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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니의 삶
모니터 와 나 본문
모니터와 나
나는 하얗게 펼쳐진 모니터의 화면에 마음이 끌린다. 그저 키-보드로 누를 제 나타나는 문자들의 조합이 매우 좋다. 거기에는 내가 평소에 생각지도 않았던 문장들이 써지곤 한다. 깜빡이는 커서는 나를 향해 손짓을 한다. 빨리 문자판을 두드려서 내 생각을 펼쳐보라는 듯 그렇게 끝없이 윙크한다.
집에는 두 아이들과 우리부부가 쓰는 컴퓨터 두 대가 있다. 아내가 공부하느라 작년 말에 한대 더 들여놓아서 두 대가 되었다. 하지만 집에서는 별로 컴퓨터를 만지지 못한다. 아이들의 온라인 게임기로서의 기능을 착실히 수행하기 위해서다. 해서 모니터와의 만남은 주로 혼자 근무하는 사무실에서 이루어진다.
조용한 음악과 커피 한잔이면 나의 끄적임이 시작된다. 특히 아주 조용한 새벽이면 더할 나위 없이 생각의 범위가 넓어진다. 모니터가 하얀 얼굴에 화장을 해 주길 바라며 나를 유혹하는 그 느낌에 머릿속에서는 조합된 단어들을 끝없이 손가락에 명령을 해 나간다.
감성지수의 등락과 모니터와의 만남은 함수관계를 이룬다. 계절에 따른 창 밖의 정경이 바뀔때쯤이나, 친구와의 정겨운 만남에서 마음이 푸근해질 때, 또는 지인들과의 대화에서 내 삶에 대한 부드러운 자극을 받을 때, 그리고 가족들의 일상에 변화로움이 있을 때 말없이 나를 기다리는 모니터와 만나는 횟수도 잦아진다.
동그랗고 묵직한 발 하나로 못 생긴 네모 난 얼굴 하나를 지탱하면서도 밥을 안 주면 심술 난 까만 얼굴로, 밥을 먹여야 온 갖 색으로 분치장을 하며 나를 향해 깜빡이는 외눈박이 모니터는 쥐 꼬랑지를 내게 맡긴 채 그렇게 재롱을 피운다. 융통성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이 아이는 성격이 고지식하고 우직해서 간혹 애를 태우게 할 때도 있다.
일년에 한 두번 자료를 몽땅 휴지통에 버리거나, 몇 시간씩 생각을 정리해 놓은 자료들을 죄다 분칠해 놓는 날이면 애타는 정도가 아니라 그냥 부수어 버리고 싶은 맘이 들 때도 있다. 그 외에는 항상 말없이 내 생각을 정리해주는 얘가 나는 참 좋다. 아는 것도 많은 이 애는 그저 내가 자기를 사랑해 주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지만, 이 아이만을 사랑해 주질 못하는 내 마음도 안타깝다.
워드 패드를 주로 활용하는 날이면 미칠 듯 좋아 하고, 블로그나 카페 관리를 할 적에는 빙그레 미소만 지을 뿐이고 웹-서핑만 하는 날에는 그냥 표정이 데면 데면한 티가 역력하다. 게다가 새로 산 모니터는 얼굴이 너무 길어 전부터 쓰던 모니터보다 덜 정이 간다. 아들이 그냥 새 걸로 선심 쓰듯 분할을 해 준 덕에 그냥 품에 안고 쓰기는 하지만, 커서가 간혹 숨바꼭질을 하는 바람에 은근히 부아를 돋우곤 한다.
그래도 나는 원고지보다 얘들이 맘에 든다. 습관적으로 지우고 다시 쓰기를 밥 먹듯 하는 내게 지우고 덧 붙이는 기능이 있는 얘들이 참으로 맘에 든다. 쥐꼬리 엉덩이 한 쪽을 한 번 누를 때마다, 단 한 번도 구시렁거림 없이 보관도 하고, 진열도 하며 내 입맛과 구미를 돋우는, 그리고 장식도 해 주고, 색칠도 해 주는 이 아이가 정말 마음에 든다.
앞으로도 내 손끝 움직이는대로 따라와 주는 충견과도 같은 얘들과 함께 나른한 휴일도 함께 할 것이며, 내 생각을 공유하고, 사색도 즐기고, 친구와의 우정도 ,그리고... 계절의 속삭임과 변화의 아름다움을 보고 느낄 것이며, 사랑하는 마음까지도 켜켜이 함께 쌓아 나갈 것이다.
작은애 졸업식날 2009.02.11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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