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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이야기

눌린 안경과 눌린 빵

김현관- 그루터기 2022. 12. 13. 11:48

 눌린 안경과 눌린 빵

간밤에 아내가 안경을 벗어 놓고 자다가 어느녁엔가 실수를 하여 안경다리가 심하게 휘어진 모양이다. 안경점에 들러 새 안경의 스타일을 골라 달라며 함께 가자고 한다. 낼 모레면 생일인데 그깟 안경점 동행이야 아무것도 아니라, 흔쾌히 채비를 하고 따라나섰다.

오늘도 미세먼지가 준동을 하여 동인천 가는 길이 부옇다. 어느덧 푸근해진 차 안의 공기가 나른함을 유혹하며 은근히 눈꺼풀을 내려 앉히는 듯하더니 금세 안경점엘 도착하였다. 이 가게는 문지방을 넘는 손님들에게 직영하는 카페의 모든 메뉴를 무료로 제공해 주는 맛난 서비스를 제공하는 덕분에 매우 호감을 갖고 두 어번 방문하면서 아내와 작은애에게도 이곳을 들르라 권하기까지 하였다.

오늘은 망고 스무디와 고장 난 안경다리를 무료로 고쳐 주는 멋진 서비스까지 제공하여 괜스레 언제 살지도 모를 선글라스의 가격도 물어보고 서서히 초점이 흐려지는 안경알을 교환해야겠다며 웅얼거리는 것을 보니 호의를 자연스레 챙기지 못하는 어색함이 얼굴에 나타나는 듯하다.

"그래 미안한 마음을 느끼게 하면서 매출을 올리는 것이 이 가게의 상술이야. 그러니 그냥 편하게 받아들여라"는 이기주의(利己主義)와 애기주의(愛己主義)가 가슴속에서 충돌하고 있다.

와중에 잘 고쳐진 안경을 쓴 아내의 모습이 새삼스레 이뻐 보인다. 기분 좋게 안경점 문을 나서며  망고스무디를 한 숨에 들이키는데 그 맛이 시원하고 상큼하여 며칠 전 다낭의 마블 마운틴에서 마시던 망고주스의 맛이 되살아 나더라.

안경을 수선하느라 시간이 늦은 아내는 학교 합창단 모임에 나누어 줄  맞춤떡을 찾으러 부산스레 송현시장으로 떠나고, 나는 대한서림엘 들러 진즉에 찾아 읽으려 했던 생활형 검사라 자칭한 김 웅 검사의 사람 공부와 세상 공부를 펼쳐 냈다는"검사 내전"을 골라 들고 아래층 빵가게에서 저녁에 애들하고 함께 먹을 간식용 빵을 사 가지고 집으로 향하는 23번 버스에 올랐다. 한갓진 오후 시간이라 그런지 버스 안에는 서 너 명의 승객들만이 평안하게 갈 길을 가고 나는 책을 꺼내 들었다.

도심을 달리는 시내버스는 움직임도 빠르지 않고 흔들림이 적어 책을 읽기에 매우 편하다. 버스는 집을 향해 달려가는데 남구청 앞에서 올라 탄 내 또래의 아주머니가 하고 많은 좌석을 놔두고 내 자리에 찾아들어 책을 읽느라 옆자리에 놓아두었던 빵과 책봉지위에 턱 하니 걸터앉는다.

잠시 양해를 구했으면 금세 치워 드릴 텐데 참 경우 없는 아주머니로구나 생각하면서 빵 봉지를 훑어보았으나 크게 눌린 것 같지 않아 다행이란 마음으로 읽던 책마저 추스르고 고쳐 앉았는데 이번에는 창문 좀 닫으라고 하대를 한다. 이미 무심함을 익혀 대꾸도 하기 싫어 창문을 닫았는데.

! 글쎄!.

이 아주머니가 창문을 닫자 버스 카드를 카드리더기에 인식시키길래 아니 뭐 이런 몰상식한 사람이 다 있어?"라는 생각을 하는데 버스가 서자마자 제물포에서 후다닥 내려 버린다. 글쎄 사람이라면 염치쯤은 챙기고 살아야지 기껏 두 정류장도 아닌 한 정류장을 가며 타인의 빵을 구겨 놓고 시원하게 가려고 열어 놓은 창문마저 닫으라 하대를 하면서 불과 1- 2분여 짧은 시간에 다른 사람의 이성을 마구잡이로 흔들어 놓은 이 아주머니의 행태가 참으로 괘씸하다.

이러구러 살다 보면 주위도 둘러보고 서로 간에 불편함이 없도록 배려하며 살아가는 것이 사회생활의 기본이라 나 역시 텅 빈 버스라 하지만 내 물건을 빈 좌석에 놓아 두어 타인에게 선택권을 제한하게 한 행위에 대하여 할 말이 없지만 , 자신의 편의를 위하여 타인에게 거침없이 무례한 행동을 한 저 아주머니의 행태는 습관적으로 몸에 밴 것으로 완전한 이기심의 발로라 할 수밖에 없겠다.

이런 배려심 없이 못난 행태를 가지고도 잘못을 모르며 외려 피해를 입은 사람에게 핀잔을 주며 삿대질까지 하는 적반하장 격인 사람들을 몇 번 겪다 보니  독한 마음이 아니면 마음 편히 살아가기 힘든 세상임을 간간히 느끼게 된다. 집에 돌아와 책을 읽으며 저녁이 모자라 헛헛한 속을 달래려고  빵을 찾다가 일화가 생각나는데, 나이가 들어서인가 저 순간을 용케 참아 낸 스스로를 칭찬하며 하루를 마무리 짓는다..!  

2018.3.29  그루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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