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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니의 삶

식당에서 만난 노숙자 본문

내이야기

식당에서 만난 노숙자

김현관- 그루터기 2022. 11. 25. 19:24

식당에서 만난 노숙자

아이들이 제각기 친구들을 찾아 나선 일요일 저녁 무렵! 집사람과 늦은 저녁을 먹자 하고 동네 근처의 식당을 찾았다. 육개장과 해장국으로 유명한 집이라 언제고 한 번 기회가 닿으면 와 보리라 작심했던 곳이다. 제법 넓은 식당이지만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유명세에 걸맞지 않게 손님은 별로 없었고, 나이 드신 아주머니들 서 너분이 음식 준비하느라 꽤나 분주함을 보인다. 두 가지 음식을 함께 맛볼 요량으로 육개장과 해장국을 주문하고 느긋한 심정으로 맞은편 텔레비전의 드라마를 시청하고 있었다.

막 드라마의 내용에 몰두하고 있던중 출입문을 열고 중년의 사내 하나가 들어오더니 아무 말 없이, 자판기에서 커피 한잔을 꺼내어 손에 쥐고 슬며시 문 밖으로 나가는 것이 참으로 자연스러워 보였다. 날씨도 차가운 겨울밤에 얇고 추레한 춘추복 하늘색 셔츠만을 입은 품새가 여늬 손님으로도 아니 보이고, 그렇다고 주인장과도 친분이 있어 보이지도 아닌 듯한데 자연스러운 행동거지가 하루 이틀 출입한 모양새가 아니다.

마침 주문한 음식을 상 위에 내려 놓던 아주머니께서 의아한 눈초리로 출입문을 보고 있는 나를 의식했던지 묻지도 않은 얘기를 한다. 이 식당이 꽤 오래되었느니, 음식이 맛있어서 몇십 년 단골이 있다느니, 양념은 꼭 시골에서 주문해 온다는 둥... 장황한 자랑을 해 대던 말 끝에, 예의 그 사내에 대해 넋두리 아닌 넋두리를 한다.

말 인즉 주인 아주머니의 심성이 곱고, 장사도 잘 되는 편이라, 십시일반의 심정으로 오래전부터 근처의 노숙자들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고 있었으며, 다른 이들은 식당 안으로 자리를 마련해 주어도 스스로 식당에 누가 될까 음식도 밖에서 먹고, 먹고 난 뒤에는 적어도 이런저런 감사의 표시는 한다는데, 유독 그 사내는 고개 한번 숙이는 법 없고, 감사의 표현이나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이 방금 내가 목도한 것처럼 당연하다는 듯 그냥 스윽 와서는 주는 밥 먹고, 게다가 무시로 제 집 같이 드나들며 커피를 꺼내어 마신다는 푸념이다.

결국 공짜밥을 주었으니 최소한 고맙다는 표현은 해야하지 않겠냐는 말이다. 말은 맞는 말이다. 장황하게 설명을 하던 아주머니는, 별안간 누적된 부아가 솟구치는지 사내만 보면 열불이 날 지경이라는 속내를 거침없이 내 보인다. 아까부터 계산대에서 쫑긋이 귀를 기울이던 심성 고운 주인아주머니 조차도 얘기를 들으며 은근히 감정이 뒤틀렸던지 내일부터는 사내에게 음식을 주지 말라고 지시를 하더니만 천성이 착하여서인가 형애긍한 마음이 우선인가 곧 다시 주라 말을 정정한다...

아주머니의 설명대로라면 참으로 고약한 일이다. 사람의 궁폐함을 애달피 여기는 따뜻한 마음씨에 대한 배신감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설혹 그 사내의 심뽀가 어느 정도이고, 흉중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한 두해도 아니고 몇 년 동안 자신의 배곯음을 애틋하게 여기는 이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없는 짓이다.

하지만 따지고 보자면 어찌 고마움을 모르는이가 그 사내만일까! 세상살이 살아가는 사람 중에도 , 사내처럼 자신에게 베풀어지는 타인의 사랑과 배려를 모르는 이가 참으로 많다. 이 글을 쓰는 나 조차도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주위의 많은 친구와 이웃들에게 사랑과 격려와 위로를 받고도 그 고마운 마음에 감사해야 하는 시기를 놓치고 후회해 본 적이 너무도 많다. 늦게 깨달았지만 이제라도 "고맙습니다"라는 표현은 외상없이 해 나가야겠다.

곰곰 생각해보니 그 사내도 사람인데 감사의 표현을 하고 싶지 않았을까 ? 어찌어찌 한 두 번 고맙다는 표현을 못하고 지나치다가 은근하게 습관이 되어 버렸을 수도 있을 것을.. 그러다 보니 고맙다는 표현을 하자고 해도 쑥스러운 맘이 더 커져버리니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에 지금까지 이러구러 지내 왔으리라 혼자 추측해 본다. 나의 추측이 맞다면 사내나 주인아주머니를 위해 더 좋을 것 같다. 사내가 용기를 내어 , " 아주머니! 그간 죄송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라는 말 한마디면 지금까지 노숙자들에게 선심을 베풀고 있는 주인아주머니의 심성상 간단히 오해가 풀릴 수 있을 터인즉 그리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사내도 인간으로서의 올곧은 품성을 되찾고, 이 풍진 세상에서 사내의 격에 맞는 일자리라도 찾아 바로 그 식당에서 떳떳하니 제 돈 내고 손님 대접받으며, 음식과 술 한잔 하는 여유로움을 맞길 바란다.

돌아보니 내 아버지의 독특한 인사말이 생각난다. 아버지 살아 생전에 월미도에 있는 합판공장 공무부에 근무하실 때 직장 동료들에게는 물론 퇴근하며 들리던  공장 근처의 식당 주인들과, 술집 주모들과, 그리고 다방 아가씨들에게 까지 무시로 " O.K"라고 싱그레 웃음을 지으며, 인사를 하셨다고 아버님의 오랜 친구분께서 전하셨다. 그래 별명도 "O.K박사"로 불리셨다고 한다.

기계체조로 다져진 당당한 체구에 자그마한 키에 백발을 휘날리면서도 젊게 사시던 ,그리고 절약이 몸에 배어 오래된 낡은 자전거를 타고 다니시던 내 아버지! 기계정비공의 티가 폴폴 솟아나는 듯 늘 기름때 묻은 회색 모자와, 약간의 멋을 취해 그 모자의 채양을 약간 비뚜름하니 눌러쓰신 낙천적인 내 아버지, 마주치는 사람마다 "O.K" 하며 인사하시는 모습과, 그런 아버지를 보며 절로 흐뭇하게 미소 짓던 여러분 들의 환한 얼굴들이 투영되어 온다. " O.K " 참으로 낙천적인 인사말이 아닌가 생각된다. 만사가 좋다는 아버지의 인사말을 오늘 다시 곱씹어 본다. 아버지의 삶의 철학이 배어 나오듯 구수하다. 자연스러운 감사함의 인사말이 아닌가 싶어 새삼스레 아버지의 그 모습이 그립다.

며칠 전 선종하신 " 김 수환 추기경 " 님 살아 생전에 어느 누구에게나 " 고맙습니다"라는 표현을 아끼시지 않으셨다던데, 우리네에게 귀감이 되고 존경해 마지않는 큰 어르신 께서도 모든 이에게 사랑을 주시며 범사에 감사하시는 삶을 사셨거늘 저 사내와 그 사내로 인해 깨달음을 얻은 나도, 그리고 내 주위와 세상의 모든 이들과 함께 추기경님의 성상과 옷자락 끝에까지 서린 그분의 뜻을 가슴에 아로새기며, 소시민이면서도 늘 당당하셨던 그래서 존경스러운 내 아버지의 자연스러운 인사말을 본받아 늘 환하면서도 거리낌 없이 시원한 호탕한 웃음을 짓고, 감사함을 표현하며 사는 나날이 되었으면 한다.

* 영원히 사랑하는 내 아버지와 이름모를 노숙자에게 감사를 드리며....

2009. 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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