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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니의 삶

그레고리안 성가 본문

음악이야기/클래식 & 크로스오버

그레고리안 성가

김현관- 그루터기 2025. 2. 1. 11:03

https://youtu.be/McE9LfIgNkk?si=B_UjNvADbbr6kMeu

Dan Gibson’s Solitudes - Kyrie Eleison | Illumination: Peaceful Gregorian Chants

 

그레고리안 성가

심오한 음악

지금 우리는 새로운 천 년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새천년이 시작되면서 우리는 사회의 여러 면에서 많은 변화를 겪을 것이다. 그런 변화가 당연히 올 것이라는 사실은 2000년 이전의 1백 년을 되돌아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지난 세기 사회의 구석구석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 변화 중 음악에 서 일어난 변화를 생각해 보자. 지난 1백 년 동안 새로운 음악이 탄생되었고 새로운 연주자가 활동하였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은 19세기말 에디슨이 소리를 저장하는 방법을 발명하였다는 사실일 것이다. 그가 발명한 기계는 20세기에 들어서서 보급되기 시작했다. 비록 소리는 거칠게 재생되었지만 SP판의 보급은 역사적인 일이었다. 20세기 초반 한국에서도 음반은 크게 유행하였다. 당시의 오디오는 전기로 작동되는 것이 아니었다. 손으로 태엽을 감아서 돌아가는 축음기에 에보나이트 재질로 만든 음반을 올려놓고 유행가, 판소리, 교향곡을 들을 수 있었다. 저장된 소리를 다시 듣는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음반이 발명되었다고 해서 소리의 신비함이 없어진 것은 아니지만 그 이후 사람들은 소리에 대해 가졌던 신비함을 차츰 폄하하게 된 듯하다. 그 후 SP가 물러나고 LP 시대가 열린다. 1980년에 이르면 LP 시대가 막을 내리고 CD의 시대가 도래한다. 녹음기도 발달하여 카세트테이프, DAT, DCC, MD 등의 오디오 기계가 보급되게 된다.

21세기에는 음악과 관련되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컴퓨터가 음악과 밀접하게 연관될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러 나 컴퓨터를 이용해 음악을 작곡하고 저장하고 편집하고 전송하는 일은 이미 보편화되었다. 다음 세기에 일어날 일은 그보다는 음악에 대한 의식의 변화일 것으로 보인다. 간단히 말하면 음악이 인간의 심성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새로운 인식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점이다.

우리가 소리를 사용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그 하나는 언어이고 다른 하나는 음악이다. 언어가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 매체인가 하는 점은 누구나 알고 있다. 언어와 그로부터 파생되는 문자가 문명의 근본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언어와 문자는 인간을 자신의 틀에 맞게 만들어 버린다. 우리는 한 살이 지나서부터 말을 배우고 학교에 들어가서 글자를 쓰는 방법을 배우고 글쓰기를 배운다. 글쓰기가 강조되다 보니 말하기의 교육이 소홀해졌다고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 가정과 학교에서 말하기 교육에 대한 무관심을 보면 그들의 주장에 동감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우리는 음악을 텔레비전이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대중적인 음악이 음악의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고 살고 있다. 그러나 그런 단순한 음악만이 음악의 전부는 아니다. 깊이 있는 음악은 어떤 음악들일까? 가 보지 않은 곳의 경치를 말로써 설명할 수없듯이 음악 역시 직접 체험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 그레고리안 성가를 들어 본 사람은 이 말의 뜻을 알 것이다. 그 음악을 들어 본 사람들은 지금 우리가 듣는 유행가가 탐욕과 좌절을 담은 노 래임을 느낄 것이다. 세상이 바쁘다 보니 심오한 음악에 대해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드는 것으로 보인다. 세상은 욕심에 가득 차 있는 것이다. 음악을 듣는 것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가를 생각해 보자. 직접 음악을 설명하지 말고 언어에 기 대어 설명하기로 하자.

인지 능력

우리는 말을 알아듣기 위해서 먼저 발음을 알아들어야 한다. 우리가 영어를 못 알아듣는 것은 우리가 영어를 모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모르기 때문이라는 말은 맞는 말이다. 그러나 모르는 것에도 단계가 있다. 영어를 알아듣기 위해 부딪히는 첫 장벽은 영어의 발음을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긴다. 발음을 하나하나 들려 주면 우리는 구별한다. 그러나 영어를 들을 때에 필요한 것은 하나하나의 발음을 알아듣는 능력이 아니다. 힘들이지 않고 쉽게 그 발음을 알아듣는 능력이다. 다시 말해 자동적으로 발음을 알아들어야 하는 것이다.

다음 단계에 이르면 흔히 나오는 발음을 추정할 수 있는 축적된 기억이 필요해진다. 예를 들면, 영어에서 s 발음이 나오면 곧이어 발음이 나올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비록 그 발음이 불분명하게 들릴지라도 st 발음이라고 추정할 수 있 어야 한다. st가 나오면 곧이어 r이 나올 가능성이 높기 때문 에 그 다음에 발음이 잘 들리지 않을 경우 그것이 str일 것이라 고 짐작하고 그런 단어가 자신의 기억 속에 있었는지 조회해 볼 수 있어야 한다. 만일 그런 단어가 없다면 str이 아니라 st 다음에 모음이 온 것일지도 모른다고 추정해 보아야 한다. 이처럼 발음을 알아듣기 위해서는 우리가 쉽게 상상하기 어려운 많은 뇌의 활동이 요구된다. 그러나 어릴 때부터 영어를 모국어로 배워 익혔다면 그러한 발음에 대한 추정을 의식하지 않은 채 해낼 수 있게 된다. 물론 한국어를 알아듣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영어권 사람에게는 한국어가 영어일 것이다.

이렇게 발음을 알아듣는 기술을 우리는 인지 능력이라고 말한다. 말의 뜻을 알아듣기 이전에 이러한 인지 능력은 여러 단계로 나누어진다. 어쨌건 말에 대한 인지 능력을 가짐으로써 우리는 자신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다. 다시 말해 그러한 능력이 있음으로 해서 우리는 자신이 독립된 개인이라고 느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말은 배운 아이들이 자신만만해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는 일이다. 우리는 말을 알아들음으로써 자신이 지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되고 그것이 자신의 자아를 뒷받침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이 지적이고 논리적인 능력을 가진 존재라는 확신을 넘어서서 자신에 대한 정서적 확신을 가질 필요가 있다.. 쉽게 말해 마음이 편해야 하는 것이다. 외부의 소리에 대한 섬세한 관찰, 그리고 그 소리들이 어떻게 얽혀져 있으며 그렇게 얽어 놓은 사람의 의도는 무엇인가 하는 것을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은 음악을 들으면서 이루어진다. 좋은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단순히 달콤한 사탕을 맛보는 것 이상이다. 좋은 그림을 파악하고 그것을 감상한다는 것이 색과 선과 그것을 조직해 놓은 착상을 알아채는 것이듯이 심오한 음악을 듣는 것은 우리에게 청각적 세계에 대한 깊은 정신적 체험을 가능하게 해 준다.

새로운 천 년에 들어선 지금 깊은 깨달음을 주는 음악을 듣는 것도 좋은 일일 것이다. 음악 역사가들은 베토벤의 후기의 음악을 "신을 향한 독백"이라고 말한다. 수도원에 머물기를 즐겼던 브루크너의 교향곡 역시 종교적 독백이다. 베토벤의 후기 작품이나 브루크너의 교향곡만큼 어렵지 않으면서 심오한 음악이 있다. 그레고리안 성가가 바로 그것이다. 얼마 전부터 유럽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그레고리안 성가의 CD를 구해 들어 보자. 음악의 심오한 세계를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출처 : 음악, 마음의 산책 / 서 우석  - 학문과 삶/ 교수 산문집 16 - 서울대학교 출판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