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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니의 삶

오늘이 입추라는데 본문

내이야기

오늘이 입추라는데

김현관- 그루터기 2022. 12. 13. 12:06

오늘이 입추라는데

오늘이 입추라는데. 아직도 전국이 용광로처럼 끓고 있다. 이미 계절은 가을로 들어섰는데, 바늘처럼 쏟아지는 햇빛이 온몸을  아프게 찔러대고, 가쁜 숨 헐떡이며 머리통에서 솟아나는 땀방울들을 훑어 내는 손길이 분주하다. 가로수마다 자리 잡은 매미들이 그악스럽게 울어대는 소리를 들으며 건물 그림자에 잠시 몸을 쉬고 있는데 골목길 한편에서 반짝이며 빛나는 잘 익은 빨간 고추 더미가 눈에 띈다. 올해 들어 처음 보는 고추 말리는 모습이다. 벌써 고추가 저렇게 크고 야무지게 열리는동안 더위 타박만 해 대고 겅중겅중 시간만 보낸 것에 대한 아쉬움이 슬그머니 마음속에 자리 잡으며 대번에 계절의 꼬리물기를 떠 올린다.

!, 여름!, 가을!, 겨울!.. 시간이 지나면 계절은 슬그머니 제자리를 찾아오는데, 아무리 덥다한들 입추가 지나가니 점차 조석으로 선선해지고 차츰 쌀쌀해지다 찬 바람 불면 어느새 따뜻한 아랫목을 그리워할 텐데.. 그 새를 못 참고 아웅다웅하며 지내는 동안 시간은 무심히 흐르고 계절은 또 바뀌며 속절없이 나이만 축내는 인생살이가 아깝다.

어느 날! 달력을 뒤적이다 어느새 몇 장 안 남은 낱장을 세며 후딱 놀란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데."  "시간의 흐름을 의식하며 살지도 않았으면서". 달력에서 세월을 느낄 때마다  걸어온 발자취를 돌아보는 얼굴에는 주름이 한 이랑씩 패어 난다. 월간지 한편에서 이 외수 씨의 세월에 대한 정의를 본 기억이 난다. 

" 세월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 쌓이는 것이다".

세월 속에 새겨진 흔적들이 추억을 만들고, 그 추억을 회상하며 인생을 꾸려 가는 것을 보면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세월의 침전물을 가슴 한 구석에 쌓아 두기도 하는 모양이다.

살다 보면 가족과 주변의 환경에 스스로를 끼워 맞춰 가며 굴러가는 자신을 지켜볼 때가 있다. 그렇게 사는 것이, 아들로서 아버지와 남편으로서의 당연한 길이라 하지만 어느 순간 나만을 위한 삶을 살아보기 위한 꿈을 꿔 볼 때가 있다. 꿈을 꾸고 있는 동안만큼은 마음이 푸근해지고 잠시 시간이 멈추기를 바라지만 결국 그때뿐이다.

계절의 변화에서 어느 사람은 계산기를 두드리고, 어느 사람은 마음속을 흐르는 감성을 느껴 보기도 하겠지만. 어느 사람은 부딪는 삶 속에서 아예 그 조차 느끼지 못하다 눈에 들어오는 낙엽 하나, 새 순 하나에서 지나는 세월을 느끼고, 희끗한 머리칼에서 스스로 나이 들어감을 깨닫기도 한다. 그렇게 깨닫는 그때가 인생의 정점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하늘이 자기에게 내려 준 몫에서 지금 몇 개를 썼는지 꼭 챙겨 봐야 할 때가 바로 잊고 지내던 계절을 의식할 때인 것이다.

해마다 한 두 번쯤은 살아가는 자신을 거울에 비춰 보곤 하는데 요즈음이 그런 때인가 보다. 근 이 십 년 전! 삶의 목표점을 바꾼 뒤, 녹록잖은 세상의 호된 질책을 받고, 내 의지와는 다른 수정된 인생을 살아오며 변화된 나를 느낄 수 있는데 , 주위 사람들은 어떤지 몰라도 스스로는 예전의 모난 성격이 주던 욕심을 버리고, 겸손함을 배워가며 마음의 평안을 누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순을 지나 입추를 맞이하며 변한 내 모습을 되돌아본다. 의식하지 못하며 지낸 시간 동안  젊음은 스러지고, 어깨에 올려진 책임의 무게가 온몸을 지그시 눌러옴을 알아도 아직까지는 삶을 바라보는 눈동자에 총기가 살아 있음을 보면서 알찬 결실을 맺을 내 인생의 정점을 슬그머니  뒤로 밀어낸다. 아직은 거뜬히 세상을 지고 살아갈 만한 삶이니까!   

2018.8.7 그루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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