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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니의 삶

재수 없는 날 본문

내이야기

재수 없는 날

김현관- 그루터기 2022. 11. 25. 20:22

재수 없는 날  - 황당한 봉변 그리고 추억의 상실-

오랜만에 그리운 친구를 만나 하룻밤을 지새우며 정을 나누고 회포를 풀고 돌아오던 길이다. 평택역에서 친구와 아쉬운 맘을 뒤로한 채 올라 탄 전철 안에서 이러저러한 회상도 하고, 전철안 군상들의 면면을 힐끔힐끔 살피던 중 앞자리에 앉은 젊은 아기 엄마의 품속에서 곤히 잠자고 있는 서 너 살바기 애의 모습에서 문득 내가 태어나고 자라던 우만동 집이 눈에 밟히며 지나는 길이니 한 번 가 보고자 하는 욕망이 용솟음쳐 결국 수원역에서 내리고 말았다. 내친김에 요즘 집에서 소일하고 있는 아내에게 모처럼 바람 좀 쐬자며 수원으로 올 것을 청했더니 마치 기다렸다는 듯 쾌히 응하며 곧장 채비하고 온단다.

아내가 오는 동안의 시간에 지난 몇 년간 몰라보게 변한 역전 주변의 모습이나 구경하고자 이리저리 돌아보다가, 아내와 만나고자 약속했던 인천 버스 서는 곳이 어느 곳인지, 지나는 행인 몇에게 물어보았으나 전부 모른다고 한다. 아내는 거의 도착지 경이라 시간에 쫓기는 황망함에 문득 역전지구대가 보이길래 문의 할양으로 향하던 중 마침 순찰 나오는 경찰 두 명에게 다가서자 대번에 나를 보고 신분증을 보잔다.

이런 황망한 일이, 혈기 왕성할 때에도 신분증 검사를 꼭 하는 수많은 군사지역이나 홍등가 주변을 싸돌아 다녔어도, 어느 누구 하나 신분증을 내 보이라는 말을 안 들어보던 내게 이제 오십이 넘어 쇠락해가는 모습이 만만해 보일 수밖에 없는 내게, 게다가 당당하게 찾아가는 민원의 입장인 내게 신분증을 내 보이라니 참으로 기가 찰 일이지만 대한민국의 공권력이 내 보이라면 내 보일 수밖에 없는지라 지갑을 뒤져 내 보였다.

아들 뻘 만한 경찰 하나는 연신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하며 전과조회를 하고 , 막냇동생보다 10살은 적어 보이는 경찰 하나는 내 주변을 서성인다. 혹시라도 내가 도망가려는 줄 아는 것일까! 조회를 끝낸 두 경찰관이 내게 지구대로 가자한다. 왜냐고 묻자 벌금 안 낸 사실이 있단다. 연이은 황망함이다. 나도 모르는 벌금이라니! 하지만 근거 없는 벌금이 나올리는 없고, 자초지종을 알아보니, 오래전의 내 잘못이 튀어나온다. 벌금을 내야만 자유롭게 풀어준다 하여 우선 막내에게 통변 하여  몸은 자유롭게 되었으나 내 맘은 심히 불쾌하다. 벌금을 내게 된 것은 내 잘못이 있어 당연히 내야 할 터지만, 불심검문에 걸려든 사실이 못내 참을 수 없는 지경이라, 지구대로 되돌아가 나를 불심검문 한 경찰관에게 대체 어떤 연유로 나와 같이 나이 든 사람에게 신분증을 보자 하였는가 따져 보았다.

젊은 경찰관은 대수롭지 않게 나의 몸가짐이 어색해 보여 그랬다 한다. 그제사 거울에 비친 나의 모양새를 보니 정돈되지 않은 더부룩한 머리 매무새와 실제로 어색해 보이는 갈색 점퍼와 검은색 건빵바지는 아무리 스스로 자문해 보아도 나이에 어울리지도 평범해 보이지도 않아 보이는 형상이라 아무 대거리도 못한 채 지구대를 빠져나와야 했다
.
그리고 나이 들어갈수록 입성 거지가 추레하면 안 되겠다고, 옷을 잘 갖춰 입는 안목을 키워야 한다고 속다짐을 했건만,
처음 입은 것인데도 옷을 세련되게 못 입으면, 이런 어이없는 꼴을 당해야 하나 하는 자괴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자책해 봐야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 재수 없는 날이라 자위하며 불쾌한 감정을 추스르기로 했다.

그 사이 버스는 이미 도착하였고 아내는 "애경백화점"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중간 통화로 사건의 전말을 알고 있는 아내는 당연한 잔소리를 해댄다. 계면쩍은 몇 마디 말로 아내의 심사를 가라앉히고자 애쓰는 나도 참 안 되었다. 이윽고 구시렁거림이 잦아든 아내와 늦은 점심을 함께 하고, 원래 계획대로 고모가 사시던 남창동 집과 내가 살던 우만동 집을 들러보기로 하였다.

그러나 일껏 찾아본 남창동의 고모가 사시던 집은 아예 큼직한 빌딩으로 탈 바꿈 하여, 옛 정취는커녕 마음의 황량함만을 안겨주고 , 그나마 눈에 익은 팔달산 오르는 초입의 작은 개울물에서, 친구 "하 창용"과 물장난치 던 개구쟁이 시절의 한 장면을 억지로 곱씹어 보며 발길을 돌린다.

남창동에서부터 천천히 걸어 동문 밖 의 내가 살던 옛집을 찾아보니 몇 년 전 지방 가던 길에 차창 너머 보았던, 언덕배기 한 칸 남은 나의 옛집은 안 보이고 , 너무 깔끔하고 단정하게 치장해 놓은 공원만 보인다. 창룡문 밖에 멋지게 배열해 놓은 조경수들과 화강암으로 만들어 놓은 산책길과 양탄자 같은 잔디만 눈에 차고. 어린 내가 뛰놀던 옛길과 풍경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채 집 터가 어딘지, 집 앞의 넓은 과수원터가 어디인지 조차도 모르게 되었다.

어디 자기가 살던 집이 없어진 사람이 나뿐일까 하지만, 그래도 언덕배기 한 구석에라도 한 칸 남아있어 그 집에 짠한 추억을 가지고 찾아온 이 내 가슴에 못이 박힌다. 이런 내 맘을 알리 없는 아내는 날도 쌀쌀하고 다리도 아파가니 그만 가자고 재촉한다. " 그래! 추억은 추억일 뿐 그 추억을 확인하러 다니는 일은 이제 그만해야겠다." 돌아오는 차창밖에 느릿느릿 스쳐 지나쳐 가는 수원거리의 모습에서 차츰 낯 선 느낌이 든다. 내가 태어난 곳인데, 내가 살던 곳인데..  2008. 1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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