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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니의 삶

청량리 그리스도의 교회의 추억 본문

내이야기

청량리 그리스도의 교회의 추억

김현관- 그루터기 2022. 11. 26. 23:48

청량리 그리스도의 교회의 추억

어린 시절엔 크리스-마스가 무엇인지도, 교회가 존재한다는 사실도 몰랐다. 처음 교회의 존재를 알게 된 계기는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바로 전 해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동네 아이 중에 하나가 교회엘 가면 과자와 사탕을 주고 학용품도 나누어 준다고 꼬이는 바람에 서 너 명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첫 발을 들여놓았었지만 그 이후에는 한 번도 교회엘 가게 되질 않았다. 아마도 어린 눈과 마음으로 느낀 교회 건물의 웅장함과 엄숙함에 기가 질려 그러지 않았나 싶다.

그러다 사춘기 시절에 집이 인천으로 이사하여 부모님과 떨어져 친척집에서 생활을 하게 되었고,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외로움과, 아주 친하게 지내던 남수의 집에 왕래하며, 그 집안의 화목함과 형제들이 내게 베푸는 따뜻한 친절에 기쁜 마음으로 남수 아버님이 장로로 봉사하시던 " 청량리 그리스도의 교회 " 에 첫 발을 디디게 되었다.

처음 침수세례를 받던 날!. 제단 뒤에 마련된 성수에 온 몸을 담그며 그동안 세상에서 물든 몸과 마음을 정갈히 하는 의식으로 새사람이 된 이후 교회에 다니는 그날까지 늘 뿌듯한 기쁨을 갖고 생활하였다.

 

서울지구 그리스도의 교회 체육대회 참가 기념사진 [등촌동]


지금은 어떻게 변했는지 모르겠으나, 남수를 따라 처음 간 "청량리 그리스도의 교회"는 한때 "홍릉"이라 불리던 "세종대왕 기념관" 가는 길의 오른쪽 언덕배기에 자리 잡은 조그만 교회였다. 교회 주변은 달동네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으나, 집들의 면면이 그렇게 초라해 보이지도 않았고, 그냥 정갈한 집들이구나 하는 느낌이었다.

비록 교회 출입문은 낡았고 작은 교회당 건물과 1층짜리 블록 벽의 허름한 부속건물이 전부였지만, 교회 마당을 포근히 감싸 안은 아람 드리 나무의 넉넉함과 함께 그곳에서 보낸 2 년 여의 세월의 공간과 친구들과의 만남은 지금까지도 소중한 나의 추억거리로 남아 있다.

그 추억의 대부분은 지금 말레이시아에서 살고 있는 남수와 연관되어있다. 중학시절 나와 한 반이었던 남수는, 서로의 집이 아주 가깝기도 하였지만, 무엇보다도 부모님과 형제들이 내 입장을 잘 이해해 주셨고, 서로의 배포와 생각하는 바가 서로 잘 맞아 매일 새벽마다 아차산에 뛰어 오르내리며 함께 호연지기를 키우던 막역지우였다. 지금도 부모님의 인자하신 모습과 의젓한 호식 형님, 약간 마른 철수 형님, 통통하며 귀여운 정수 누나, 막내 강수의 듬직한 모습이 눈에 선하다.

은찬이도 기억난다. 아버님이 교회 전도사의 신분인지라 , 사택에서 생활을 하던 친구였는데 , 당시 함께 어울려 다니던 "김 대진"이라는 악동과 어울려, 교회의 제실에서 짓궂은 짓을 저지르며 키득대던 어린 날의 치기가 생각난다. 고 2 때쯤 은찬이만 한국에 남겨둔 채 가족들이 미국으로 이민을 간 관계로 그는 군 복무 시절에 휴가만 나오면 아예 우리 집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귀대하곤 했다. 그러던 친구가 제대 후 어머니께 인사를 와서 미국으로 간다 하고는 소식 한 자락 없어 지금도 간혹 어머님의 섭섭해하시는 말씀을 듣고 있다. 한 동안 그 친구가 미국으로 떠나기 전 선물로 준 조그만 오르골의 맑은 소리를 듣고 옛 일을 그려보곤 했는데, 세월이 너무 흘러 이젠 그 마저도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

74년 장충 체육관에서 거행된 광복절 기념행사에서 문 세광의 총탄에 육 영수 여사께서 돌아가시는 슬픈 사건이 발생하였다. 모두들 그 사건을 알고 있으나 그 곳에서 꽃다운 나이에 총을 맞아 숨진 한 명의 여학생을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단지 그 학생의 주변 사람들만 지금까지도 그 죽음을 애절하게 기억하리라 본다. 그 여학생과 한 반이었던 금복이가 어느 날 그를 기리는 추도문을 작성하여 내게 전해 주었다. 그 빛바랜 원고지는 지금도 나의 앨범 속에서 그날의 아팠던 기억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보게 한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교회에서는 매년 여름 하계 수련회를 떠난다. 목적이야 청소년들의 심신을 수양한다고는 하지만 사실 즐거운 여름 나들이임에 다름없다. 나는 두 번의 하계 수련회의 경험이 있었는데, 한 번은 한강변의 미사리에서, 또 한 번은 한탄강의 에스 반교인가 하는 곳의 상류 어귀에서 캠핑을 하며 젊음의 즐거움을 만끽하였다. 난생처음으로 타오르는 장작불에 둘러앉아 밤을 새워가며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던 그 향연과 들뜬 마음들은 아직도 내 가슴속에 오롯이 자리하고 있다.

두 번째의 수련회 장소였던 한탄강에서 사랑하는 할머니의 부음을 듣고, 울음을 삼키며 돌아서는 나를 바라보던 친구들의 근심 어린 표정에서, 모두를 함께 하는 친구들의 따뜻한 정을 느낄 수 있었다. 결국 나는 거스를 수 없는 할머니의 유지를 받들고자 교회를 떠나 천주교로 개종을 하였고 , 그 해 가울 녁에 남수의 손을 잡고 마지막 예배를 드리며 "청량리 그리스도의 교회" 와의 만남도 끝을 맺었다,

남수와는 이 후로도 오랫동안 절친함을 유지하며 잘 지내오다 내가 명퇴하면서 당시 말레이시아에 자리 잡느라 고군분투하던 남수와 연락이 끊겨 진한 아쉬움을 남겨 주었다. 미국으로 이민 간 전 은찬 이과 박 진열이, 진복이 자매 , 동 진성과, 강원도 어디엔가 산다고 풍문으로 들었던 김 대진이와 댕기머리가 잘 어울리던 원 금연이, 글을 잘 쓰던 감수성 풍부한 김 금복이 등 친구들과 함께 하던 그 뜨거운 감성의 사춘기 시절의 꾸밈없던 만남의 추억들이 이렇듯 켜켜이 쌓인 옛이야기가 되어 한 남자의 그리움으로 남아 있다.

2009. 7. 1 - 그루터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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