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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공원과의 인연

김현관- 그루터기 2022. 11. 25. 19:47

자유공원과의 인연

얼마 전 신문에서 우연히 본 글 하나.. 외지 사람들에게 " 인 천 "하면 떠 오르는 것이 무엇인가 하고 물어보았더니 제일 첫 번째로 인천 국제공항 이 떠 오른다고 하였단다. 의외의 결과이다. 인천이 이제 세계 속의 인천으로 자리잡음을 하려는 모양이다. 같은 설문이면 인천 사람들은 제일 먼저 월미도나 자유공원을 떠 올리고 , 이후에 맥아더 동상이나, 인천 국제공항, 연안부두 등을 차례로 지명 하였음직 할 터인데...

여하간 그 모든 지명들이 중구에 속한다는 사실이 중구 사람들로서는 매우 자긍심을 느끼기에 충분하다고 본다.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자유공원"과 " 응봉산 " 에 대한 지명의 유래등을 세세히 설명하였기에 나는 내게 다가온 자유공원의 인연을 얘기해 보고자 한다. 인천 사람 치고 자유공원 에서의 추억이 한두 가지 없는 사람은 없을터! 그 많은 사연 중에 하나의 얘기이다.

날씨가 유난히 화창하고 노란 개나리가 자유공원 산책로를 뒤덮고 있던 내 젊은 시절의 어느 봄날! 일요일 오후, 첫 봉급을 타고 성가대 선배들에게 한 턱 단단히 내 마하고 약조를 한 날이었다. 미사가 끝난 후 성당 근처에서 호기롭게 점심을 사고 기분 좋은 취기에 날도 좋으니 자유공원에 바람 쐬러 가기로 입을 맞춘 것이 사단이었다.

일행은 기분 좋게 박문 로터리부터 화음 맞춰 노래를 불러가며 앞서거니 뒷 서거니 자유공원 언덕길로 들어섰다. 그 당시 선배들은 자유공원엘 가면 제일교회 뒷 문쪽 야조사 아래편에 자리한 "롤러스케이트" 장에 간혹 가서 즐겼다고 하는데 내가 성가대 들어가기 전의 일이며 나는 선배들과는 한 번도 롤러-스케이트를 타 보지 못했다. 현재는 주차장으로 바뀌었다.

당시에는 지금의 한미수교 100 주년 기념탑 일대에 놀이시설이 있었고 (놀이 시설들이 수봉공원으로 이전했다 ) 그중에 우리들에게 가장 즐거움을 주었던 놀이가 한 가지 있었는데 공원 한 구석에 자리 잡은 미니골프장 에서의 골프 치기였다.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시멘트를 대충 발라 엉성하게 12개 인가 홀(hole)을 만들어 놓고, 조잡한 장난감 골프채 에다 그래도 점수 계산표까지 만들어 놓은, 지금 생각해 봐도 조악하기 그지없지만 어수룩하니 흉내는 내놓은 곳이었다,

그러나 내기라는 괴물이 자리 잡고 나면 선 후배 상관없이 조그만 공과 구멍에 몰두를 하게 만드는 매력도 있었다. 그날도 골프채 하나씩 골라잡고 점수표도 나누어 가지고 술도 한잔 걸친 흥에 겨운 기분에 모두들 왁자하니 떠들며 즐기는데 우리 일행을 먹잇감 삼은 늑대를 꼭 닮은 야바위꾼들이 슬슬 우리들의 신경을 긁으며 낚시질을 하였다.

세상 물정 모르던 우리들은 어리석은 망둥이처럼 그들이 쳐놓은 그물에 빠지고 가지고 있던 모든 돈을 홀랑 빼앗겨 버리고 말았다. 남의 재물을 탐한 죗값을 톡톡히 받은 것이다. 적어도 속였다는 것을 알기 전까지는 그냥 그렇게 화가 나도 속으로 새겼지만 , 속은 것을 깨달은 일행은 혈기 방자 함으로 시시비비를 가리다 모조리 축현파출소로 끌려가고 좁은 파출소 대기의자에서도 야바위꾼 들과 서로 옳으니 그르니 하며 으르렁대었다.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 선배의 연락을 받은 신부님께서 오시고, 모두들 신부님 뵙기 송구스러워 사냥꾼 앞의 장끼처럼 머리들을 조아리고 있을 때 시원시원하니 상황 정리를 하신 신부님께서 큰 선배에게 일갈하시고 되돌아가셨다. 파출소에서 풀려나온 일행은 철 없이 희희낙락 서로의 무용담을 늘어놓으며, 동인천 거리를 휘졌고 다니다 어느 순간 배짱들이 맞아, 합의조로 되찾은 얼마 안 남은 돈을 지금의 " 인하의 집 " 원조인 " 버드나무 집 " 에서 젊음의 방종을 만끽하며 모조리 흩뿌리고 말았다.

그렇게 자유공원은 신부님에게 대한 불경을 저지르게 하였으며, 내기의 무서움과 허망함을 가르쳐 준 일면도 있으나, 그로 인해 좋은 점도 있으니 선 후배 간의 돈독함을 유지하게 한 계기가 되어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분들과 간혹 술 한잔 하며 옛 추억을 반추하기도 한다.

이 후로도 자유공원은 우리들의 휴식공간 구실을 착실하게 수행하였고, " 연오정 " 아래 "한국회관"에서 나의 천생 베필을 맞게 해 준 인연을 간직하게 하고, 미국으로 이민 가신 고모님과의 마지막 모습을 함께 한 소중한 기억이 서리게 한 애틋한 장소로 자리매김을 하였다.

 

아내 어릴 적에 장인어른과 (62.5.13일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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