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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니의 삶

퇴직 날 풍경 본문

내이야기

퇴직 날 풍경

김현관- 그루터기 2022. 12. 13. 11:33

퇴직 날 풍경

드디어 지난 십여 년간 근무해 왔던 공항에서의 마지막 근무 날이다. 벌써부터 이 날을 D-Day로 삼아 날짜를 꼽아 왔는데 지난 며칠간 어찌 정년인 것을 알고 여러분들께서 " ! 정년이지요? 시원섭섭하시겠네요?"라며 인사들을 하는데 " 아니요 시원하기만 합니다"를 외치며 강단 있는 척했지만 막상 그날인 오늘이 닥치고 보니 마음 한편이 서늘하다. 대책 없는 정년이라 자유를 맞이하는 기분이 상쾌하지 않을 것임을 자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무실에서 심사대로 내려와 근무를 하는데 바로 눈앞에서 차단 벨트를 풀고 새치기를 하는 중년의 사내가 거스른다. 그냥 벨트만이라도 원위치시켰으면 날이 날이니만큼 모른 척하려 했는데 그냥 풀어 둔 채 유유자적 새치기한 줄로 들어가길래 불러 세워 나이 들수록 어른답게 올바른 행동을 하며 살아야 할 것 아니냐며 훈계를 하자 아니꼬운 듯 제자리로 돌아가버렸다. 사내가 심사를 마치고 나갈 동안 마지막 근무까지 까칠한 내게 스스로 좀 무뎌지라 채찍질해야겠다는 생각을 다짐하게 하였는데 나도 나지만 이곳을 지나치는 지극히 이기적이고 무질서한 수많은 한국인들의 몰상식한 행동거지의 한심스러움은 어찌해야 할까!

내국인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자 상 메라 푸티(홍백기)를 가슴에 달고 온 인도네시아의 산업 전사들이 일렬로 무리 지어 심사 대쪽으로 들어오고 있다. 머나먼 타국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려는 저 친구들이나 지금부터 낯선 생활을 해야 하는 내 입장이 동질감으로 합치되는 듯하여 측은지심을 느끼고 있는데 때마침 영기 형님께서 퇴직 안부 전화와 함께 일자리를 제안하셨지만 그다지 와닿는 자리가 아니다 싶어 완곡하게 말씀을 드렸다. 이곳에 올 때도 신경을 써 주셨는데 정년을 맞이하는 이 시점에 또다시 마음을 써 주시는 형님의 은혜를 어이 갚을까!

쉬는 시간! 휴게실로 가는 중에 출국장에서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발걸음을 재촉하는 남 경필 지사의 얼굴이 굳어 있다 마약혐의로 구속된 아들내미가 얼마나 원망스러울까. 아무리 높은 자리에 있어도 자식농사가 쉽지 않다는 것을 동네방네 소문냈으니 같은 부모 된 입장에서 안됐다는 마음만 든다. 지금 세상은 어린 것들의 범죄가 극성이고 정치인들의 어깃장들은 극에 치닫고 있으며 북핵으로 인해 국가 간의 관계가 엉망인 상태에다 수십 년간 썩어 문드러진 사회 곳곳의 치부들이 드러나면서 온갖 악취가 세상을 뒤덮고 있다.

지금 이와 같은 부조리한 사회의 병리 현상들을 차근차근 풀어 나가야 제대로 된 세상을 후대에 물려줄 수 있을 텐데 그러려면 나부터 사회적 책무를 하나하나 챙기면서 고쳐가야 하고, 당연한 듯 새치기를 하는 중년 남자들을 비롯해 이기적이고 무질서한 수많은 시민들의 의식도 깨뜨리는 행동들을 단초로 하여 다 함께 이 나라를 맑게 만들어야 할 터이다.

휴게가 끝나고 D 입국 심사대에서 근무를 하고 있는데, 얼굴에 웃음이 가득 차 있고 반달눈이 예쁜 심사관 J 씨가 인사를 한다. 미장원 아줌마가 머리를 태우는 바람에 단발 커트를 했다는데 생머리보다 지금이 훨씬 예쁘다 했더니 벙싯 웃는다. 오늘이 마지막 근무라 이제 헤어진다 하자 손가락으로 눈물짓는 시늉까지 내며 아쉬운 악수를 청해 준. J ! 늘 따듯한 미소로 인천공항을 환하게 비춰 주기를.

점심시간에 식당에 가니 A 심사팀이 옹기종기 모여 식사를 하고 있다. 오늘자로 정년이라 인사를 하니 못내 아쉬운 표정으로 축하와 아쉬운 말들을 전해 준다. 친분의 다소를 떠나 그간 한 공간에서 근무하며 알게 모르게 소소하게 쌓인 동료로서의 정감을 느낄 수 있었다.

이른 점심을 하고 나오자 동측 메인 홀에서 "왕가의 산책" 행사가 벌어지고 있다. 왕의 복장을 한 젊은 친구의 용안이 매우 밝다. 그의 주위에 아리따운 외국인 처자들이 살랑거리며 온갖 포즈로 사진을 찍고 있어 엔돌핀이 솟아나는가 보다. 아무튼 중앙홀에서 연주되는 현악4중주팀들과 이 "왕가의 산책"팀들이 인천공항을 통해 출국하는 승객들에게 한국의 멋을  보여 주며 여유로움을 선물하는 것이 좋아 보인다.

본부장이 근무지로 찾아와 그간의 수고를 격려하고 떠났다. 이제 근무가 끝났다. 늘 일정을 학인하던 근무표를 손에서 놓아 버리고 스케줄 근무를 하며 필수조건이었던 근무시간 알람도 삭제하였다. 이제 시간의 굴레를 풀었다는 뜻이다. 잠시 시간을 내어 출국장과 입국 심사대의 여기저기를 들러 보았다. 커다란 유리창 밖으로 보이는 큼지막한 비행기들. 승객들을 실어 나르며 무시로 일거리를 제공하면서 늘 이국으로의 여행을 동경하게 하는 이율배반적 애증의 관계를 맺어 오던 실체들에게 안녕을 고하였다. 출국장에 오르자 그동안 전혀 필요를 느끼지 못했던 환전을 하는 은행이 보이고 여권을 갖지 못해 그림의 떡인 양 바라만 보던 면세점의 화려한 물건들을 뒤로하고, 시장기를 덜어 주던 식당가와 빵 가게.. 그리고 졸린 잠을 쫓느라 마시던 커피가게들을 둘러보는 중에도 수없이 오고 가는 여행객들의 모습들이 활기차 보인다. 그리고 문득 이제 이곳을 나가게 되면 여권 없이는 와 볼 수 없는 공간이라는 의식을 하였다.

 "그래! 여권이야 여행하면 생기는 것.. 무엇보다 이제 자유로구나!"    

2017.9.19 그루터기

 

 

 

 

 

댓글

사랑

2017.09.24 01:21 신고

현관아

벌써 새벽 한시가 넘었네, 이젠 시간의 흐름이 별 의미가 없어진

나의 생활, 그래도 간절한 마음으로 오늘도 저를 용서하시고 저를 지켜 주소서, 기도 드릴 수 있는 주님이 계시니 행복하다는 생각을 한단다.

현관아

그 긴시간을 함께 했던 그 공간을 떠난 그대 그리고 나, 이제는 무엇을 기대하는 마음보다. 조용히 나를 어떤 곳에서 멀어지게 하는 간결한 생각이 나를 조그마한 행복의 기쁨을 갖도록 인도하는 등불이라 생각을 하네.

조금은 서글프고 조금은 당황스럽고, 조금은 걱정도 되지만, 차근차근 앞으로의 삶을 조심 스럽게 접근하는 슬기를 가슴에 품고 준비하시게

그리고 현관아

나도 그렇게 열심한 신자는 아니지만, 현관아, 주님께 의탁하는 삶을 살았으면 한다,

심란하고 복잡한 너의 마음을 더 복잡하게 만들지 않았나 걱정을 하면서 그대를 사랑하는 친구 예훈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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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루터기

2017.09.26 16:24

예훈아 고마워~ 늘 나를 챙겨 주는 네가 옆에 있음이 고맙고, 진정을 담아 얘기해 주는 정성이 고맙고. 삶에 대한 화두를 던져 주며 바르게 이끌어 주려는 너의 마음이 고맙다. 우리 이렇게 서로를 찬찬히 챙겨 가며 잘 살아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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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훈만

2017.09.25 16:43 신고

나보다 몇 달 먼저 정년을 맞이했구먼~~ 시원섭섭하다는 말이 어울릴지 모르지만 이제

심신의 고단함을 내려놓고 머리도 식히고 차근차근 후일을 도모하게나

 

자네나 나나 한 번씩 혼난 적이 있으니 이제부터는 건강이 화두가 되지 않겠나

 

그동안 정말 애 많이 썼네~그리고 무사히 정년퇴임을 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자고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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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루터기

2017.09.26 16:29

친구 고맙구먼.. 긴 시간 일을 해 왔는데 잠시 일손을 놓게 되었다네. 언제고 또 다른 공간에서 낯선 일을 할지 모르겠네만 자네 말마따나 건강도 챙기고 그동안 시간에 쫓겨하지 못했던 여러 가지 하고 싶었던 것들도 챙겨 가면서 당분간 지내보려고 하네.. 그중에는 전국의 친구들을 찾아다닐 계획도 잡아 놓았는데 춘천 방문 계획도 있으니 기다려 보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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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 제이

2018.02.07 08:31 신고

뭐라고 해야 히지?

축하한다고 하는 게 맞겠지.

정년퇴직을 축하하네.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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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루터기

2018.02.07 15:54

그랴 이 친구야.. 이제 또 새로운 삶을 시작할 것이니 축하가 맞다. 고맙구..자네는 계속 몸 잘 챙겨가며 정년 없이 멋지게 살아가려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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