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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니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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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이야기

가시자구요

김현관- 그루터기 2022. 11. 26. 22:59

가시자구요

헤어진 첫사랑도 세월이 흐르다 보면 기억의 공간에서 잊히고, 친하던 친구라도 눈앞에서 멀어지면 마음속에서 비워진다. 그러다 언젠가 사소한 계기로 인하여, 잊히고 비워졌던 그 옛날의 추억을 끄집어내고 펼쳐 보이다 보면, 그리움이라는 소중한 느낌을 얻게 된다.

아주 오래전 일이다.! 아침마다 함께 출근하자며 우리 집으로 차를 몰고 오던 직장 동료가 있었다. 집으로 들어오질 않고 담장 밖에서 "가시자구요"라고 맑고 약간 높은 톤으로 외치는 터라, 그 목소리만 들으면 아주 기분이 상쾌해지며 마음이 푸근해지곤 했다. 어린 아들도 그 목소리가 듣기 좋았는지 동료가 올 때쯤이면, " 가시자구요 " 아저씨 언제 오시냐며 동동거리곤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임용시험에 합격을 하여 연천군으로 발령을 받은 동료는 그 해 하숙집 딸과 연분이 맞아 일찍 혼인을 해서 30대 초반에 벌써 딸이 중학생이고, 당사자는 총각으로 보일 정도로 동안에다 아주 멋쟁이다. 게다가 부녀 지간의 정도 돈독 한지라 함께 외출을 하면 연인으로 보는 사람들이 꽤 있다 하며 종종 오해로 빚어지는 에피소드를 얘기하곤 하였다.

그날도 차 안에서 전 날 벌어진 얘기를 하며 서로 하하대며 따스한 봄길을 달리고 있었다. 출근길 도중에 도원역에서부터 유동 삼거리까지의 나지막한 내리막길이 있다. 어지간한 차들은 속도를 줄이지 않고 달려 종종 사고가 나는 지역이다. 조금 늦은 탓에 속도를 내 언덕을 넘어 삼거리 방향으로 가던 중, 신호가 바뀌었는지 시야를 가리며 앞에 가던 버스가 급제동을 하였다. 깜짝 놀라 우리 차도 급제동을 하며 간신히 정지하는 순간 동료가 " 어 "! 하며 외마디 소리를 지른다. " 어 " 소리를 듣자마자 " 쿵 " 하며 몸이 뒤로 확 묻히는듯한 느낌이 들더니, 다시 "쿵 "하며 우리 차가 앞차를 들이받고, 앞으로 몸이 쏠렸다. 약간의 차이를 두고 다시 미미하게 충돌하는 느낌이 들며 몸이 들썩인다. 우리 차가 가운데 끼어 5중으로 충돌과 추돌사고가 난 것이다.

다행히 큰 사고는 아닌지라 사고 처리를 하고 인근 병원으로 가서 X-Ray를 찍었다. 이윽고 의사가 판독 사진을 불빛에 비추며 설명을 해 주려는 순간, 동료의 목 부분이 약간 굽어지고 내 목 부분은 곧추 서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신기한 듯 동료의 사진과 내 사진을 가리키며,

" 어이 신 계장! 이것 봐 당신 목이 구부러졌네!.. 이거 키가 1센티는 줄었겠는 걸 " 하며 놀려 주었다. 가만히 보고 있던 동료도 얼굴빛이 흐려지며  "어! 정말 그러네요. 이거 큰일 났네 " 하며 혀를 찬다. 둘의 하는 짓거리를 보던 의사 선생님 왈! "여보! 아저씨! 아저씨 목이 아픈 거예요! " 하며 나를 가리키는 게 아닌가. 나는 깜짝 놀라 " 예! 아니 왜요? " 라며 다그치듯 물어보았다. " 여담이지만 원래 목뼈는 외부 충격 등에 대비해 미리 조금씩 휘어져 있는 겁니다. 조물주 란 양반! 참으로 기가 막힌 분이에요 " 하며 껄껄 웃는다.

동료의 얼굴은 환해지고 내 얼굴은 무지한 창피함으로 서서히 붉어져 간다. 오랜 메마름 끝에 저녁 비가 부슬부슬 오는데, 별안간 목이 뻐근해지고, 아스라이 엣 기억이 떠오르며 옛 동료의 " 가시자구요 " 소리가 귓전을 간질인다.

2009. 3. 21 봄비 내리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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