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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니의 삶

웅크린 말들 / [말해지지 않는 말들의 한恨국어사전] 본문

내이야기

웅크린 말들 / [말해지지 않는 말들의 한恨국어사전]

김현관- 그루터기 2022. 12. 13. 12:52

웅크린 말들 /  [말해지지 않는 말들의 한恨국어사전]

오랜만에 제주에서 사회복지 일을 하는 춘진 아우가 올라와 점심 겸 반주를 하고 헤어졌다. 며칠 뒤 글을 쓰는 데 도움이 되면 좋겠다며 책을 한 권 보내왔는데, 한겨레신문 기자 이 문영의 '웅크린 말'이라는 신문책이었다.

이 책은 저자가 '한겨레 21'에 연재했던 기사들 중에서 수정, 편집, 보강하여 발간했으며 읽기 전에 저자가 썼던 기사들을 먼저 챙겨 보라는 아우의 조언으로 이 문영 기자의 취재 기사들을 몇 건 챙겨 보고 읽다 보니 저자의 의중을 다소나마 이해할 수 있어 아우의 세심함이 고맙구나.

첫 장인 '소리 잃은 검은 기침 : 석탄'이라는 제목을 보자마자, 읽어 가는데 예사롭지 않겠다는 느낌마저 훅하니 치고 들어오더니, 아닌 게 아니라 소설도 아니고 기사에 가까우면서도 기사로 볼 수 없는 특이한 산문으로, 본시 기사는 비문학 범주에 속하지만 고매한 교수 분께서 굳이 '문학적 기사'라고 지칭하시니 그런 줄 알고 차용해 써야겠다.

하지만 문학적 기사라는 이 책은 많은 독자들에게 생소할 전문적인 언어와 은어들 및 대부분 밑바닥 삶을 이어가는 그네들만의 언어를 해설한 각주[脚註]가 수없이 많고, 무엇보다 글자가 너무 작아 글을 보기도, 해석하며 읽기도 매우 불편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발로 뛰며 '동원탄좌 폐광 광부, 구로공단 여공, 에어컨 수리기사, 대부 업체 콜센터 직원, 넝마주이, 이주노동자, 소록도에 거주하는 한센병 환자, 성소수자, 소양강 댐 수몰민, 송전탑 설치에 반대하는 밀양 주민들,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제주 강정마을 주민들을 만나 깊은 대화를 시도하고 취재하여

그네들에게 행해지거나, 현재 진행형인 부조리
, 권력의 폭력, 착취와 억압, 무관심 등에 대한 감정과 입장
을 객관적으로 혹은 일인칭으로 묘사
하며, 가장 독자들의 관심을 가질만한 기사를 산문으로 재구성
, 세밀하게 전달하고자 하는 노력들이 눈에 띄었다.

첫 장인 '석탄'을 읽으며 사건의 주제와 인물들에 이입되어 가던 중에 글의 배경이 되는 정선에는 '사북항쟁' 시절부터 지금까지 정선에서 택시 업을 하며 살아가는 동창 대형이가 있어 장면들 묘사에 대한 세밀함과 그네들이 쓰는 어휘에 더욱 애정을 갖고 장마다 각주 [脚註]를 뒤적이고 몰입을 하며 읽어 갔다. '석탄'은 폐광 후 단전 단수된 상황에서 폐쇄된 사택에서 기거하는 광부 송 양수와 전 이출 등의 인물들 취재하며 한때 은성했던 과거와 현재의 영화로움인 강원랜드에서 바닥을 치며 살아가는 얼마 안 남은 광부들의 비참한 현실을 써냈다.

사북을 생각하면 아련하게 한 아가씨가 떠오른다. 그녀의 부탁으로 총각시절 함께 이곳엘 온 적이 있었는데, 당시 "환절嶺을 오르며 쌕쌕 대던 가쁜 숨결은 귓전에 느껴지지만, 어찌 된 연유인지 그녀의 동그란 얼굴 속의 면면들은 이제 초점 잃은 렌즈처럼 뿌옇기만 하다. 그러나, 고개를 오르면서 조잘조잘 얘기하던 말 중에 이 말 한 자락이 어렴풋 기억난다.

이거 알아요? 어릴 때부터 우리 집 담장 안에 피어 있는 노랑 개나리를 보면 내가 살아 있다는 안도감이 드는 거 있죠. 그때부터 밝은 유채색을 좋아해요.. 이곳에서는 특히 밝은 색이 더 빛나니까요..”

봄이면 사북 집 담장 안에 핀 노랑 개나리에서 유채색만이 삶의 의미인 듯 생명이 느껴졌다던 그녀는, 그래서인지 검정과 노란색의 대비를 유난히 좋아했다. 사북행 버스 안에서 노랑과 검은색의 사선으로 칠한 헌병의 발 받침대도, 길가에 놓인 바리케이드의 사선도 그리 곱다며 도를 넘게 좋아했었다.. 하지만 폐 속의 검은 가루가 자신을 죽인다면서도 연실 뿜어 대던 담배연기 덕분에 어느 해 겨울! 자기만의 세상을 그리며 요절하고 말았는데 부디 유채색 만발한 세상에서 아름다운 삶을 살길 바란다.

2015 11 14일 민중총궐기 시위대를 진압하던 경찰 물 대포에 맞아 죽은 농민 백남기의 생활을 써 내려간 글을 보면서 그동안 전해졌던 일단의 뉴스에 관하여 관심을 두지 않아 [개인적으로 오래전 이런저런 집회와 시위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이 있어서 관심을 끊으며 지금까지 지내 오고 있다] 전혀 몰랐던 그분의 삶과 그로 인하여 멸종 위기를 넘긴 우리 밀에 대한 애정을 알게 되었으며 자급 농정에 대한 이해를 갖게 되었다. 2016 9월 그는 떠났지만 그의 방안에는 아들이 쓴 '당신'이라는 시 한 편이 남아 그의 뜻을 기릴 것이다.

'당신은 꼿꼿함을 지니고 있습니다.
살을 도려내는 추위 속에 눈이 온몸을 눌러도
잎 하나 떨어뜨리지 않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우연히 듣게 된 '디어 클라우드' '행운을 빌어 줘'라는 노래 가사가 조금이나마 내게 위로가 되었고, 행운을 빌어 줘'라는 노래 가사의 반복적인 라임이 이 책의 제목인 '웅크린 말'의 접속 조사의 쓰임과 궤를 같이 한다는 느낌을 받으면서 우연함은 강제될 것도 아니며 필연적이고 자연적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는데, 때마침 보게 된 뉴스에서 노조 와해 공작을 한 혐의로 구속 위기에 놓인 삼성전자 의장의 검찰 출두 영상을 보면서 34살로 생을 마감하면서 전태일의 삶을 이루고자 했던 삼성전자서비스의 수리기사 주인공 최 종범과 염 효석 분회장과의 자살 사건을 쓴 '서비스'에서 간절하게 염원한 그들의 희망이 이루어지길 진심으로 바라게 되었다.

이 책을 읽어 가며 지난하게 살아왔던 스무 살 청춘시절이 오버 랩 되었고 이후 살아온 내 삶의 부분 부분을 옮겨 놓은 듯한 장면들에는 공감과 아픔을 느끼면서도 저들에게 지워진 아득한 굴곡진 세상의 핍박들에 비하면 그동안 힘들다고 구시렁대며 지내 왔던 내 삶은 힘든 게 아님을 깨달을 수 있게 되어 다행이지만 이 시대의 아픔을 온몸으로 겪어 내는 역경 속에서도 한 단계 위의 삶으로 오르고자 애를 써 봐도, 가진 것 없는 사람들에게 유달리 심한 차별과 박해 그리고 모르쇠로 이루어지고 있는 한국 사회의 이기적인 불편함을 들춰 보게 되어 마음이 먹먹하다.

언어는 거울이면서 거짓이다. 삶을 비틀기도 하고 비추기도 하는 언어의 이중성을 빗대어 한韓국어에 표준을 부여하고 이 표준에서 배제된 언어는 한恨국어가 되고 표준에 끼지 못하는 사람들은 한恨국에 산다고 이야기한 저자의 한마디가 전제라면, 적어도 이 책을 읽는 독자만이라도 우리의 일상에서 韓과 恨을 발견하여 고쳐 내며 살아가는 것이 표준적인 韓의 전체라는 것이 이 책을 쓴 이유라고 들고나가며 저자는 말하였다.

각주 [脚註]의 글자가 너무 작아 어렵게 이 책을 읽었고 저자의 의도는 충분히 이해했으니 이제부터는 일상의 행함을 당연시하며 살아가면 될 터이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스스로 문학적 기사가 무엇인가를 보여 주고, 글 쓰는 데 접속 조사의 다양한 활용법을 일깨워 준 이 문영 기자에게 감사하고 이 책을 보내 주면서 맨도롱 또똣한 사랑을 마음 가득히 채워 준 제주도의 춘진 아우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2018.9.16 그루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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