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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교 포구 잔칫날 본문
덕교 포구 잔칫날
어느 일요일 아침! 새벽녘에 일어나 샤워까지 하고 나니 기분이 매우 상쾌하다. 거실 유리창을 시원스레 열어 앞마당을 내다 본다. 이 집에 이사 올 때부터 앙증스레 꾸며져 있는 담벼락에 붙어있는 작은 정원 한 구석에서 빨간 모란꽃 두어 송이가 며칠 전부터 고혹스런 몸짓을 하며 아침마다 내게 눈웃음을 친다. 한갓 화초 하나의 환한 웃음이 내 마음을 여유롭게 해 준다. 덕분에 우리 직원들도 꼬장한 내 성질머리의 까탈스러움에서 해방되었다.
오늘은 용유도 덕교 포구에 사는 성 씨네 회갑 집에 가는 날이다. 수일 전부터 같은 사무실에 근무하는 성 씨가 아버님 회갑연에 참석해줄 것을 은근히 종용하며, 안 오면 재미없을 줄 알라는 협박 아닌 협박까지 받은 터라 꼭 참석하리라 답을 준 상태이다.
그나저나 월미도 배터까지 9시 배 시간에 맞추어 가려면 시간이 빡빡한 게 아무래도 택시를 타야 할 것 같다. 석바위 주안도서관 앞에서 걸음을 멈추기 무섭게 택시가 한대 오더니, 그때부터 월미도까지 신기하게도 신호 한 번 안 걸리며 질주한다. 아무리 일요일 오전이라도 그렇지...
" 여보 기사 양반 오늘 일진이 매우 좋으려나 봅니다. 신호등 한 번 안 걸리고 여기까지 내쳐 오는 것을 보니... "
" 그러게요 저도 이런 일은 참 오랜만입니다.. 이럴 땐 조심해야 돼요..."
기사의 톤 높은 기분 좋아 보이는 답변이다. 하늘도 샤워를 했는지 무척이나 청아하다. 여유로운 구름의 남실거림을 쳐다보는 내 걸음도 점점 늘어진다. 이윽고 선착장엘 도착하자 배 시간이 이십 분도 더 남았는데 승객들이 술렁이더니 개찰문이 열린다. 차량이 많아 임시로 먼저 떠난단다.
"어라 오늘 왠일이야! 택시도 배도 시간이 잘 맞아떨어지네 "
이층 선실 안에는 승객들이 별로 없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울긋불긋한 차림새의 관광객들이 꽤 많이 눈에 띈다 쾌청한 날씨 덕에 다들 뱃전과 후미에 마련된 테라스로 나가 선실 매점에서 구입한 과자 부스러기로 갈매기들을 유혹하며 환호성을 지른다. 10 여분의 선상 여행도 그렇게 끝이 나고, 구읍배터에 대기하고 있는 을왕리행 버스에 거의 모든 승객들이 올라탄다.
성씨가 나를 마중하기 위해 기관장을 보냈다. 넙데데한 얼굴에 선한 인상의 기관장은 우람한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꽁지 빠진 회색 "프라이드" 승용차를 몰고 나왔다. 그 는 늘 그렇듯 알게 모르게 계면쩍은 듯 한 미소를 지으며 구멍가게에서 방금 타 온 듯 커피 한 잔을 건넨다..
포장 안 된 시골길에서 먼저 떠난 돌팍재행 버스는 뒤 꽁무니에서 폭포수와 같이 뿌연 흙먼지를 일으키며 못난 엉덩이를 가린다. 그래도 좋다. 매일 다니는 일상적인 길인데도 오늘따라 차창밖에 보이는 모든 풍경이 정겹다. 꾸불꾸불한 진등 고갯길도 정겨움을 준다. 참 좋은 곳이다. 아침마다 삼목에 있는 영종 보건소에서부터 시작되는 해송으로 우거진 길을 지나치며 해송들의 정기를 몸으로 느낀다. 해송 군락을 지나자마자 영종과 용유를 잇는 연장 4킬로가량의 연육교를 지날 때 또 한 번 시원한 바닷바람이 온몸을 감싸며 내 정신을 일깨운다.
차는 금세 덕교포구앞 너른 공터에 도착했다. 200년은 훌쩍 넘은 세월의 풍상을 꿋꿋하게 보낸 듯한 느티나무 주변에 햇빛을 가리는 흰색 차일 여러 개가 바람에 춤추고 있다. 진짜 시골 잔치다! 아침 7시부터 잔치가 시작되었다고 기관장이 귀띔한다. 이곳저곳에 자리 잡은 동네 어르신들이 벌써 불콰한 모습으로 막걸리잔을 들고 이리저리 연신 어깨춤을 추며 돌고 또 돈다.
나를 본 성씨 아버님이 너무도 반갑게 맞아준다. 두 손을 꽉 잡고 "와 주어 고맙네 "를 거듭 외치시며 당최 손을 풀 생각을 안 하신다. 성씨가 다가와 싱글거리며 손을 풀어준다. 참으로 정겨운 부자이다. 내가 이곳에 근무하며 가장 친해진 가족들인데 그냥 보기만 하여도 미소가 나오는 그런 부자지간이다. 생색내지 않고 어려운 이웃들을 돌보며 덕으로 참된 인생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두 분은 우리네 인생을 옹골차고 찰지게 할 밑거름이 되시는 분들이다.
윤 선장도 저 편에서 신이 나 신고산이 우르르.... 노랠 부르고 있다. 평소에도 빨간 얼굴인데 오늘은 아예 얼굴에서 불이 나고 있다. 저러다 마나님에게 끌려가면 그날은 얼굴을 못 본다. 윤 선장은 배몰이 실력도 고기잡이 실력도 인근 지역 선장 중에 으뜸이고 성실하고, 사람 좋고, 모든 면에서 다 좋은데 술만 마시면 주체를 못 하는 게 한 가지 흠이다.
가운데 큼지막하니 쳐 놓은 천막 안에 동네 유지와 어른들이 다 모여 있다. 면장, 지서장, 농협지점장, 보건지소장, 한전 분소장, 우체국장, 이장. 건넛마을 무의도에서 떵떵거리는 차씨네 일가들도 여럿 와 함께 흥을 돋우고 있다. 저 멀리 모도 배미꾸미 변에 살고 계신 류 씨 종친회장님도 하얀 도포를 차려입으신 채 꼿꼿하게 앉아 계신다.
왼 편 차일에서 하숙집 아줌마가 호들갑스럽게 인사를 하며 뛰어나오고 , 김 기사 부인과 보건소 김양 이 눈인사를 보내더니 삼거리식당 주인 내외가 앉아 젓가락 든 손으로 휘휘 아는 체를 한다. 참으로 가식 없는 모습들이다. 이 쪽 저 쪽에서 연실 막걸리 잔이 날아온다. 잔 비우기가 무섭게 또 채워준다. 해는 점점 꼬리를 길게 늘이운다. 아~~ 시골사람들의 정! 그 정의 넘침이 내겐 몽롱함을 준다
그때~~ 아스라이 들리는 소리,
" 일어나 일어나 "....
내 몸이 논 바닥에 쳐 박혀 있다. 잠시 기절했었다. 여기가 어딘가 몽롱한 눈을 뜨고 쳐다보니 주위에 사람들이 웅성웅성하며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그제사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차가 뒤집혀 있고 지서장이 나를 꺼내고 있다...
김 형! 팔 좀 흔들어 봐"
왼 팔 오른팔 두 팔 다 멀쩡히 돌아간다. 왼쪽 어깨만 조금 결린다. 목도 괜찮다. 다리도 괜찮다. 다 좋다. 운전하던 정 씨도 멀쩡하고, 정 씨 어머니도 멀쩡하다. 청색 프레스토는 엉망이고 고칠 수 없어 곧 폐차됐다. 아 살았다... 천운이다. 주위에서 차가 저 정도로 망가졌는데 사람들이 멀쩡한 건 기적이다라고까지 얘기한다. 그랬나 보다. 진등 고개에서 운서 국민학교 가는 중간의 논길에 처박힌 그날! 바로 10여 미터 앞에 있는 수로에서는 이틀 전에 택시기사가 운전 부주의로 빠져 죽었다고 한다.
그곳에서의 황망했던 상황은 20년이 흘렀어도 그 자리에 있듯 또렷한 기억을 준다. 그날은 내 삶에 대하여 되 집어 볼 수 있게 하늘이 내게 기회를 주신 날이다 어언 20여 년이란 세월의 굽이를 돌며 온갖 변화를 겪은 나는 공항이 들어서고 상전벽해가 되어 연육교가 어디에 있었는지 가늠하기 조차 힘든 그곳에서, 그날과는 또 다른 일로 영종도를 오가며 살아가고 있다. 어느 일요일 아침의 좋았던 기분과 경험은 아직도 내 운명이 무엇인가를 알게 해주는 소중한 느낌이다.
2009.01.22 18:27
* 덕교 포구는 이제 공항 주변도로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지금의 거잠포 들어가는 오른편 조그마한 언덕배기 옆으로 2-3백 미터 가량의 작은 포구이다. 예전에는 거잠포와 덕교 포구 전체를 일컬어 " 거지미"라고 불렀다. 지금도 그곳분들은 여전히 " 거지미"의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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