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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니의 삶
잊고 있던 추억을 되찾다 본문
잊고 있던 추억을 되찾다
집안 정리를 하다 창고로 쓰는 보일러실 안쪽에 잠자고 있던 추억을 발견하였다. 40년은 족히 된 편지와 엽서들인데 상당 부분이 70년 후반의 편지들로 새삼스레 당시 친구들의 면면을 알 수 있게 되는 재미있는 읽을거리들이 되었다.
육군 수송 학교 하사관 후보생 익현이의 편지 한편에는 두열, 기배, 용옥, 완규, 성호, 석 그리고 현관, 무수한 얼굴들 모두 그리운 얼굴들이구나.. 이렇게 친구들 이름을 거명하였다. 당사자인 익현이와 기배는 멀리 미국에 있고 안희녀석은 이미 세상을 떠났으니 당시에야 40여 년이 흐른 지금 이런 상황을 짐작이나 했을까! 그저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흐르고 나이가 들겠다는 사실만 챙길 수 있었을 텐데.
해군교육단 해군훈련소 하후생 종화 형
강진우체국 사서함 10호 동네친구 광덕이
공군 제 3**9부대 야전정비대대 병장 강 정구
공군 제2**5부대 항공병 학교 후보생 김 두열
공군 제 2**5부대 기술학교 병참 대대 하사 김 두열
급히 할 얘기가 있어도 전화가 없어 편지로 소통해야 했던 남수
'우리 현재를 사랑하도록 해 보자' 던 남수..
난 항상 겨울이 찾아오면 김 이홍 선생님이 떠 오르네 "가슴을 펴라" 이번 겨울에 자네와 나의 숙제가 있네 반드시 해 내야만 하는 것이네 가슴을 펴 보게 가슴이란 뭔가? 그건 큰 의미가 있네 가슴을 펴고 이번 겨울을 보내기로 하세. 79년 27살의 겨울에
'잘 있니? 나 잘 있다.' 엽서 받는 대로 답장하라는 협박성 엽서를 보낼 당시 강릉으로 거처를 옮겼던 대진이! 남양주에 사시던 영자 이모의 안부편지..
졸업을 축하한다며 앙증맞은 메모지 몇 장을 보내온, 춘천의 펜팔 친구 옥주,
공무원 임용시험에 제출하려 한 통 더 발급받은 것으로 보이는 주민등록 초본.
동료의 애틋한 바람을 적어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낸 마을금고의 김양과 큰 유양
누렁 봉투 양면에 아무 글도 쓰여 있지 않은 문학클럽 가입 권유문! 이 편지를 읽는 것만으로 족하다는데 누가 보내었는지 알 수 없고 말미에 영어로 휘갈려 쓴 사인으로 당사자를 유추할 수 없어 의문만 안고 학창 시절을 종료해야 했다.
그리고 보물을 찾았다.
보낸 이의 이름은 없지만 그래서 어머니의 눈에 벗어나 살아 난 편지 한 장.. 여행지를 다녀오며 흔들리던 마음이 제자리로 돌아 섰다며 속마음을 얘기하고, 모든 것을 잊은 채 행복에 도취되었다는 그녀의 편지 한 장이 지금 내 앞에 존재하고 있으니 참으로 복된 일이다.
겨울방학에 수원에서 만나 함께 지동 언덕길에서 자전거 헬멧을 안 썼다고 남문파출소로 끌려간 유쾌하지 못한 추억을 공유한 친구.. 74년 1월 4일 밤 11시 당시의 상황이 쑥스러워 미처 편지에 풀어내지 못한 채 말미에 뜬금없이 유머를 한 장 가득 써서 보낸 깡지니
굉장히 미안하지만 이름도 알고 얼굴도 기억나는데 그렇게 친하다는 생각을 안 했던 중학교 동창이 보낸 편지도 있다. 지금 보면 간지러울지 몰라도 당시로서는 매우 진지한 표현으로 보낸 편지였는데 나로서는 뜬금없고 지금의 그 친구가 이 글을 본다면 역시 뜬금없는 표정을 지을 것이 분명하다. 과연 그는 나의 이름이나 기억하고 있을까? 청량리1동 61-34번지에 살던 친구 박 용* 이 글 보면 댓글 써 봐라 한 잔 하며 옛날 얘기나 해 보자꾸나.
반듯한 명조체의 펜글씨로 '어제 집을 옮겼답니다. 지금의 제가 있기까지 꼭 필요했던 곳 -중략- 일천구백칠십오년 팔월 칠일 榮敏 이사 사실을 알려 주던 국민학교 동창 영민이는 왜 꼬박꼬박 경어체를 썼을까? 그리고 두 달 뒤 사춘기의 황홀한 치기를 보내온 그 애의 편지.. 내 사춘기 시절에 쓴 '사흘간의 독백' 류의 글을 보며 당시 유행처럼 번지던 염세주의에 대한 환상들을 볼 수 있다.
19.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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