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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니의 삶

바티칸의 길 잃은 아이 본문

내이야기

바티칸의 길 잃은 아이

김현관- 그루터기 2022. 11. 25. 15:01

바티칸의 길 잃은 아이


해외여행이 자유화된 지 몇 년 지나지 않던 어느 해 봄! 뜻하지 않게 내게 유럽 연수의 기회가 주어졌다. 한 껏 여행에 대한 기대감과 설렘으로 흥분되었던 내 마음에 재를 뿌린 사건이 발생했다. 연수 일정이 확정 통보된 다음날! 서무로부터 받아 본 선결 문서 한 장이 설레었던 내 맘을 와르르 무너지게 했다. 하필 2년 만에 한 번씩 받아야 하는 상급기관의 감사일정과 여행 일정이 중복되어 통보된 관계로 , 당시 실무팀장이던 나는 감사 준비와 수감 등으로 여행을 포기해야만 했다.

그러자 실장과 직원들이 일상적 감사때문에 모처럼 얻은 연수기회를 포기하게 할 수 없다며 내가 연수를 떠날 수 있도록 우리 실의 감사일정을 연수 떠나기 전 날까지로 앞 당길수 있게 힘써 주어 우여곡절 끝에 떠나게 되었다. 낯 선 곳으로의 여행을 떠나기 전에 느낄 수 있는, 준비 과정에서의 설렘과 흥분을 채 느껴 보지도 못하고, 여행 필수 학습과정인 오리엔테이션도 참석 못한 상태에서 준비 없이 황망하게 떠나게 된 여행이었다.

결국 준비없는 나에게 이미 "바티칸"은 "옐로 카드"를 준비하고 있었다. 게다가 20여 명의 연수단원들이 연수단장을 맡으라고 강요한 덕에 마지못해 승낙을 하고 말았다. 첫 연수지인 로마에 도착하고 여장을 푼 다음 "연수단 결단식"에서 허울 좋은 단장 추대 턱으로 과음까지 하자, 결국 " 바티칸 " 은 내게 "레드카드"를 내준다. 성지를 여행하는 자의 되바라진 마음에 대한 응징이다. 그날은 그런 하느님의 뜻을 몰랐었다. 그저 15박 16일의 여행에 대한 설렘만 가득했을 뿐,

첫 일정인 " 바티칸대성당" 에 도착한 우리 일행은 어마어마한 규모의 성당과 관광인파에 넋을 빼앗겼다. 성당 안의 "삐에타"의 숭고함을 느끼기도 전에 물결치는 인파에 일엽편주와 같이 흔들리다 어느 녁에 "미켈란젤로"의 역작인 천장 지붕화 "천지창조" 밑에서 그 예 사단이 나고 말았다.

각자 개성에 맞춰 관람을 하는 일행들의 면면이 어느 한순간 썰물같이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일순 서늘함이 가슴을 차고 들어왔지만 설마 밖에서 기다리겠지 하는 끝 간데없는 배짱과, 내 형편에 이곳을 언제 다시 올 까 하는 지극히 이기적인 맘으로, 인파 속에서 천천히 그리고 끝까지 관람을 하고 밖으로 나왔다.

이윽고 환한 광장 앞에서 우리 일행들을 찾아보았으나 "아차" 그 많은 인파 속에서 낯 익은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허둥지둥 잰걸음으로 이곳저곳을 찾아다녔으나, 그 당시 내 일행들은, 이미 길 잃어버린 나를 찾아 그곳을 시작으로 영 다른 곳을 찾아다니고 있었으니...

한국에서부터 동반한 가이드에게 여권을 맡겨두고, 지갑이 든 가방도 버스에 놔둔 채 달랑 카메라만 챙긴 채 내려 버린 터이고, 이름도 낯선 호텔 이름도 기억이 안 나고, 주머니에는 동전 몇 개만 딸랑거리고 있을 뿐이다. 머릿속은 하얘지고, 생각은 정지되고, 심장은 쿵쾅거렸다.

사리분별을 못하는 겁 먹은 어린애가 되어버린 순간이다. 아! 이러다 집에 못 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머리를 사정없이 내리친다.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두고 오리엔테이션을 실시 한 바 있으나 학습을 못 한 나에게는 무용지물이고, 공포만 엄습할 뿐이다. 더구나 영어회화도 못하는 나는 그야말로 달나라에 떨어진 우주 미아가 되어버린 꼴이다. 그래도 간신히 스스로 긴장하지 말자 다짐하고 잠시 호흡을 가다듬어 정신을 차리며, 버스에서 내릴때 가이드의 안내말을 곰곰이 되새겨 보았다. 

" 관람이 끝난 뒤에 성당 뒤쪽에서 버스가 떠납니다."

단 한마디 기억나는 가이드의 이 말이 나를 미아에서 탈출 시켜줄 열쇠였다. 그러나 말 이 통하지 않는 곳에서 단지 방향 감각만 믿고 성당 뒤를 찾아가는 일도 장난이 아니었다. 천신만고 끝에 성당 뒤편을 찾아갔으나, 그곳에도 일행은 보이지 않는다. 머릿속이 또다시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이곳이 확실히 성당 뒤편인가? 아니면 동쪽인가? 서쪽인가?.....
아! 하느님... 천주님... 성모 마리아 님... 저를 구원하소서!

그때였다. 기도가 통했나 보다. 눈앞으로 낯익은 버스가 오고 있었다. 그랬다. 하느님께서는 나의 교만한 마음을 채찍질하고자 잠시나마 수많은 갈등을 내게 주셨던 것이다. 버스를 보며 마음이 차분해져 간다. 버스에 오르자 일행들이 손뼉 치고 환호하며 난리가 아니다. 최 팀장이 동그란 눈으로 호기심에 찬 표정과 함께 어디엘 갔었느냐고 물어본다. 아! 이미 버스의 출현과 함께 마음이 편해진 터라 내 머릿속은 장난기를 충동질하고, 그 예 뻔뻔한 한 마디의 말로 일행을 뒤집어지게 하고 말았으니,

" 아니 내가 어딜 가...길 잃어버린 당신들 찾느라 꽤 고생했어!머리 없이 꼬리들끼리 어딜 다닌거야 ! "

대체 나란 인간은 그 때나 지금이나 철 없긴 매 한 가지다....

2008. 1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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