이 다방골을 다방으로 잘못 알고 일제가 다옥정(茶屋町)으로 고친 것이 다동이 되고만 것이다. 지금 TV사극에서 권간을 부 리고 있는 이이첨이 살았다던 쌍림동도 뿌리를 상실한 이름이다.

원래 이곳에 쌍리문이 서 있어 쌍리문골, 쌍문동, 쌍리라 불렀는 데, 일제가 그 뜻을 잘못 풀이, 병목정(並木町)의 그릇된 뜻을 옮겨 쌍림동이 돼버렸으니 어이가 없다. 이렇게 잘못 고쳐짐으로써 기구해진 지명으로 1가에서 6가까지 있는 영등포의 문래동을 들 수 있다. 이곳은 시흥군 북면 도림리란 이름이 버젓하게 있었는데 일제 때에 실을 빼는 큰 방직회사들이 있다 하여 사옥정(糸屋町)이라고 개명을 했다. 해방 후에 이 왜색 지명을 고친다는 것이 사옥이라는 왜색 지명에 구애받아 실을 빼는 마을임을 살린답시고 실빼는 기구인 물레를 연상 물레에 가까운 음의 한자를 빌어다가 문래동이 된 것이다. 그래서 문래동은 뿌리도, 연유도 없는 상처투성이의 지명이 되고만 것이다.

이밖에도 일제 때 만들어 놓은 지명을 그대로 답습한 것도 더러 있다. 중구 방산동(芳山洞)도 그중 하나다. 원래 이곳에는 청계천을 준설한 모래로 일군 가산(假山)이 있었는데, 마을사람들이 이곳에다 꽃을 많이 심었던 것 같다. 일제 때 동명(洞名)을 갈면서 꽃향기가 나는 산이 있다 하여 방산정(芳山町)이라 한 것을 해방 후 그대로 답습, 방산동이 된 것이다. 창경원도 창경궁을 말살하기 위해 일제가 변형시킨 이름이다. 그 창경원을 중심으로 남쪽에 있다 하여 원남동, 서쪽에 있다 하여 원서동이라 한 것도 고려해 볼 지명이다. 원서동의 본명이 다행히 원동이란 점에서 더욱 그렇다.

지명은 수천 년 이어내렸고, 또 수천 년 이어나갈 그 자체가 문화재다. 비단 서울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오염된 지명을 씻는 작업이 일어나갔으면 한다. (86-7-8)  1985-1990 칼럼집 이 규태코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