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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윤기
- 모처럼 수봉산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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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니의 삶
추억을 도둑맞았다 본문
추억을 도둑맞았다
올 초 왠지 마뜩잖던 웹주소 하나를 잘못 건드리는 실수로 인하여 컴퓨터에 내장되어 있던 사진 파일들이 랜섬웨어에 감염되어 몰살당하는 불행한 사건이 있었다. 근 십여 년간 애지중지 모아 왔던 내 삶의 추억이 담겨 있는 십여 만 장의 사진들을 부지불식간에 잃고 나서 그야말로 황망함에 한동안 아무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참으로 난감하고 오장육부가 뒤집히며 심장이 쥐어뜯기 듯 저릿한 그 아픔을 어찌 말과 글로 형용할 수 있을까!
혹시나 되살려 볼 방도를 알아봤으나 최신의 랜섬웨어에 감염되어 어느 곳에서도 복구할 수 없다면서 그나마 유포자에게 원하는 금액을 주고 되살려 달라는 애원을 해야 한다니 이런 경우가 어디 있나 싶었다. 웹사이트를 뒤져 보니 한두 푼이 아닌 가상화폐로 지급을 해야 하고 그마저도 돈만 떼이고 되살릴 가능성마저 별로 없다고 하여 쓰린 가슴을 부여잡고 복구하는 것을 포기하고 말았다.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나다 보니 잃어버린 사진들에 대한 애틋함이 다소 누그러지기는 했으나 지속적으로 소소하게 작업을 하면서 사진이 필요할 때마다 악몽이 되살아 난다. 음악파일들만 백업을 해 놓고 사진 파일에 대한 백업을 괜스레 미루다가 결국 이렇게 된통 화를 당하고 말았다.
몇 년 전 큰 애가 실수로 음악파일들을 몽땅 지워 버려 한동안 화를 내며 지내던 일이 떠오른다. 내 것에 대한 애착이 강한 내가 큰애에게 핀잔을 줄 때마다 주눅 들었던 녀석의 슬픈 눈망울이 아직도 그려진다. 당시에 백업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면서 음악파일들만큼은 그때그때 백업을 해 놓았는데 어찌 추억이 담겨 있는 사진에 대하여 그리 무심하였을까 하는 자괴감마저 절로 들면서 "앞의 실수를 거울로 삼는다"라는 전차가감이라는 사자성어가 절실하게 떠오르는 중이다. 같은 실수를 되풀이 한 나는 당해도 싸다.
* 전차가감(前車可鑑)前 : 앞 전 / 車 : 수레 거ㆍ차 / 可 : 옳을 가 / 鑑 : 거울 감
나야 그렇다고 하지만 내 파일뿐만 아니라 컴퓨터에 함께 보관되어 있던 아내의 파일들마저 다 지워져 미안한 마음에 얼굴을 들지 못하였는데 아내 역시 학교 행사와 성가대의 일상들, 그리고 성지 순례하며 찍은 사진들과 사진 모임에서 찍어 두었던 작품 사진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친구들과의 많은 추억들이 담겨 있는 사진들을 남편의 잘못으로 몽땅 잃었으니 그 마음이 오죽할까마는 오지게 아파하는 나를 보고 차마 서운함을 내보이지 못해 미안함이 더하다.
랜섬웨어를 퍼뜨려 추억을 도둑질한 녀석들은 대체 어떤 심성을 가진 놈일까 궁금하다. 추억이라는 것조차 가져 보지 못한 철저히 비뚤어진 영혼의 소유자인 듯싶어 평생 저주를 하고 싶지만 대상도 모른 채 욕지거리를 쏟아 봐야 나만 상할 것 같아 그 녀석을 용서하기로 했지만 다시는 어느 누구도 저렇게 다른 이들의 소중한 추억을 망가뜨리는 몹쓸 짓거리를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나마 영상파일들이 반 이상이 살아남아 다소의 위안을 삼고, 여기저기 가족과 친구들의 소셜미디어에 올렸던 사진들을 몇 장씩 그러모으는 재미도 느끼면서 아날로그 시절 필름 카메라로 찍어 둔 사진들이 남아 있음이 천만다행이라 여기며 지내고 있지만 그래도 내 마음의 심도와 정서를 표현한 사진들이 사라짐에 아쉬움이 크다.
이제 소 잃고 새로이 든든하게 외양간을 고쳐 놓았다. 새털 같은 추억을 보관한 사진은 잃었어도 든든하게 남아 있는 내 블로그 속의 삶들은 결코 잃지 않을 것이다. 혹시나 그간 써 온 글들도 차곡차곡 정리하여 별도의 창고에 언제고 꺼내어 볼 수 있도록 쟁여 놓는 중이고, 시간이 없어 듣지 못했던 음악들도 챙겨 들으면서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있다.
생각해 보니 많은 사진들을 빼곡히 정리는 해 놓았지만 그것들을 보면서 옛 추억을 되돌아보는 데는 인색한 바보 같은 삶을 살아온 게 아닌가 싶다. 하얗게 변해버린 사진 파일들을 하나하나 지워 가면서 옛 것을 돌아보고 반추하여 늘 새로움을 추구하는 것이 올바른 삶이라 할 것이고, 가족과 친구들과 함께 매 순간 잘 생긴 삶들을 꾸며 가야겠다고 깨달은 것이 그나마 소득이라 하겠다. 잘 만들어 가는 삶이 모여 아름다운 추억이 될 테니까.
'그래 그래야지 까짓 사진 몇 장 또 찍으면 되지.'
'그래도 아쉽다. 어휴 ~ 내 사진 내 추억들..'
2018. 5.10 그루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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