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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니의 삶

내 친구 정구 본문

내이야기

내 친구 정구

김현관- 그루터기 2022. 11. 26. 22:50

내 친구 정구 

자정이 다 된 시간에 정구에게 전화가 왔다. 이즈음 부모님들의 연세가 있어 친구들에게 오는 늦은 시간의 전화는 은근히 불안하다. 걱정된 마음으로 수화기를 들어보니 기분 좋은 취기가 든 목소리라 내심 안심하였다. 내 건강과 집안 두루두루 안부를 전하며 연실 "사랑한다 친구야"를 되뇌는 심성이 참으로 고맙다. 전화로 뽀뽀까지 해 달라는 녀석의 청까지 들어주고 나서야 통화를 마쳤다.

곰곰 생각해 보니 지난 삼십여 년간 수많은 희로애락을 함께한 죽마고우인데도 불구하고 일과 조금 먼 거리를 핑계로 요 근래 들어 띄엄하였다. 나는 성격이 칼칼하여 그다지 많은 친구를 두고 있지 않다. 그냥 어렵사리 사귄 친구들과 수 십 년씩 교우하고 있으며, 이제 새삼 새로운 친구를 맞고 싶은 생각도 별로 없다. 내 삶 에서의 행복한 순간과 아픔의 순간순간들.. 그리고 치부까지도 옆에서 지켜보고 그 세월의 더께를 아우르며 지금까지 함께 해온 친구들이 있기에 또다시 그 무진장한 새로운 사연들을 꾸려 나가기가 겁나서이다.

예나 지금이나 너는 잘 될 거라며 넉넉한 격려의 말을 해 주는 정구는, 청년시절 어려운 시기에 신포시장 안의 100원 찌리 왕튀김에 소주 한 잔 하며 미래의 꿈을 얘기하고, 제물포 "대지기 주점"에서 김치 안주에 막걸리를 마시면서도 호연지기를 함께 키우던 소중한 추억을 함께 간직한 친구이며, 내게 있어 정말 가족만큼이나 애틋한 친구다.

성가대에서는 막내들의 신분으로 온갖 허드레 일을 함께 하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고, 특전사에서 순직하신 영구 형님의 빈자리를 채우며 힘들어하던 녀석의 넓은 등을 위로하며 꽤 오랜 시간을 곁에서 지내기도 하였다. 친구가 공군에 입대하기 며칠 전! 휑한 소래 염전터에 선배들이 마련한 송별식에서, 미친 듯이 술 마시며, 노래를 부르다. 아쉬움 때문인가, 걱정 때문인가, 두려움 때문인가 눈가의 그렁그렁한 모습을 보며 , 저리 안정되지 않은 모습을 보이는 여린 친구가 어찌 군대생활을 할까 걱정했지만, 무탈하게 제대하는 모습을 보고, 빙긋이 웃던 내 속마음을 알까?

수봉공원 자락에 아담한 집을 어렵사리 마련하고는 나도 이제 아내와, 딸과, 집과, 자가용이 있으니 이만하면 성공한 삶이 아니냐며 껄껄 대며 웃던 정구의 모습이 새삼 정겹게 다가온다. 나의 진급 때마다, 너는 높은 자리 하나 해야 한다며, 호기롭게 축하주를 권하는 그 진실한 마음과 애정을 담은 싱그러운 미소가 늘 내 눈앞에서 아른거린다.

매년 성탄절과 내 생일을 잊지 않고 케이크를 챙겨주던 녀석의 세심함에 감격하면서도 진즉 나는 아무것도 그에게 해 준 기억이 없는, 못 된 친구임을 각인시켜주는 거울 같은 존재이다. 가족들을 위해 한 동안 정말 힘들고 모진 고생을 하며 힘들어하던 친구의 모습을 안타까워하다, 이제 다시 평안하게 사는 모습이 너무도 고마운 친구!

얼마 전 딸내미 새미를 유학 보내러 공항에 배웅 왔다는 전화 목소리에서 평소와는 다른 은근히 자랑하고 싶은 마음을 느낄 수 있었고, 그 자랑을 넉넉히 받아 주며 부러움 대신 내 자식이 공부하러 가는 뿌듯함을 느낀 것이 바로 친구 된 마음이 아닐까 한다. 이런 친구와의 만남이 너무 소원 한지라 늦은 밤 전화를 받고 너무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내게 있어 정구는 가족처럼 평생 함께 해야 할 소중한 보물과도 같은 존재이다.

소식이 없어도, 느낌으로 알 수 있고, 오랜만에 보아도 그냥 친숙하고 , 무조건 이해할 수 있는, 얼굴에 "나 너 사랑해"라고 씌어 있음을 읽을 수 있는 그런 친구가 바로 강 정구라는 녀석이다. 마침 돌아오는 일요일에 인천으로 온다 하니 함께 맛난 음식에 반주 한잔하며, 그동안의 회포나 풀어봐야겠다.

이제 친구라 부르는 데 있어서 나이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연배가 같아야만 친구가 됨이 아님을 깨닫는데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성격이 안 좋음이 큰 탓이요, 호형호제를 유별나게 따지다 보니, 꼭 내 나이 또래만 친구로 하기를, 수 십 년 지내온 바 굳어진 잘못된 습관이었다.

그 간 사귀어온 형님 들과 동생들도 다 친구인 것을, 스스로 정한 틀에서 헤어나지 못한 우매함이 참으로 후회스럽다. 생각을 바꾸니 이제 많은 친구들이 내 옆에 자리하여 뿌듯함을 느끼게 되었다. 하나 이미 그분들은 오래전부터 나를 형과 아우 이전에 , 친구로 대하고 있음을 나만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던 부분이 탈이다.

이제 한분 한분 만날 때마다, 나의 모자람에 대한 고백을 하고 꾸지람과 용서를 빌어야겠다. 이렇게 모두 다 못난 것이 나란 사람이다. 그 모자란 부분을 채워 주는 이가 바로 친구들인데..

2009 , 3 , 23 찬구를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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